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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외 리뷰] Tyler, the Creator - Call Me If You Get Lost
    rhythmer | 2021-07-21 | 45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Artist: Tyler, the Creator
    Album: Call Me If You Get Lost
    Released: 2021-06-24
    Rating: 
    Reviewer: 황두하









    디제이 드라마(DJ Drama)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믹스테입(Mixtape) 붐을 주도했다. 과거 래퍼들이 길거리에서 이름을 알리기 위해 팔았던 것과는 달랐다. 온라인 시대가 오면서 댓피프(DatPiff) 같은 사이트를 통해 믹스테입을 공짜로 유포한 것이다. 신인들뿐만 아니라 기성 래퍼들도 공식적인 프로젝트와는 별개로 가볍게 작업물을 올리며 창작욕을 분출했다. 당시 가장 많은 아티스트와 작업했고, 가장 많은 히트 믹스테입을 발표한 디제이가 드라마다.

     

    릴 웨인(Lil Wayne)의 가장 유명한 믹스테입 시리즈인 [Dedication]도 드라마와 함께한 작품이다. 이밖에도 그는 티아이(T.I.), 영 지지(Young Jeezy), 구찌 메인(Gucci Mane), 프레디 깁스(Freddie Gibbs),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아티스트와 약 150장의 믹스테입을 발표했다. 드라마의 시그니처 사운드인 ‘Gangsta Grillz’는 한 시대의 힙합을 대표하는 브랜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는 여섯 번째 정규 앨범 [CALL ME IF YOU GET LOST]에서 디제이 드라마를 소환했다.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와 SNS를 통해 밝힌 것처럼 그는 이번에 다시으로 돌아갔다. 전작 [IGOR](2019)에서 랩을 감초처럼 활용했던 것과 다르다. 디지털 가공한 보컬이 주도하는 “SWEET / I THOUGHT YOU WANTED TO DANCE”를 제외하면 모든 곡에서 랩을 죽 뱉어낸다. 드라마는 랩 사이에 계속해서 샷 아웃(Shout out)을 외치며 분위기를 달군다. 오로지 랩만으로 꽉 채워냈던 그 시절 믹스테입 감성을 드라마의 목소리를 더해 재현한 것이다.

     

    타일러는 순식간에 집중하게 만드는 낮은 톤과 유려하고 다채로운 플로우로 앨범의 취지에 맞게 경지에 오른 퍼포먼스를 펼친다. 그동안 여러 기행과 기믹, 그리고 넓은 스펙트럼의 사운드 덕분에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던 랩 실력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려는 듯하다. 특히, “CORSO”부터 “HOT WIND BLOWS”까지 이어지는 구간과 “WILSHIRE”에서의 퍼포먼스는 그야말로 감탄을 자아낸다.

     

    [CALL ME IF YOU GET LOST] ‘Gangsta Grillz’표 믹스테입들과 다른 이유는 타일러 특유의 프로덕션이다. [IGOR]보다 힙합의 비중이 늘어났다. 그래서 [Cherry Bomb](2015)의 업그레이드 버전 같은 인상이 들기도 한다. 육중하게 내려치는 킥과 소스가 어지럽게 어우러지는 “CORSO”, 위협적인 신시사이저가 곡을 이끄는 “LUMBERJACK”, 보이스 소스를 겹겹이 쌓아올려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MANIFESTO” 등은 대표적이다.

     

    “WUSYANAME”, “HOT WIND BLOWS”, “WILSHIRE”, “SAFARI” 같은 빈티지한 질감의 미디엄 템포 랩 트랙도 여전하다. “SWEET / I THOUGHT YOU WANTED TO DANCE”의 후반부에서는 1970년대 영국에서 발생한 레게의 하위 장르인 러버스 락(Lovers Rock) 사운드까지 섭렵했다.

     

    가장 흥미로운 건 특정한 스타일의 힙합 사운드를 타일러식으로 흡수한 트랙들이다. “SIR BAUDELAIRE”, “LEMONHEAD”, “JUGGERNAUT” 등은 대표적이다. 앨범의 첫 곡 “SIR BAUDELAIRE”는 웨스트사이드 건(WESTSIDE GUNN) “Michael Irvin”를 그대로 가져와 구성만 조금 바꾼 곡이다(*필자 주: 타일러는 SNS를 통해 다시 랩으로 돌아가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계기 중 하나가 웨스트사이드 건이라고 밝혔다.). “LEMONHEAD” “JUGGERNAUT”에서는 메인스트림 힙합 사운드를 차용해 본인의 색깔을 적절하게 입혔다.

     

    그는 앨범에서 타일러 보들레르(Tyler Baudelaire)’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내세운다. 전작들처럼 특정한 서사를 풀기 위해 만든 기믹이 아닌, 럭셔리한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며 세계를 여행하는 타일러의 실제 모습을 투영한 인물이다.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Charles Pierre Baudelaire)에서 따온 이름인 만큼, 랩에 집중하는 앨범의 기조와도 맞닿아있는 듯하다. 굉장히 다양한 주제가 이어지는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현재의 성공과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자기과시다. 그리고 다소 두서없이 느껴지는 트랙들을 묶어주는 것이 바로보들레르라는 캐릭터와 여행 컨셉이다.

     

    커리어 초반처럼 재기발랄하거나 위악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대신 고급스러운 오브제들을 즐기는, 성숙해진 20대 후반의 타일러를 만날 수 있다. “MASSA” “RUNITUP”에서는 각각 과거 노예제 시절 흑인들과 괴짜 취급받았던 어린 시절을 현재의 모습과 비교하며 성공을 드러내고, “MANIFESTO”에서는 캔슬 컬쳐와 작년 ‘Black Lives Matter’ 운동 때 공개적으로 의사를 표현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난들을 반박한다. 더불어 어머니의 메시지가 담긴 스킷 “MOMMA TALK”와 이어지는 “RISE!”에서는 어린 시절 자신을 과격한 방식으로 보호했던 어머니의 의중을 이어받아 헤이터들에게 일침을 날린다.

     

    그런가 하면, 여행지에서 만난 여인과 이뤄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가 “WUSYANAME”, “SWEET / I THOUGHT YOU WANTED TO DANCE”, “WILSHIRE” 세 곡에 걸쳐 이어진다. 마치 [IGOR]의 스핀오프 같은 느낌이다. 이야기의 결말인 “WILSHIRE”에서는 무려 8 36초에 달하는 러닝타임 동안 이뤄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후회와 미련을 아주 구체적인 묘사와 세밀한 감정 표현으로 풀어내 진한 여운을 남긴다. 타일러식 스토리텔링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곡이다.

     

    게스트의 활약도 인상적이다. 전작에서 게스트를 하나의 악기처럼 활용한 것과 달리, 각자 벌스나 후렴을 맡아 존재감을 드러낸다. 포티투 덕(42 Dugg), 영보이 네버 브로크 어게인(YoungBoy Never Broke Again), 릴 우지 버트(Lil Uzi Vert), 퍼렐 등등, 모두 각자의 기량이 충분히 발휘된 느낌이다. 그중에서도 “HOT WIND BLOWS”에 참여한 릴 웨인(Lil Wayne)은 전성기를 훌쩍 뛰어넘는 놀라운 퍼포먼스로 혀를 내두르게 한다. 릴 웨인의 랩에 드라마의 목소리가 맞물리는 순간은 과거 믹스테입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CALL ME IF YOU GET LOST]는 랩 음악에 대한 타일러만의 헌사다. 그는 청소년 때 즐겨들었던 믹스테입 시절의 향수를 그 중심에 있었던 드라마와 함께 재현해냈다. 무엇보다 이미 음악 세계를 확고하게 갖춘 타일러이기에 앨범의 곡들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 커다란 감흥을 안긴다. 여러 장르와 샘플링 소스를 해체하고 재조합해 개성 강한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솜씨가 이제는 완성형에 가까워졌다. 커리어 초기의 작품들이 습작처럼 보일 정도다. 과거의 유산이 2021년의 타일러를 만나 [CALL ME IF YOU GET LOST]라는 걸작으로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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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eungchul (2021-07-21 23:51:43, 218.153.126.***)
      2.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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