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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외 리뷰] Roc Marciano & The Alchemist - The Elephant Man's Bones
    rhythmer | 2022-11-16 | 17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Artist: Roc Marciano & The Alchemist
    Album: The Elephant Man's Bones
    Released: 2022-08-26
    Rating: 
    Reviewer: 강일권









    락 마르시아노(Roc Marciano)
    의 범죄 랩은 선동과 거리가 멀다. 자극적인 엔터테인먼트에 잠식당하지도 않았다. 호화로운 은유와 흡입력 있는 이야기, 샘플 플레이와 무드 조성에 초점을 맞춘 누아르적 프로덕션이 맞물려서 거절 못할 제안과도 같은 힙합이 만들어졌다. 그런 그가 이름처럼 비트 연금술을 행하는 알케미스트(The Alchemist)와 힘을 모았다.

     

    둘은 공통점이 뚜렷하다. 랩과 프로듀서를 겸한다는 사실은 물론, 추구하는 음악의 방향성도 그렇다. 수많은 실력자가 난장을 벌이는 곳에서 전통주의와 전위주의를 거리낌 없이 넘나들며 위조할 수 없는 인장을 새겼다. 과거 미 동부 힙합의 로우(raw)한 맛을 간직하면서도 매너리즘이나 근본주의에 함몰되지 않은 음악을 원하는 리스너에게 현답을 제시한다.

     

    [The Elephant Man's Bones]는 이를 명증하는 작품이다. 락 마르시아노와 알케미스트는 각자의 무기를 하나씩 버리고 역할을 양분했다. 정교한 샘플링을 바탕으로 완성한 프로덕션은 눅눅하고 비선형적인 동시에 아름다우며, 밀도 높은 라임과 언어유희로 설계된 랩은 차분하고 위협적인 동시에 우아하다. 랩과 프로덕션 전부 매우 높은 레벨에 올라있다.

     

    다만 모든 이에게 찬사를 바라는 류의 음악은 아니다. 전부터 그랬듯이 철저하게 문을 걸어 잠그고 기꺼이 내부를 탐색하며 분위기에 취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만 빗장을 푼다. 심장을 요동치게 하는 드럼은 거세되거나 가능한 배제되었고, 루프는 메인으로 나서기보다 정서적으로 압도하는 무드 조성 장치 중 일부로 작용한다. 수록곡 대부분은 텁텁하고 불안정한 기운에 휩싸여있다.

     

    예를 들어 "Rubber Hand Grip"에 꽉 들어찬 공허한 무드와 "Daddy Kane"에서의 불길하게 피어오르는 신스, "Liquid Coke"의 구체 안에 갇힌 듯 웅웅 거리며 흐르는 신스가 만들어낸 멜로디와 갑갑한 사운드의 공존, 그리고 "The Horns of Abraxas"의 혼돈을 초래하는 드럼에서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면, [The Elephant Man's Bones]는 불호일 확률이 높다.

    노파심에 말하건대 듣는 수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취향의 영역이다. 그러나 한 번 사로잡히면 헤어나오기 어렵다. 만약 알케미스트를 과거의 영광 속에 묻어두었던 리스너라면, 이번 앨범을 통해 경솔했던 자신을 탓하게 될 것이다.  

     

    알케미스트의 연금술이 좀 더 우호적으로 변하는 순간도 있다소울풀한 보컬 샘플과 멜로딕하고 아름다운 피아노 루프가 조화를 이뤄 애틋한 여운을 남기는 재즈 랩 "The Elephant Man's Bones", 라이브 질감이 살아있는 드럼 위로 기품 있게 굴러 떨어지는 건반 루프가 감탄을 자아내는 "Zig Zag Zig"은 대표적이다. 우리가 과거의 힙합에서 느끼길 원하는 감흥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락 마르시아노의 래핑은 서서히 정서를 옭아매며 끝내 중독으로 몰고간다. "The Horns of Abraxas" 같은 비트에 뛰어들어 가차없는 드럼의 훼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타이트한 랩으로 어우러질 수 있는 래퍼는 흔치 않다. 그는 비트를 조련해야 할 때와 교감해야 할 때를 정확히 알고 있다.

     

    가사의 완성미 또한 새삼스러울 것 없이 탁월하다. 냉소적인 래핑을 타고 해석의 고통 뒤에 희열을 안기는 라인과 필름 누아르의 오디오 버전 같은 흥미롭고 상세한 스토리텔링이 터져나온다. 그는 확실히 푸샤 티(Pusha T)와 함께 쿨 쥐 랩(Kool G Rap) 이후 최고의 범죄 랩 리리시스트(Lyricist) 왕좌에 가장 가까이 다가서있는 엠씨다.   

     

    앨범 제목은 신체 조직의 일부가 과잉 성장하는 병 탓에 기형적 외모를 갖게되어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엘리펀트 맨' 조셉 메릭(John Merrick: 1862~1890)의 일화로부터 비롯됐다. 두 아티스트가 추구하는 힙합은 우리가 까발리기를 꺼려하는 것일 수도, 숨기고 싶어하는 본질적인 것일 수도 있다. 락 마르시아노는 그들의 로우한 예술관을 엘리펀트 맨의 뼈에 비유하며 다차원적 해석을 요구했다. 왜 마다하겠는가. 이런 걸작을 선사해주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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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mments
      1. Guuu토 (2023-01-11 18:29:00, 223.39.179.***)
      2. 오우 들어봤는데 죽이네요
      1. seungchul (2022-11-26 13:05:18, 175.196.113.**)
      2. 오 엄청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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