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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외 리뷰] Lil B - I'm Gay (I'm Happy)
    rhythmer | 2011-07-19 | 18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Artist: Lil B
    Album: I'm Gay (I'm Happy)
    Released: 2011-06-30
    Rating: 
    Reviewer: 강일권









    베이에어리어(Bay Area) 출신의 릴 비(Lil B)는 올 상반기 가장 핫한 랩퍼 중 한 명이었다. 몸담고 있는 그룹 더 팩(The Pack) 활동과 더불어 솔로로서 무려 1,000여 곡이 넘는 트랙을 쏟아내는 괴물 같은 면모를 보이며, 포스트 릴 웨인(Lil Wayne)이라는 수식어까지 따냈다. 특히, 자신의 태생인 베이의 하이피 무브먼트(Hyphy Movement) 뮤지션부터 성향이 뚜렷한 여러 랩퍼들과 콜라보를 통해 어떤 스타일의 비트 위에서도 역량을 펼칠 수 있다는 걸 드러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이의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킨 릴 비는 새 앨범의 타이틀을 ‘I’m Gay’로 정하는 무리수(?)를 두면서 세간의 관심과 기대감을 폭발시키기에 이른다.

    확실히 본작의 타이틀을 ‘I’m Gay’로 내건 건 매우 위험했다. 릴 비의 성정체성에 관한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정말 심각한 건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자를 집합적으로 일컫는다) 커뮤니티’의 반발이었다. 논란이 증폭되자 그는 ‘I’m Happy’라는 부제를 달고, ‘내가 게이는 아니다. 단지 LGBT 커뮤니티를 서포트하고자 하는 의미였다.’라고 해명했지만, 살해협박은 몇 차례나 계속됐다.

    결과적으로 의도치 않게 목숨을 담보로 했던 이번 앨범의 타이틀은 훌륭한 음악과 맞물리며 매우 큰 시너지를 냈다. 마치 ‘너희에게 이 음악을 들려주고 싶어서 좀 위험을 감수해봤어. 분명 민감한 사항이긴 했지만, 어쨌든 음악은 좋잖아?!’라는 식이다. 그동안 릴 비가 소셜네트워킹을 이용하여 매우 적극적이고 체계적으로 자기 홍보를 했던 영민한 인물이었음을 떠올리면, 이런 예상이 틀린 게 아닐지도 모른다. 

    본 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은 일단 프로덕션이다. 빅보이트랙스(BigBoyTraks), 릭 플래임(Rick Flame), 키보드 키드(Keyboard Kid) 등 생소한 이름의 프로듀서들이 록, 영화 스코어, 소울, 재즈 등을 자양분삼아 책임진 프로덕션은 전반적으로 굉장히 소울풀하고 무게감있다. 릴 비의 지난 행보를 감안했을 때 이번 앨범을 샘플링과 루핑에 집중하여 붐 뱁 사운드를 기반으로 일관성 있게 구성했다는 건 의외면서 감탄이 나오는 지점이다. 얼터너티브 록 그룹 구구 돌스(Goo Goo Dolls)의 98년 히트 싱글 “Iris”를 샘플링하여 잔뜩 피치 다운시킨 "I Hate Myself", 영화 [The Lost Boyz]의 OST 수록곡 "Cry Little Sister"를 적절하게 커팅하여 재구성한 “Unchain Me”, 에릭 베네(Eric Benet)의 “Lost In Time”과 쟈니 길(Johnny Gil)의 "Still Waiting"을 각각 샘플링하여 소울풀한 힙합 사운드의 모범 사례를 들려주는 "I Seen That Light"와 "My Last Chance" 등은 본 작의 백미다. 또한, 히사이시 조가 작곡한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스코어를 샘플링한 "Gone Be Okay"도 흥미롭다.

    이처럼 탄탄한 비트와 짜임새 있는 구성의 프로덕션을 꾸리며 훌륭한 귀를 과시한 릴 비의 랩퍼로서 면모도 상당하다. 강렬한 지점 없이 느릿하게 흘러가는 플로우 자체는 그다지 큰 매력이 느껴지지 않지만, 21살의 나이에 개인사를 비롯하여 종교, 소셜네트워킹 등의 민감한 문제를 진지하면서도 여유롭게 다룬 가사를 보고 있으면, 그를 뒤따르는 관심과 수식어들이 단순히 호들갑스러운 것만은 아님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이 앨범의 몇몇 지점에서 릴 비가 모호한 태도를 방패 삼아 자신의 견해를 은연중에 드러내는 방식은 꽤 매력적이다. 종교에 대한 내용을 다룰 때 이러한 점이 부각되는데, ‘만약 신이 정말로 있다면, 내 친구들을 그렇게 죽게 놔두진 않았을 텐데….’, ‘그의 성기 위에 창녀가 있는 걸 보니 (저 사람이) 신이 맞다.’ 등 그가 생각하는 신과 종교의 허상을 신랄하게 비판하다가도 ‘교회에서 내 자신을 찾곤 한다.’라며, 호의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그러나 "Open Thunder Eternal Slumber"를 비롯하여 곡의 군데군데서 드러나는 라인들을 하나로 맞추어 보면, 그가 긍정과 부정 중 어느 쪽인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달 방식은 사회와 교육 문제에 대한 부분을 짚을 때도 드러난다.

    그가 진심으로 ‘LGBT 커뮤니티’를 서포트하고자 했든, 아니었든 간에 본 작은 발표 전 노이즈 마케팅과 같은 효과를 얻었다. 결과물이 근사하니 이전의 논란도 무마되는 분위기다. 간혹 릴 비의 랩핑이 림보에 빠진 듯 맥이 풀린다는 점만 빼면, 흠잡을 데 없는 앨범이다. 본 작에서 “Justin Bieber”나 “Charlie Sheen”처럼 그의 과대포장을 의심하게 한 우스꽝스러운 트랙은 단 한 곡도 찾아볼 수 없다. 또한, 트렌디한 비트로 가득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전통적인 작법의 비트로만 채웠다. 그야말로 릴 비는 본 작을 통해 한 편의 잘 만들어진 반전 영화를 선사한 셈이다(그것도 공짜로). 과장을 조금 보탠다면, 그는 브라이언 싱어요, [I’m Gay (I’m Happy)]는 [유주얼 서스펙트]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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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상훈 (2011-12-27 15:11:50, 67.175.221.**)
      2. 확실히 기복이 심하다는 의견에 한표.. xxl 프리스타일은 좀 들을만 하더군요..
      1. 스페르치 (2011-07-27 11:07:03, 175.118.83.**)
      2. I'm Gay에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군요. 제목이 유일한 오점이랄까요 게이가 앨범 전체 주제도 아닌데 말이죠
      1. Fukka (2011-07-25 13:28:38, 211.246.72.***)
      2. 그러게요 슈게이징 ㅎㅎ 근데 전 "Gone be okay"의 센과 치히로 샘플링이 더 충격적...
      1. 녹슨칼 (2011-07-25 03:35:04, 183.99.125.***)
      2. Open Thunder Eternal Slumber 이 곡 샘플링 더 충격이네요,, slowdive라...
        힙합에서 슈게이징을 듣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1. 뮤직쿤 (2011-07-22 15:43:33, 220.122.244.***)
      2. 구구돌스의 Iris를 샘플링 했다니... 더 듣고 싶네요.
      1. 에히 워럽 (2011-07-22 01:00:07, 118.217.138.*)
      2. 릴비가 에이베어리어 힙합이였군요...ㅋ
      1. 정환희 (2011-07-22 00:24:02, 121.124.4.***)
      2. 잘 봤습니다 ^^
        벅스에 있을런지 ..쩝
      1. spacebug (2011-07-20 21:36:53, 211.41.217.***)
      2. 개인적으로 Lil B는 기복이 엄청 심해서...셀수도 없는 작업물을 내놓지만 그만큼 못 들어줄 곡도 많이 나오니까 선뜻 들어보기가 두렵더군요.
      1. tricky (2011-07-20 20:01:39, 125.132.154.***)
      2. 이 앨범 정말 반전이였습니다. 매우좋게 들었네요.
      1. 김영준 (2011-07-20 13:37:14, 59.9.11.**)
      2. 잘봤습니다 ㅎㅎ 한번 들어나 봐야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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