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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외 리뷰] The Roots - Undun
    rhythmer | 2011-12-20 | 38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Artist: The Roots
    Album: Undun
    Released: 2011-12-06
    Rating: +
    Reviewer: 예동현








    힙합 밴드 루츠(the Roots)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전설적인 존재로 존경받아온 이 위대한 힙합 그룹에 대해 많은 팬은 재즈 힙합, 또는 얼터너티브 힙합이라는 특정한 이미지를 덧씌우고 있었다. 그들의 지난 행보와 퍼포먼스를 돌이킬 때 그런 일련의 지적인 이미지들은 그들의 본모습과 큰 어긋남이 없다. 하지만 라이브 밴드라는 그들의 –랩 게임 내에서는- 독특한 정체성 때문에 그들이 순수한 음악에 더욱 가까운 존재들이며, 모든 (깡패처럼 걷고 포주처럼 말하는 멍청해 보이는) 랩 뮤지션들보다 우월하다는 편견을 가진 일부의 의견도 있다. 여기서 말하건대 그런 편견이나 선입관은 무지와 몰이해에서 비롯된 헛소리이며, 루츠는 그들 자체로 유니크하고 실력있고, 변화무쌍하고 순수한 존재들이다. 그들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드럼 스틱과 그를 둘러싼 악기들이 아니라 루츠라는 밴드와 그들의 음악 그 자체다.

    루츠의 신작 [Undun]을 이해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이미 널리 알려진 대로 이 앨범은 뉴욕 출신으로 불행한 삶을 살다가 쓸쓸한 최후를 맞는 레드포드 스티븐스(Redford Stephens)라는 가상의 인물을 바탕으로 한 컨셉트 앨범이다. 그리고 그의 스토리와 앨범을 연결짓는 자세한 내용과 컨셉트는 이미 오케이플레이어(Okayplayer) 사이트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으므로 굳이 여기서는 다루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대로 이를 배제하더라도 앨범을 느낄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컨셉트 앨범이라는 틀 안에서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각각의 에피소드와 사건, 구절들에 숨겨진 의미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고 굳이 컨셉트를 이해하지 않더라도 힙합 밴드 루츠의 새로운 스타일의 앨범으로 편하게 감상할 수도 있다.

    이 앨범의 내러티브는 전체적인 트랙의 배치와 구성을 통해 전체적인 인물의 스토리와 역순으로 이루어지며, 시작부터 비극을 전제로 한 덕분에 앨범의 말미에 이르러 더 큰 드라마와 여운을 만들어낸다. 블랙 쏘웃(Black Thought)의 불분명한 시점의 가사들은 다양한 게스트 진의 가사와 함께 자연스러운 스토리로 엮인다. 블랙 쏘웃이 이번 앨범에서 뿜어내는 에너지와 퍼포먼스는 실로 대단한데, 특유의 길게 뽑은 라인 위에 다양한 라임을 촘촘히 박아넣는 그의 스타일은 약간의 여백과 함께 전체적인 사운드에 더 깊은 공간감마저 만들어내는 듯하다. 결코 뻔한 연출을 하지 않는 그의 가사는 세밀한 묘사와 군데군데 강조된 구절들로 완급조절을 해내며 약간은 심각한 가사에 여유를 심어놓았다. 덕분에 한 인생이 파괴되어가는 과정은 때로는 감성적으로, 때로는 이성적으로 청자에게 강하게 각인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이 앨범이 던지는 메시지들이 음악가로서 자질과 태도, 그리고 기술(라이밍)에 대한 은유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컨셉트 앨범으로서 갖는 이야기를 모른 채 내용만으로 감상한다면, 주인공의 일생과 상황이 현재의 음악 씬(특히, 힙합 씬)을 은유하는 은밀한 상징으로 해석된다. 고리타분한 모티브이긴 하지만, 한 갱스터의 흥망성쇠에 대한 이야기를 힙합 씬의 상황과 은밀하지만, 구체적으로 그려낸 블랙 쏘웃의 성과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사운드와 구성 역시 거의 흠잡을 데 없다. 루츠는 이번 앨범을 통해 그들의 모든 커리어를 집대성해놓았다. 특유의 내공을 바탕으로 다채로운 장르의 요소들을 끄집어오고, 그간 행해왔던 음악적 실험을 앨범의 군데군데에 적절하게 심어 놓는 솜씨가 변함없다. 반면 이 앨범은 이전의 디스코그래피와 비교해 볼 때 전례 없이 전체적으로 다운된 톤을 유지하며, 각 트랙은 더 안정적이면서 흐름은 좀 더 극적이다. 특히, “One Time”에서 귀를 통해 들어와 머릿속에서 둥글게 울려 퍼지는 듯한 드럼과 심벌즈의 공간감은 무겁게 짓누르는 건반 사운드에 의해 균형감각을 획득하고 차분하게 목소리를 감싸 안는 인상적인 연출을 선보인다. 한편, “The OtherSide”의 차가운 건반 사운드 위를 그르렁대며 달려가는 블랙 쏘웃의 분노와 열망 가득한 랩은 후렴구에 이르러 분출하는 장엄하리만치 따스한 해먼드 오르간을 후광처럼 둘러싼 비랄(Bilal)의 연설과도 같은 후렴구를 통해 구원받는 느낌이다. 하지만 “The OtherSide”를 통해 동정받고 정당화될 뻔한 레드포드의 삶은 이어지는 “Stomp”의 분출하는 욕망에 가득 찬 열정과 그 속에 숨겨진, 하지만 감출 수 없는 본능적 폭력에 의해 지배되어 가고 있음을 깨닫게 하며 관객들을 복잡미묘한 감정의 소용돌이로 던져놓는다. 말미에 연속으로 배치된 세 개의 인스트루멘탈 트랙은 그들이 ‘밴드’라는 어떤 미묘한 말장난에 구속되지 않는다는 느낌마저 주는데, 이 비극적 이야기의 결말로서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

    본 작 [Undun]에 대한 현지의 반응은 이미 난리가 났다. 힙합디엑스(HiphopDX), 시카고 트리뷴(Chicago Tribune)을 비롯한 여러 매체는 이 앨범에 만점을 줬고 다른 매체들의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루츠는 그런 호평에 익숙하겠지만, 사실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건대 루츠의 긴 역사에서 만점이 여기저기서 터지는 시대적 화제작이나 역사적 걸작은 거의 없었다. 고른 완성도와 다양한 사운드 덕분에 그들의 열혈팬 사이에서도 루츠의 최고작에 대한 왈가왈부가 이루어지는 현실만 봐도 알 수 있다. 불운한 뮤지션이 가질 필생의 목표가 루츠에겐 그들의 기나긴 역사 중의 한 지점일 뿐이었고, 때문에 팬들은 그들의 수작 릴레이에 약간은 무덤덤해져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그러했다. 그 때문에 이번 앨범을 듣고 받았던 기분 좋은 충격의 여운은 꽤 오래 지속될 것 같다. 쓸모없는 지적 허영의 산물이 아니며, 자의식 과잉에 의해 목적 없이 오락가락하는 앨범도 아니다. 그토록 많은 업적을 쌓아왔음에도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노력해서 그에 도달한 이 앨범은 단연코 루츠의 이름으로 발매된 최고의 앨범 가운데 하나이며, 올해 최고의 앨범 가운데 한 장임이 틀림없다.



    Track List
    1. Dun
    2. Sleep
    3. Make My (featuring Big K.R.I.T. & Dice Raw)
    4. One Time (featuring Phonte & Dice Raw)
    5. Kool On (featuring Greg Porn & Truck North)
    6. The Other Side (featuring Bilal & Greg Porn)
    7. Stomp (featuring Greg Porn & Just Blaze)
    8. Lighthouse (featuring Dice Raw)
    9. I Remember
    10. Tip The Scale (featuring Dice Raw)
    11. Redford (For Yia-Yia & Pappou)
    12. Possibility (2nd Movement)  
    13. Will To Power (3rd Movement)  
    14. Finality (4th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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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윤정준 (2012-12-08 10:29:03, 122.34.149.***)
      2. Track 1 부터 Track 14 까지 1곡처럼 느껴지는 앨범
        완벽한 컨셉 완벽한 구성 완벽한 사운드 완벽한 랩
      1. 이규희 (2012-01-10 13:48:23, 112.216.200.***)
      2. 루츠는 언제들어도 좋군요 dice raw들을때 마다 개코생각나는건 저뿐인가요 ㅋ
      1. 이주한 (2011-12-23 21:49:25, 67.86.27.***)
      2. 별 31251개를 줘도 아깝지 않을 올해 힙합의 범주에 두지 않고도 최고의 앨범
      1. 뮤직쿤 (2011-12-22 22:18:12, 180.182.71.**)
      2. 이글을 보고 나니까 오히려 신보보다 루츠의 나머지 앨범을 다시 복습하고 싶어졌어요. ㅋ
      1. 정재기 (2011-12-22 20:16:06, 121.64.143.***)
      2. 와 루츠 신보가 나왔었다니..거기다 리드머 점수가 높네요...듣고싶다아 ㅠㅠ
      1. 조성호 (2011-12-21 22:31:45, 121.173.62.***)
      2. 아웃캐스트가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서서히 루츠가 최고가 되고 있는 지금 우리의 세기.
      1. last one (2011-12-21 00:58:20, 125.176.32.***)
      2. 참 루츠는 평이한 멜로디로도 다른 느낌을 주는게 대단한 팀인거같아요

        저도 추천!
      1. kayako (2011-12-20 23:56:13, 121.163.80.**)
      2. 들을때마다 뼈가 으스러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쓸쓸하네요..
      1. 김도현 (2011-12-20 23:43:35, 180.66.18.***)
      2. 올해 최고의 앨범!
      1. nasty (2011-12-20 22:57:03, 112.145.2.***)
      2. 동시대에 살고있다는 게 감격스러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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