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외 리뷰] clipping. - Dead Channel Sky
- rhythmer | 2025-04-22 | 10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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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clipping.
Album: Dead Channel Sky
Released: 2025-03-14
Rating:
Reviewer: 이상현
2020년의 [Visions of Bodies Being Burned] 이후 5년 만의 복귀다. 클리핑(Clipping.)은 인더스트리얼 힙합에 대해서 논하자면 빠질 수 없는 그룹이다. 대표곡인 "Say the Name"을 들어보면 알 수 있듯, 빌드업과 믹싱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그들의 프로덕션은 최상급의 질을 보장한다.
이번 앨범에도 인더스트리얼 사운드로 가득 차 있다. 악기 구성은 단출하지만, 전체적인 사운드는 무척 다채롭고 실험적이다. 비트가 끊기거나, 루프를 꼬아서 곡의 진행을 뒤집고 보컬 샘플을 다방면으로 활용해 귀를 사로잡는 "Dominator", 빠른 속도감의 곡으로 긴장감을 유지하는 "Change the Channel"도 마찬가지다. 앨범의 백미인 "Run It"은 폭발적인 사운드와 래핑이 두드러진다. 특히, 루프를 여러 차례 바꿔가며 랩이 불규칙적으로 등장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인터루드 역할의 짧은 러닝타임의 "Go", "Simple Degradation (Plucks 1-13)에서는 그룹의 뛰어난 프로듀싱 능력을 온전히 체감할 수 있다.
굉장히 거칠게 믹스된 "Code", "Dodger" 역시 인더스트리얼 힙합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곡들이다. 신시사이저의 소리가 비정상적으로 크게 믹스되어 있거나 보컬이나 곡의 볼륨이 갑작스레 커지거나 작아지는 식으로 특유의 종잡을 수 없는 사운드가 제대로 표현됐다. 래핑도 공격적이고 폭발적이다. "Dodger"가 특히 그렇다. 정신없다고 느낄 정도의 강렬한 비트 위로 얹어진 빠른 템포의 랩은 단숨에 귀를 잡아끈다.
비교적 느린 템포의 "Scams"에서 보여주는 유려한 플로우와 게스트 티아 노모어(Tia Nomore)의 랩 또한 발군이다. "Keep Pushing"까지의 흐름도 매우 매끄럽다. 중독성 강한 신시사이저 위 탄탄한 랩과 간결한 후렴이 이어지다가 현장감을 강조한 드럼으로 짧게 비트가 바뀌는 순간은 소름이 돋을 정도다.
완성도 높은 프로덕션은 중반부에서도 이어진다. "From the Bodies(Interlude)", "Mood Organ", "Simple Degradation (Plucks 14-18)"과 같은 연주곡 위주의 구성도 주목할 만하다. 날카로운 질감의 소스를 활용해 인더스트리얼 사운드의 쾌감이 극대화된다.
앨범 전반의 분위기와는 상이한 힙 하우스(Hip House) 장르인 "Mirrorshades pt.2"도 흥미롭다. 또 다른 게스트인 캐나다 힙합 듀오 카탈 마드라스(Cartel Madras)의 랩도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날카로운 곡들 사이에 깔끔하게 정돈된 곡을 배치해 발생하는 사운드의 낙차로 분위기를 확실하게 환기한다.
가사도 독특하다. 유명한 사이버펑크 소설 [Neuromancer]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200년 후의 미래에 있을법한 이야기를 풀어낸 "Code"는 해킹으로 돈을 벌며 생계를 지속하는 라이프 스타일에 관한 곡이다. 해커 방지 기업에서 일하는 여성의 이야기와 해킹을 통해 바이러스를 심는 다저(Dodger)가 대통령이 죽이는 이야기인 "Dodger"와도 이야기가 연결된다.
대표적인 사이버펑크 작가 브루스 스털링(Bruce Sterling)이 편집한 책 [Mirrorshades]를 인용한 "Mirrorshades pt. 2"도 마찬가지다. 미러셰이드(Mirrorshades)는 매트릭스와 같은 사이버펑크 장르의 작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선글라스다. 이와 같이 사이버펑크에 대한 깊은 탐구를 기반으로 한 여러 장치를 곳곳에 심어놔 가사를 곱씹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룹이 추구하는 음악의 결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Dead Channel Sky]는 클리핑이라는 이름에 걸려있는 기대를 충족시킨다. 얼핏 파편화되어 있는 것처럼 들리는 사운드를 일관되게 정돈한 프로덕션은 그룹만의 특별한 역량이 빛나는 지점이다. 실험적인 시도만을 내세우는 앨범은 많지만. 이 정도로 탄탄한 완성도를 가진 작품은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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