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외 리뷰] Noname - Sundial
- rhythmer | 2023-10-04 | 17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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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Noname
Album: Sundial
Released: 2023-08-11
Rating:
Reviewer: 장준영
[Room 25](2018) 이후 노네임(Noname)이 신보를 발매하기까진 무려 5년이 걸렸다. 2010년대를 대표할 만한 걸작을 내놓고 이어진 긴 공백은 다소 야속하게 느껴진다. 그동안 활동은 꽤 있었다. 공연과 음악에 의문과 회의를 가져 중단과 은퇴를 고려했고, 북클럽에 집중하며 음악 외의 가치를 찾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촉발된 BLM 운동, 세계를 강타한 팬데믹이 연달아 삶을 강타하면서 그는 자연스레 목소리를 높였다.흑인과 여성의 권리 및 자유를 주장하기 위해 사회 정치적인 모습을 보여줬으며, 몇몇 싱글을 발표하여 생각을 표현했다. 특히 제이콜(J. Cole)의 비판을 반박하며 예리하고 공격적인 어투로 이야기를 풀어간 "Song 33"는 엔터테인먼트적 재미와 함께 새 앨범에 대한 기대도 한껏 높이는 결과물이었다.
물론 앨범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최초에 차기작으로 내정되었던 [Factory Baby]란 이름의 앨범은 모종의 이유로 발매 취소가 되었고, 피처링과 싱글 발매도 뜸해지며 정말 은퇴에 가까워진 듯 보였다. 하지만 2022년에 은퇴를 다시 번복했으며, 코첼라(Coachella)를 비롯한 여러 페스티벌에 출연했다. 그리고 새 앨범 발매를 예고하며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Sundial]은 그렇게 나왔다.
사건 사고가 잦았던 5년을 반영하듯 볼륨 있는 이야기로 앨범을 가득 채웠다. 노네임은 그간 일상의 순간부터 사회의 현상까지 소재의 폭을 넓게 가져갔다. 새 앨범에선 너비는 유사하면서도 깊이에서 차이를 확실히 나타냈다. 현실에서 정치적이고 행동주의적인 면모를 강하게 나타내는 것과 유사하게, 개인적인 이야기보다 주위의 사회와 시스템에 관한 발언을 중점으로 담았다.
처음 두 곡("black mirror", "hold me down")부터 이야기의 방향성은 명확하다. 톤과 랩의 빠르기만 듣는다면 무척 차분하고 평온하게 들린다. 하지만 실제로 뱉어내는 노랫말은 강력하면서 공격적이다. 백인 중심의 사회에서 끊임없이 평화와 안전을 위협받는 흑인의 현실, 여성이 마주하고 부딪혀야만 하는 장벽과 불평등을 쉼 없이 끄집어낸다. 단편적인 현실의 문제점을 짚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사회 시스템의 문제점까지 지적해 현실을 비판한다.
그중 "namesake"는 가장 핵심적이며 결정적이다. 흑인 사회주의자로서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낸다. 여러 인물과 권력을 직접 언급하며 현실이 당면한 사회, 정치, 환경 문제를 가중하고 견고하게 만드는 것들에 날 선 시선을 표명한다.
특히 슈퍼볼 하프타임 쇼(Super Bowl Halftime Show)에 참여한 리아나(Rihanna), 비욘세(Beyoncé),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그리고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렸던 제이지(Jay-Z)를 나열하며 그들의 참여가 시사하는 전쟁과 환경 오염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부정적인 의견을 표출한다.
그런데 올해 초에 대형 페스티벌 코첼라에 참여한 점이 그간 보여준 입장과 충돌하는 것처럼 비치기도 한다. 이를 노네임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무대에 서지 않겠다고 했는데도 순응해 버렸어, I said I wouldn't perform for them / And somehow I still fell in line'라며 자가당착적인 자신을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비판만큼은 본인도 예외 없는 일관된 입장이, 앨범과 현실에서 주장하는 의도를 더욱더 분명히 드러내는 장치로 작용해 돋보이는 순간이다.
이처럼 다층적이고 정치적인 이야기가 앨범 내내 이어진다. 표현까지 노골적이기 때문에 아주 불편하고 와닿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노네임의 굉장한 랩이 수반되어 그의 입장과 별개로 설득력 있고 즐겁게 다가온다. 때론 편안하고 여유롭게 소리를 내면서, 다른 순간엔 재빠르며, 타이트하게 이어간다. 다양한 플로우에 음절과 음운을 디테일하게 구성하고, 이야기를 오밀조밀하고 치밀하게 꿰어 래퍼로서의 역량을 최대치로 발휘했다.
"potentially the interlude"가 대표적이다. 각운을 치밀하게 맞추면서도 소재를 흩뜨리거나 가사의 밀도를 떨어뜨리지 않는다. 단순히 소리의 쾌감과 재미를 위해 존재하는 단어가 손꼽히게 적다. 노네임의 억양과 톤은 다른 래퍼와 비교했을 때 세거나 강하지 않아도, 촘촘히 구성한 라임과 리드미컬한 플로우 덕에 소리의 맛을 끌어올린다. 이번에도 긴 공백을 무시하듯 본래의 탁월한 스킬을 바탕으로 최상의 퍼포먼스를 들려준다.
노네임의 강점은 역시 단어의 사용과 표현법이다. 일상에서 자주 쓰는 표현은 물론이고 전문적인 단어와 문학적인 비유까지 풍성하게 활용한다. 원주민의 역사와 헌법, 미국 사회의 수많은 이슈와 사건과 관련된 내용 등, 미국과 블랙 컬처에 대한 깊은 식견을 끊임없이 끌고 온다. 동시에 주된 이야기와 라임을 무너뜨리지 않는 점도 무척 영리하다.
프로덕션 또한 굉장하다. 전작은 폴릭스(Phoelix)의 주도로 완성됐던 것과 상이하게, 신보에선 다우드(Daoud), 사바(Saba), 유세프 다예스(Yussef Dayes), 나센트(Nascent) 등등, 여러 프로듀서가 참여했다. 그 영향 때문인지 드럼, 키보드, 베이스가 공통으로 등장하여 재즈의 장르적인 특징을 공유하면서도, 곡마다 구성과 편곡에 차이가 상당해 다채롭다.
"namesake"에선 빠른 비트와 콘트라베이스를 전면에 내세웠고, "afro futurism"에선 샘플링을 적극 활용한 프로덕션이 두드러지며, "gospel?"과 "hold me down"을 통해선 소울과 가스펠의 영향권에서 보컬과 코러스를 사용했다. 악기 소스만 들으면 여느 재즈 트리오의 결과물 같은 "potentially the interlude"는 변칙적이며 빠르게 내달리는 드럼을 필두로 노네임이 랩을 쏟아낼 수 있는 공간을 축조한다.
곡마다 스타일이 무척 다르더라도, 러닝타임 내내 편안한 분위기가 일관성 있게 꾸려진 덕에 이물감을 주는 순간이 적다. 콘트라베이스, 드럼, 피아노 소스를 일관되게 사용한 구성도 통일감을 물씬 느낄 수 있는 이유다.
노네임의 랩에 걸맞게 참여한 아티스트의 퍼포먼스도 준수하다. 아요니(Ayoni), 스타웃(STOUT), 에린 앨런 케인(Eryn Allen Kane)과 같은 보컬은 물론이고, 실크머니($ilkMoney), 빌리 우즈(billy woods)도 등장과 동시에 분위기를 뒤바꾸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반유대주의적 성향을 드러내는 표현을 비롯해 논란의 구절을 다수 실은 제이 일렉트로니카(Jay Electronica)의 벌스도 랩만큼은 앨범을 풍요롭게 만드는 요소다.
최고의 순간은 역시 커먼(Common)의 등장이다. 프로덕션과 정치적인 발언, 지적인 가사까지 많은 면에서 두 사람은 닮았다. 그런 커먼을 초대한 것과 더불어 앨범의 마지막 벌스를 맡긴 점까지 무척 상징적이다. 그 의미가 무색해지지 않게 하려는 듯이 커먼은 여전히 절정의 기량으로 앨범을 멋지게 마무리한다.
해시계는 태양의 일주 운동을 활용하여 시간을 재던 도구다. 과거에 인간이 해시계를 통해 시간을 표현하고 절기를 파악했던 것처럼 노네임은 [Sundial]로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을 확인한다. 하늘이 맑고 푸르를수록 시간을 더 명확히 알 수 있듯이 그는 더욱더 명료한 방식으로 일관하며 자신의 시간을 분명히 드러낸다. 해시계는 정확히 새 걸작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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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ckKongnamu (2023-10-12 16:16:16, 1.223.77.***)
- 오랜만에 가사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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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영 (2023-10-05 07:49:06, 118.235.6.***)
- 정말 좋게 들었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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