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콜 리뷰] 버벌진트 - 무명
- rhythmer | 2022-07-13 | 29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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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버벌진트(Verbal Jint)
Album: 무명
Released: 2007-11-27
Rating:
Reviewer: 강일권
많은 래퍼가 리스너를 디스한다. 이는 한국 힙합 씬에서 도드라지는 주제 중 하나다. 힙합이 언더그라운드였던 과거나 주류가 된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도대체 무엇이 래퍼들을 그토록 화나게 하는 걸까? 대다수의 리스너가 수준 높은 음악을 알아듣지 못하는 막귀여서일까, 힙합의 발전을 저해하는 헤이터(hater)여서일까.어쩌면 그들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래퍼 대부분의 펀치는 유효타가 되지 못한 채 허공만 가른다. 명분이 부족하다 보니 설득력이 약한 탓이다. 리스너의 헤이팅에 실제로 휘말려서 화제가 되지 않은 이상, 결국 본인의 음악을 좋아하지 않거나 비판하는 이에 대한 방어기제로 다가올 뿐이다. 그들이 공격하는 대상 중 상당수가 결국 한국 힙합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군이라는 사실에서 아이러니한 감정마저 든다.
한국 힙합의 라임 체계를 뒤튼 모던 라이머, 버벌진트(Verbal Jint)는 이 분야(?)에서 가장 유의미한 성과를 기록한 래퍼일 것이다. 그는 2007년에 공개한 "투올더힙합키즈 투"란 곡으로 박자를 절고 랩에 깃털뿐인 래퍼들과 그의 것처럼 수준 높은 랩을 이해하지 못하는 후진 귀의 리스너를 무차별 디스했다. 그해 발표한 EP [Favorite]에 쏟아진 일부 힙합 팬의 비난과 래퍼 제이 독(J-Dogg)의 디스를 마주한 상황이었다.
버벌진트의 공격은 매우 집요하고 가혹하다. 가짜 래퍼와 막귀 리스너를 씬에서 모두 제거할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는 듯이 나아간다. 그의 커리어를 초반부터 좆아온 이라면, 이 같은 광경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To All The Hip-Hop Kids"(2000)부터 드러낸 맹수의 이빨이 "Do What I Do"(2004)를 지나 "투올더힙합키즈 투"에 이르러 먹이사슬 최상위 포식자의 것으로 완벽하게 업그레이드됐다.
비트에 쫀득하게 들러붙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래핑은 강한 한 방으로 목숨을 앗는 둔기보다 지속적으로 찔러대며 고통을 주는 송곳에 가깝고, 사운드소스와 신스가 오밀조밀 들어찬 오래된엘피의 비트는 으레 호전적이거나 장중한 무드로 연출해야 효과적이라는 디스 랩 프로덕션의 고정관념을 부숴버린다. 버벌진트를 대표하는 곡일뿐만 아니라 한국 힙합 역사를 통틀어 손꼽을만한 명곡이다.
앨범 [무명]의 중심을 잡는 건 "투올더힙합키즈 투"처럼 ‘시도’에 방점이 찍힌 곡이다. 래핑, 가사, 프로덕션, 전부 이때까지의 한국 힙합 클리셰와 거리가 멀다. 신선한 시도는 대체로 성공적이다. "투올더힙합키즈 투"와 함께 투톱을 이루는 “삼박자”도 좋은 예다.
뉴올(Nuol)이 만든 비트는 래퍼에게 매우 불친절하다. 3박자 여부에 대한 엄밀한 분석을 떠나서 분명하게 구분되는 4/4박자 비트에 랩을 얹는 것이 보편적이던 당시의 한국 힙합에서 “삼박자” 프로덕션은 획기적이었다. 웬만한 실력으론 넘보기 어려울 비트 위에서 버벌진트는 전혀 흔들림없이 차근차근 박자를 조지며 나아간다.
또한, 일렉트로 펑크(Electro funk)의 영향과 미니멀한 구성이 탁월하게 융화된 “Trouble”, 크루가 모인 이유처럼(‘부드러운 힙합에 길들여진 사람들을 최대한 불쾌하게 해보자.’) 일부러 짓궂게 심난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듯한 “Overclass 2007” 등의 곡에서도 기존의 한국 힙합 음악에서 듣기 어려웠던 스타일과 탄탄한 완성도의 프로덕션이 돋보인다.
한편, 냉소적인 태도를 유지해오던 버벌진트가 소년기의 추억을 꺼내 놓는 “90년대에게”로 앨범을 마무리하는 모습은 이질적인 동시에 극적이다. 그에게 1990년대는 ‘TV에 제대로 된 음악은 잘 안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음악적 자양분을 쌓으며 아티스트로서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계기가 된 시기다.
그에 앞서 세계의 많은 래퍼와 장르 팬에게는 힙합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시대로 꼽힌다. 이 곡의 비트는 알앤비, 재즈 펑크 그룹 더 블랙버즈(The Blackbyrds)의 “Love Don't Strike Twice”(1980)를 샘플링하여 만든 전형적인 90년대 스타일이다. 그러니까 “90년대에게”는 버벌진트가 본인의 소년기뿐만 아니라 힙합의 황금기에 바치는 애정어린 헌사다. 이상 두 개의 의미가 중첩되어 적잖은 여운을 남긴다.
[무명]은 구성부터 독특했다. 전작 [Favorite]에 수록된 “Favorite”의 리믹스 버전을 첫 곡으로 배치했는가 하면, 전혀 예상치 못한 커버곡 “무비스타”(토마토 원곡)가 뜬금없이 튀어나오고, 라디오 ‘하하의 텐텐클럽’을 위해 만들었으나 사용되지 않은 시그널송까지 수록했다. 그야말로 믹스테입(Mixtape) 같은 구성의 정규 앨범이다.
이 자체가 문제 될 건 없다. “Favorite (Gettheride Remix)”가 첫 곡인 것도 괜찮다. 그가 리스펙트해온 고구마의 곡을 커버한 “무비스타” 역시 습작으로 노래를 녹음한 듯한 퀄리티 덕에 긴 인털루드(Interlude) 트랙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Unused Piece For Ten Ten Club”은 확실히 문제다. 곡을 수록한 의중이 무엇이었든 간에 -개인적인 아쉬움 때문이었든, 짧은 시그널송에서도 남다르다는 걸 과시하려 했든- “삼박자”로 달궈진 분위기를 순식간에 식히고 앨범의 흐름을 깨버린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참여 진의 랩이다. 실력에 따른 감흥의 차이가 너무 크다. 오버클래스 멤버 10인이 피처링한 “Overclass 2007”을 보자(*주: 제이독 디스곡을 단체곡으로 재구성했다.). 호불호는 갈릴 수 있으나 완성도만큼은 탁월한 비트와 버벌진트의 타이트한 랩이 맞물려 쾌감을 주는 것도 잠시, 펜토와 제이에이(Ja)의 랩을 제외하면, 지루함의 연속이다. 게다가 러닝타임이 무려 10분. 이 곡을 끝까지 듣는 건 매우 힘겨운 일이다.
특히 웜맨의 랩은 [무명]의 아킬레스건이다. “Overclass 2007”에선 참여 진의 하향평준화된 퍼포먼스 덕분에(?) 특별히 부각되지 않았지만, "Cold As Ice"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이 곡의 비트는 랩을 부각하기 위한 장치 정도로 구성됐다. 즉 앨범의 어떤 곡보다도 고도의 랩 기술이 전제되어야 감흥을 키울 수 있는 곡이다. 그러나 웜맨의 랩은 버벌진트와 스윙스가 잘 쌓아올린 탑을 순식간에 무너트린다.
이처럼 앨범엔 "투올더힙합키즈 투", "삼박자"처럼 지금 들어도 랩과 비트가 더할 나위 없는 곡과 "Overclass 2007"처럼 비트는 끝내주지만, (게스트의) 랩이 엉망인 곡, "Unused Piece For Ten Ten Club"처럼 흐름을 깨는 곡이 혼재한다. 지금 와서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차라리 "Overclass 2007"을 원래 버전 그대로 수록하고, "Cold As Ice"를 스윙스와 단 둘이 이끌어갔다면, [무명]에 대한 평은 더욱 높아졌을 것이다.
그래서 [무명]은 참으로 독특한 감흥을 주는 작품이다. 이토록 치명적인 단점이 있음에도 앨범에 손이 가게 하고, 듣다 보면 빨려 들어간다. 늘 논쟁거리를 몰고 다니는 버벌진트란 캐릭터, 싫어할 순 있어도 부정할 순 없는 랩 실력, 루머와 논란으로 둘러싸인 앨범의 탄생 배경, 일부 아쉬운 부분을 덮어버릴만큼 끝내주는 몇몇 곡들까지, 이 모든 요소가 충돌하며 빚어진 결과다. 당시엔 성의 없어 보였던 커버 아트워크마저 시간이 지나고 보니 강렬하게 다가온다.
겨우 리스너를 공격하는 가사와 산만한 구성임에도 이렇게 거부하기 어려운 앨범이라니. 발매된 지 무려 15년이 흘렀지만, [무명] 속 음악은 여전히 세련됐고, 탁월하다. (당시의) 버벌진트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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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sha (2022-07-16 06:44:53, 175.127.64.***)
- 2007~8년 버벌진트가 국힙계 쌈싸먹던 시절 ... 산이가 힙플에서 서던랩 찬양하던 시절... 제이키드먼이 간지로 유명세를 떨치던 시절... 그시절이 너무 그립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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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rlee (2022-07-14 20:58:50, 116.126.28.***)
- 못난 년이 할수 있는 화풀이라고는 자기 좋아해주는 남자한테 밖에 없는 것처럼 못난 래퍼가 할 수 있는 짓거리는 리스너 욕하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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