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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외 리뷰] Daniel Caesar - Never Enough
    rhythmer | 2023-05-10 | 35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Artist: Daniel Caesar
    Album: Never Enough
    Released: 2023-04-07
    Rating:
    Reviewer: 김효진









    가끔 타임머신에 관해 생각한다. 그럴 때면 과거의 시간이 뒤따라온다. 과거에 저지른 행동, 그에 대한 후회, 미련, 이따금 일어나는 그리움…. 이 때문에 타임머신을 생각하는 마음은 건조하다 못해 메말랐다. 바람에 버석거리다 부서진 낙엽처럼 말이다.

     

    대니얼 시저(Daniel Caesar)의 음악은 그 마음에 보슬비를 내리는 것만 같다. 과거로 기운 마음을 현재로 데려온다. 포근한 기타 사운드와 함께삶이 한 편의 영화라면 너는 나의 베스트 파트(‘If Life Is A Movie, You Are The Best Part’)’라고 고백하는 “Best Part”가 그렇고, ‘내 손을 잡아주면 다시 사랑을 찾겠다 약속하는(‘If You Can Take My Hand, I Promise We’ll Find Love Again’) “Love Again”이 그렇다. 사랑에 빠진 자는 지금을 산다. 대니얼 시저는 그런 음악을 만들고 부른다.

     

    그는 알앤비에 기반을 두고 다채로운 음악 스펙트럼을 펼쳐왔다. 높은 완성도를 담보한 채로 말이다. [Freudian]에서는 가스펠, 소울, PBR&B 등 장르적 특성을 차용해 레트로한 무드를 조성했다. 팝적인 터치를 가미한 [Case Study 01]을 통해서는 대중에게 비교적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음악으로의 변화를 꾀하기도 했다. 넓은 음악 스펙트럼 위에 축조한 몽환적인 무드, 그 속에 담긴 사랑이라는 키워드까지 각각의 요소가 맞물려 큰 시너지를 냈다.

     

    음악 세계를 폭넓게 그려낸 이전 음악들과 달리 [Never Enough]는 정교하다. 빈티지하면서도 몽환적인 무드를 일관적으로 유지한다. 다만, 섬세한 변주가 곡마다 특성을 살린다. 첫 곡 “Ocho Rios”부터 그렇다. 차분한 신시사이저 위에 베이스가 조화를 이루고 뒤늦게 등장하는 드럼 사운드까지 고요한 분위기를 조성해 앨범에 대한 흥미를 돋운다.

     

    이어지는 “Valentina”에서도 앞선 분위기를 이어받는다. 차분한 기타 사운드로 곡의 시작을 알린다. 그러나 “Ocho Rios”의 뭉툭한 드럼 사운드와는 다르게 날카로운 킥 드럼이 배치되어 리듬감이 더 앞선다. 오르간으로 고요한 분위기를 잇는 “Let Me Go”, 스트링 구성이 배치돼 성스러움이 배어나는 “Cool”, “Pain Is Inevitable”까지 가스펠이 묻은 사운드를 이어가면서도 적재적소에 배치된 섬세한 구성 덕분에 감흥이 살아난다.

     

    그 중 “Always”는 강한 인상을 남기는 트랙이다. 미니멀한 키보드 사운드로 시작해 드럼 사운드가 맞물려 다른 곡들과 비슷하게 진행되는 듯하지만, 중반부부터 새로운 분위기를 환기한다. 시타르 기타 덕분이다. 1970년대 소울 음악에서 자주 사용된 시타르 기타가 멜로디에 어우러지며 빈티지한 소울 사운드를 훌륭하게 구현했다.

     

    보컬 퍼포먼스도 일관적인 분위기를 구축하는 데에 한몫한다. 대니얼 시저는 팔세토 창법으로 부드러운 질감의 보컬을 뽑아내는 데에 능하다. [Never Enough]에서 그 강점이 두드러진다. 여린 듯하면서도 단단한 보컬이 가스펠 사운드에 적절히 녹아든다.

     

    특히 “Superpowers”에서 잘 드러난다. 곡의 초반부엔 오로지 보컬만이 자리한다. 메인이 되는 보컬 뒤로 화음이 점층적으로 쌓인다. 두껍게 쌓인 보컬 화음은 곡의 기반이 되는 동시에 중추가 된다. 뒤따라 등장하는 빈티지한 질감의 베이스가 화음과 조화롭게 어우러지지만, 전반에 자리한 보컬 화음이 곡에 무게감을 더한다. 악기 사운드로 화려하게 사운드를 축조하기보다 촘촘하게 보컬을 쌓아 유려한 사운드를 만들어 낸다. 이전 곡부터 이어져 온 감상을 해치지도 않는다.

     

    대니얼 시저는 여전히 사랑을 쓴다. [Never Enough]에 담긴 곡들도 대개 사랑 노래다. ‘쓴다라는 표현을 사용한 건 가사의 구성이 편지를 닮았기 때문이다. 특정 상황을 묘사하지 않고 마음만을 전한다. 편지는 사랑을 고백하는 가장 성실한 방법이다. 추상적으로 떠오르는 마음을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 가장 알맞은 단어를 골라 적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은 그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는다.

     

    그런 맥락에서 “Always”는 가장 완벽한 러브 레터다. 노랫말 속 화자는 상대와의 추억을 상기시키며 함께 지낸 시간을 강조한다. 이는 화자가 갖는 사랑의 크기를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그것을 무기로 쌍방의 애정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른 이에게 들려도 상관없다(And I Don’t Care, If You’re With Somebody Else)’라고 말하면서 그저나는 한 시절이 아닌 평생이라는 걸 알아 달라(Just Know I’m Not A Phase, I’m Always)’고 얘기할 뿐이다. 차분하고 고요한 프로덕션과 조화를 이루며 성실한 사랑의 마음이 구체적으로 조형됐다.

     

    [Never Enough]는 조금 심심하게 들릴 수도 있다. 비교적 다양한 장르를 오가지 않을뿐더러 차분함을 지속하기 때문이다. 개별 곡의 개성보다는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무드에 집중한 느낌이다. 그러나 세밀하게 쌓아 올린 프로덕션과 그 위에서 유영하는 사랑의 말들은 더할 나위 없다. 삶의 곡절마다 펼치게 되는 오래된 편지처럼 자꾸만 읽고 또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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