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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외 리뷰] Lady Sovereign - Public Warning
    rhythmer | 2009-10-27 | 1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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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ist: Lady Sovereign
    Album: Public Warning
    Released : 2006-10-31
    Rating : +
    Reviewer : 예동현







    이때까지 힙합계에 등장한 여성 뮤지션들은 크게 두 가지의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여느 갱스터 래퍼 못지않은 거친 입담과 관능적인 외모로 섹스어필하는 갱스터 비치 스타일의 부류가 있는가 하면 높은 교육을 바탕으로 사회와 문화, 여성에 관한 담론들을 이끌어내는 페미니스트적인 부류도 있었다. 물론 상반되는 두 부류 사이에서 줄타기를 시도하거나 아예 그 범주의 밖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여성 힙합 뮤지션들도 존재하긴 하지만 그들을 예외로 하고 다시금 랩 게임 안에서 여성 뮤지션들을 임의대로 편을 가르면 대강 이런 구도가 형성된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전자의 경우는 메인스트림 힙합 씬을, 후자의 경우는 주류보다는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뮤지션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로린 힐(Lauryn Hill)이나 퀸 라티파(Queen Latifah)같은 경우에는 후자의 영역에 포함시킬만하면서도 주류를 무대로 활동했으나 21세기 이후의 주류 힙합 씬에는 이들과 같은 여성 뮤지션들이 자취를 감추고 지나친 섹스어필만을 강조하는 갱스터 비치들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막상 주류 힙합 씬에서 자의식과 대중들이 공감할 수 있는 여성 뮤지션들이 사라지니 좀 허전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의아하기도 하다. 어쩔 수 없이 거리의 여성으로 성장한 갱스터 비치들이 살아남고자 선택한 섹스어필은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는 바이기도 하지만 과연 여성 힙합 뮤지션이 섹시함을 버리고 대중의 공감을 얻는 것이 이제는 불가능한 일일까?

    데프 잼을 통해 데뷔한 영국 출신의 여성 MC 레이디 소버린(Lady Sovereign)은 이런 대세를 완강히 거부한다. 그녀는 뮤직비디오에서 탱크탑과 핫팬츠를 걸치고 엉덩이를 흔들라고 선동하는 대신 헐렁한 배기 셔츠를 입고 영국식 억양에 레게통 스타일의 플로우를 뿜어대며 눈을 부라린다. 귀여운 외모의 이 당돌한 아가씨의 음악은 섹시함과는 거리가 멀고 그렇다고 해서 상큼 발랄한 귀여운 팝-랩을 떠올릴 수도 없다. 미씨 엘리엇 스타일의 크렁크 넘버 “Love Me Or Hate Me"는 분명 데프 잼의 입김이 닿은 사운드이긴 하지만 가사는 그녀의 태도를 가장 적절하게 요약하고 있다. 샴페인보다는 하이네켄 맥주가 더 좋고 섹시한 큰 가슴 대신 보잘것없는 몸을 큰 셔츠로 뒤집어 쓴 그녀를 좋아한다면 그녀는 기꺼이 고마워할 것이고("If You Love Me Then - Thank You"), 그런 그녀가 싫다면 엿이나 먹으란다("If you Hate me Then - Fuck You"). 또 다른 클럽튠 ”Random"에서는 루다크리스(Ludacris), 제이퀀(J-Kwon)과 칭기(Chingy)의 히트곡들을 패러디한 재미있는 가사가 돋보이지만 레이디 소버린은 단순히 익숙한 구절을 빌려와 쓰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비틀어 자신만의 클럽 찬가를 완성한다.

    하지만, 이상의 두 곡을 제외하면 이 앨범은 사운드마저도 미국 힙합 씬의 전형성을 배척한다. 앨범의 사운드는 소울과 알앤비 대신 레게와 브릿 팝, 정글, 일렉트로니카, 크렁크와 락의 멜로디와 리듬이 요동친다. 이들은 때로는 강렬하게 울려 퍼지다가 이내 뒤틀려 왜곡되기도 하고 한꺼번에 등장하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셀프타이틀 곡 “Public Warning"은 앨범의 베스트 트랙이다. 스스로를 ”지식의 보고이자 올드스쿨 소버사우루스(자신의 랩네임에 공룡의 사우루스를 합성시킨)“로 묘사하며 강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소버린의 화려한 랩과 숨 가쁘게 달려가는 폭발적인 리듬의 향연은 흡사 80년대 후반 올드스쿨 비-보이(B-Boy)/비-걸(B-Girl)들의 열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미래적인 소스들은 고전적인 형식과 창의적인 시도들에 의해 오히려 올드스쿨 클래식 앨범을 떠올리게 한다. 애초의 편 가르기로 돌아가 그녀가 어느 쪽인지를 생각해보자. 그녀는 섹스어필을 지양하고 거리의 마약과 섹스 얘기는 들려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레이디 소버린은 후자에 속하는 페미니스트적인 가사와 지적인 면모를 뽐내는가?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그녀는 여느 하드코어 MC 못지않은 자기 과시를 선보이는가하면 속물근성을 슬쩍 내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주류의 유행을 쫓기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과 이야기를 선보였다는 점은 후자 쪽의 뮤지션들과 비슷하다.

    레이디 소버린이 내뱉는 독특한 악센트의 영국식 발음과 레게통 스타일의 플로우는 분명 취향을 탈수도 있겠지만 현란한 라임과 노련한 송 메이킹 능력, 재기 발랄하면서도 다분히 공격적인 가사는 분명 인정받을만하다. 하지만, 이 역동적이고 신선한 앨범이 대중들의 지지를 얻기는 다소 힘들어 보인 것은 사실이다. 소버린은 보편적인 감정들에 날카로운 자의식까지 보태어 솔직하게 얘기를 써내려갔지만 틴-팝에 길든 대중들의 감성에 타협하기에는 너무 강렬하고 자극적이다. 물론 나는 이런 소버린의 태도에 만족하고 훌륭하다고 생각되지만 진정한 여성상을 잃어버린 미국 주류 힙합 씬에는 더 많은 이들이 등장해 저마다의 이야기를 풀어놓아야 하고 나는 데프 잼을 등에 업고도 자신의 태도를 까발려버린 강심장을 가진 레이디 소버린이 그런 여성 뮤지션들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할 계기를 제공해주기를 바랬다. 본작은 그러지 못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자들은 여전히 즐거울 것이다. 본작이 최고의 명작까지는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들어볼 만한 좋은 앨범임은 분명하니까.



    기사작성 / RHYTHMER.NET 예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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