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외 리뷰] Young Nudy - Gumbo
- rhythmer | 2023-04-14 | 15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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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Young Nudy
Album: Gumbo
Released: 2023-02-27
Rating:
Reviewer: 강일권
만약 영 누디(Young Nudy)가 사촌 트웬티원 새비지(21 Savage)의 후광에 기대려 했거나 안일하게 트렌드를 좇으려 했다면 지금처럼 주목받기 어려웠을 것이다. 허술한 듯 끌어들이는 독특한 플로우, 간결한 구성의 트랩 뮤직과 서늘한 호러코어(Horrorcore)의 조화, 엉뚱한 순간 터지는 유머, 누디는 애틀랜타 출신 래퍼들의 득세 속에서 고유한 스타일을 통해 열렬한 추종자를 만들어냈다.벌써 네 번째 정규작 [Gumbo] 역시 특유의 기이한 음악으로 이어져 있다. 모든 곡의 제목은 음식 이름에서 따왔으며, 신스와 808드럼의 충실도를 의도적으로 낮춘 로파이(lo-fi) 트랩 프로덕션이 주도한다. 제작자가 함박웃음을 지었을 만한 돈 냄새 나는 후렴구도 없다.
다만 전보다 호러코어 색채가 옅어졌고, 멜로딕한 편곡이 진해졌다. 특히 마지막 곡 “Passion Fruit”은 프로덕션적으로 가장 감정적인 순간을 자아낸다. 누디와 계속 합을 맞춰온 쿱(COUPE)이 만든 곡이다. 전반적으로 아스라하게 깔리는 신스와 후렴구에서 겹쳐지는 또 다른 신스가 90년대 중반의 서정적인 웨스트코스트 힙합 사운드와 오버랩되어 더욱 흥미롭다.
“Portabella”, “Okra”, “Fish & Chips” 등에서도 전과 달리 멜로디를 강조한 프로덕션이 엿보인다. 이 같은 변화가 탐탁치 않은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의 곡들은 적절한 지점에서 분위기를 환기한다. 어쨌든 누디가 쌓아온 고유한 세계는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느 트랩 래퍼들의 결과물에서 듣기 어려운 몽롱한 불쾌함이 앨범 전반에 고스란히 살아있다.
별이 무수히 반짝이는 밤하늘을 떠오르게 하는 부드러운 첫 곡 “Brussel Sprout”에 이어 분위기를 급격히 반전시키는 “Pancake”는 앨범의 하이라이트다. 건조한 질감의 위협적인 베이스가 중첩되어 자아낸 긴장감이 상당하며, 악기 소스의 결합이 매우 유기적이다. 그 위를 능청스럽게 지나가는 누디의 랩이 불길하고 사악한 기운에 방점을 찍었다.
그의 랩은 여전히 펑크 나기 직전의 타이어를 장착한 자동차 같다. 언제 터져도 이상할 것 없는 상태로 아슬아슬하게 험한 길을 주행하는. 기존의 멈블 랩에 대입하는 이들도 있지만, 얼핏 그렇게 느껴질 뿐이다. 그의 톤과 플로우는 비트 템포와 무드에 따라 미세하게 변이하면서 자신의 블랙홀로 서서히 빨아들인다. 그 맛에 한번 중독되면 쉽게 빠져나오기 어렵다.
아쉬운 건 가사다. 이번 앨범에서의 호러코어 컨셉 약화는 프로덕션적으론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았지만, 가사 면에선 개성을 떨어트리는 원인이 됐다. 흑마술과 연쇄살인마 등의 이미지 및 요소를 투영하여 힙합 가사의 오랜 클리셰가 비틀어지고 재창조되는 짜릿함을 안긴 전작들에 비하면, [Gumbo] 속 내용물은 단조롭고 뻔한 갱스터 가사에 그쳤다. 각 제목과의 접점도 희미하다.
그럼에도 [Gumbo]는 응집력 있고 매력적인 작품이다. 비록, 누디의 섬뜩한 재담은 많이 사그라졌지만, 그의 앨범을 찾아 들어야 할 이유만큼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말하자면 개성이 매우 뚜렷하고 호불호가 명확히 갈릴 음악이다. 그래서 상업적 대성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아티스트가 이를 위해 음악 노선을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그러니까 적어도 현 시점에서 누디에게 친절함(?)을 바라는 건 시간낭비다. 차라리 다른 트랩 앨범을 찾아나서는 편이 훨씬 이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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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uu토 (2023-04-14 04:37:55, 115.39.187.***)
- 정말 취향만 맞으면 중독성있게 들을 수 있는 래퍼 같네요.
EAmonster 앨범으로 처음 알게되었고 한동안 자주 돌렸었는데 Gumbo는 자주 손이 가지 않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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