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외 리뷰] Diddy - The Love Album: Off The Grid
- rhythmer | 2023-10-18 | 6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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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Diddy
Album: The Love Album: Off The Grid
Released: 2023-09-15
Rating:
Reviewer: 황두하
2022년 8월, 미국 블랙 커뮤니티 내에서 소소한 논쟁이 떠올랐다. 디디(Diddy)의 ‘알앤비는 죽었다(R&B is dead)’라는 발언 때문이었다. 팀발랜드(Timbaland) 등이 참여한 인스타그램 라이브 세션에서 디디는 현재의 알앤비가 예전 같은 감흥을 주지 못한다는 취지로 이처럼 말했다. 또한 2010년대 얼터너티브 알앤비 열풍이 일기 전의 알앤비에 대한 그리움을 내비쳤다. 이후 아린 레이(Arin Ray), 브렌트 페이야즈(Brent Faiyaz) 같은 알앤비의 신진 세력을 포함한 많은 이가 디디의 발언에 저마다 의견을 피력했다.음악 산업 전체로 봤을 때는 여전히 뛰어난 재능의 아티스트가 훌륭한 알앤비 앨범을 매년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주류 음악계로 시야를 좁혀보면 디디의 발언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시저(SZA), 브루노 마스(Bruno Mars),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 위켄드(The Weeknd) 같은 슈퍼스타들이 차트에서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2000년대까지 차트를 풍미했던, 많은 이가 떠올리는 스타일의 알앤비는 주류 음악 시장에서 사라지다시피 했다.
알앤비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관심도 예전만 못하다. 대중적으로 화제가 되는 신인의 등장도 요원하고, 상업적, 비평적으로 파급력을 가진 작품도 전보다 덜하다. 피비알앤비(PBR&B)를 위시한 얼터너티브 알앤비 열풍으로 유행의 최전선에 있던 10년 전과 비교해 보면 이러한 상황을 체감할 수 있다.
그로부터 1년 후, 디디는 약 17년 만에 솔로 정규 앨범 [The Love Album: Off The Grid]를 발표했다. 실상은 알앤비 컴필레이션 앨범에 가깝다. 디디는 2022년 5월 러브 레코즈(Love Records)라는 새로운 레이블을 설립하고 모타운 레코즈(Motown Records)와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올해 초에는 러브 레코즈를 통해 조지(Jozzy)라는 신인 알앤비 아티스트를 데뷔시켰다. 타임라인을 쭉 훑어보면, ‘알앤비는 죽었다’는 발언도 새로운 사업을 위해 계획한 바이럴 마케팅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아귀가 맞아떨어진다.
앨범을 들어보면, 발매와 함께 ‘알앤비는 돌아왔다(R&B is back)’라고 외친 디디의 발언이 단순한 허세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만큼 결과물이 근사하다. 앨범에는 저스틴 비버부터 위켄드, 메리 제이 블라이즈(Mary J. Blige), 재즈민 설리번(Jazmine Sullivan), 베이비페이스(Babyface), 존 레전드(John Legend) 같은 굵직한 이름부터 썸머 워커(Summer Walker), 케이라니(Kehlani), 버나 보이(Burna Boy), 허(H.E.R.) 등등, 비교적 최근에 주목받는 아티스트까지 총집합했다. 그야말로 2023년 버전 알앤비 올스타즈다. 이들은 대부분 가진 기량과 개성을 십분 발휘해 앨범의 완성도에 기여했다.
“Moments”, “Need Somebody”, “Mind Your Business”가 이어지는 중반부는 앨범의 백미다. “Moments”에서는 저스틴 비버가 아카펠라로 시작해 섬세한 강약 조절로 감탄을 자아내고, “Need Somebody”에서는 재즈민 설리번이 진성과 가성을 능숙히 오가는 황홀한 보컬로 베테랑다운 면모를 드러낸다. 더불어 “Mind Your Business”에서는 케이라니와 타이 달라 사인(Ty Dolla $ign)의 목소리가 후반부로 갈수록 겹쳐지며 환상적인 합을 선보인다. 퍼포먼스와 프로덕션, 곡의 배치까지 적절하게 맞물린 구간이다.
이외에도 펑크(Funk)를 차용한 비트 위로 더 드림(The-Dream)의 디지털 가공한 가성이 도시의 밤 풍경을 묘사하는 듯한 “Brought My Love”, 1990년대 풍의 힙합 소울을 재해석한 프로덕션 위로 메리 제이 블라이즈가 특유의 탁성이 매력적인 보컬을 더한 “I Like”, 멜로디에 여백을 두는 제레마이(Jeremih)의 보컬과 일렉 기타 연주가 잘 어우러지는 “Boohoo”, 어쿠스틱 기타와 리듬 파트로 간결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베이비페이스의 보컬 위로 존 레전드의 코러스가 켜켜이 쌓이며 진한 여운을 남기는 “Kim Porter” 등도 주목할 만한 곡들이다.
절묘한 샘플링과 디테일한 구성으로 듣는 재미를 챙긴 구간도 있다. “Homecoming”과 “Intermission”에서는 각각 엑스터시, 패션 앤 판타지(Ecstasy, Passion & Fantasy)의 “Born To Lose You”와 데이비드 포터(David Porter)의 “(I’m Afraid) The Masquerade Is Over”의 한 구절을 샘플링해 곡을 풍성하게 했고, “Stay Long”과 “It Belongs To You”는 마치 한 곡처럼 이어지도록 편곡해서 하나의 이야기를 남녀의 시점으로 나눠 듣는 것만 같다.
반면, 다소 맥이 빠지는 곡들도 있다. “What’s Love”부터 “Stay While”까지 이어지는 초반부는 뻔한 구성과 무난한 퍼포먼스가 아쉽다. 특히, 더티 머니(Dirty Money)의 재결합으로 관심을 모았던 “Deliver Me”는 멜로디 라인과 버스타 라임즈(Busta Rhymes)의 랩 모두 진부하다.
스웨이 리(Swae Lee)가 참여한 “Tough Love”과 위켄드의 마지막 피처링이 될 것이라고 공표한 “Another One of Me”도 마찬가지다. “Another One of Me”는 메트로 부민(Metro Boomin)과 위켄드가 함께한 “Creepin’”의 다운그레이드 버전 같다. 각각 테야나 테일러(Tayana Taylor)와 허가 참여한 “Closer To God”과 “Space”도 평이한 연출의 편곡 탓에 다른 곡들에 비해 귀에 남지 않는다.
[The Love Album: Off The Grid]는 무려 23곡, 약 1시간 23분에 달하는 재생 시간을 자랑한다. 디디는 현시대를 대표하는 블랙뮤직 아티스트를 한데 불러 모아 앨범에 가득 눌러 담았다. 참여 진의 퍼포먼스는 훌륭하고, 2000년대 힙합/알앤비 스타일을 세련되게 재현한 프로덕션도 탁월하다. 다만 몇 곡은 제외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러나 알앤비를 부활시키겠다는 디디의 노력만큼은 헛되지 않았다. 누군가 먼 훗날 2023년의 알앤비를 물어본다면 이 앨범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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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영 (2023-10-31 18:14:11, 118.235.7.**)
- 분명 잘 만든 것 같긴 한데 이걸 굳이 정규로 냈어야 했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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