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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콜 리뷰] Fugees - The Score
    rhythmer | 2009-10-22 | 2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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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ist: Fugees
    Album: The Score
    Released : 1996-02-13
    Rating : +
    Reviewer : 황순욱





    지금은 푸지스(Fugees)라는 이름보다 와이클레프 장(Wyclef Jean)이나 로린 힐(Lauryn Hill)이라는 개별 뮤지션이 더 익숙하지만, 이들이 한 팀이었을 때, 힙합 씬은 마약과 폭력의 사이에서 구원자를 얻은 것만 같았다. 특히, 그들의 두 번째 앨범 [The Score]가 그랬다. 우탱(Wu-Tang)과 지 펑크(G-Funk)만이 지지를 받던 시절, 푸지스의 음악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손길을 뻗었고, 사람들은 그에 반응했다. 그들은 새로웠지만 다정했고, 따뜻했지만 날카로웠다. 이들에게 팬들은 1600만 장의 판매량으로, 평단은 그래미 올해의 랩 앨범(Best Rap Album) 수상으로 보답했는데, 조금도 부풀려지지 않은 환영인사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뒤로는 푸지스의 이름이 담긴 앨범이 나오지 않았다(부트렉과 베스트 앨범은 있었지만). 세 멤버의 솔로 프로젝트가 각각 성공을 거두고 불화도 생겨나면서 이들이 다시 힘을 합쳐야 할 이유는 점점 희미해졌고, 아쉬운 것은 당시를 추억하는 이들뿐이었다. 그래서 이 앨범은 더 소중하게 들린다.

    와이클레프와 프라스(Pras)는 아이티 출신의 이주민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흑인 사회에서도 또다시 인종과 국적이라는 편 가르기에 어렵게 지내야 했으며, 결국 음악이라는 피난처에 매달리는 것을 위로로 삼아야 했다. 돌이켜보면 총과 마약을 잡는 대신에 마이크와 기타를 들었던 선택이 푸지스를 만들었던 것이다. 와이클레프는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음악에 관심을 드리우고는 열정을 보였다. 선물 받은 한 대의 기타가 그의 꿈이었고, 지겨운 일상으로부터의 탈출구였다. 또한, 프라스 역시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관심을 뒀고, 15세 때, 세 살이 어린 로린 힐을 만났다. 그리고는 사촌이었던 와이클레프에게 그녀를 소개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트랜즈레이터 크루(Tranzlator Crew)라는 팀을 결성하게 된다(첫 앨범에는 이 이름이 함께 표기되어 있다). 후에 푸지스라는 좀 더 정체성이 담긴 이름으로 바뀌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힐에게는 좀 더 빠른 길도 있었다. 그녀의 부모님은 영어 강사와 컴퓨터 프로그래머라는 벌이가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있었고, 집에는 모타운(Motown)의 음반이 충분히 있었다. 13살에는 유명 TV 쇼(It's Showtime at the Apollo)에서 박수를 받았고, 영화에도 여러 번 출연했다. 특히, 1993년에 찍은 [시스터 액트 2(Sister Act 2: Back in the Habit)]는 그녀 혼자서도 돋보이기에 충분함을 예견했다. 하지만, 푸지스는 결속력이 있었다. 서로 믿었기에 그들은 욕심을 내지 않았고, 언젠가는 통할 능력이 충분했다. 그렇게 꿈을 합친 이들은 1994년, 마침내 [Blunted on Reality]를 발표한다. 하지만, 자신들의 자아를 찾기에는 경험이 부족했던 것일까. 그들은 성공이라는 목표에 다가가려고 당시 모든 랩 뮤지션들이 하던 대로 빠르고 강렬하게 퍼부었다. 그리고 펑키한 비트는 마치 사이프레스 힐(Cypress Hill) 같았다. 그냥 괜찮은 음악이었지만 시장에 그런 음악은 이미 포화상태였다. 한 번의 시행착오. 결국, 이들은 자신들의 색채를 찾아 [The Score]를 만들어낸다.

    앞선 실패는 지독한 약이었을까. [The Score]는 온갖 호평과 찬사를 다 받았다. 조금 과장하면, 어느 면에서도 떨어질 것이 없는 무결한 음반이었다. 라임은 갱스터 일색이던 씬에 의식을 불어넣는 것이었으며, 푸지스 특유의 포용력이 여러 장르를 완벽한 방식으로 흡수해 그루브를 완성하고, 샘플 콜라주의 차원에서는 너무나 능숙해서 원래의 곡들이 어색할 정도였다. 앨범 발매에 앞서 공개된 첫 싱글 “Fu-Gee-La”는 티나 마리(Teena Marie)의 보컬을 로린 힐이 소울풀한 코러스로 바꾸어 놓고, 램지 루이스(Ramsey Lewis)의 상쾌한 키보드 터치를 드럼 루프 사이로 감추면서 새로운 푸지스의 색깔을 내고 있다. 멤버들의 다급하던 랩핑은 안정되었고, 사운드의 구성요소는 힙합을 근간으로 레게와 포크, 록 등을 결합한 이제껏 듣지 못했던 새로운 방식의 조합이었다. 반면, 와이클레프와 프라스는 아이티 출신답게 독특한 악센트로 낱말을 풀며 활기를 띤다. 하지만, 앨범의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Killing Me Softly”의 차지일 것이다. 빌보드 Hot 100의 2위에 올랐고, R&B/Hiphop 부문에서는 1위를 차지한 이 트랙은 로버타 플랙(Roberta Flack) 원곡의 영향이 크긴 하지만, 새로운 감정이입 방식으로 풀어내는 로린 힐의 보컬이 가장 빛나는 곡이다. 물론, 무디 블루스(The Moody Blues)와 리틀 피트(Little Feat)의 사운드를 슬쩍 첨가한 와이클레프의 감각도 칭찬해야 한다.

    다르게 소울과 힙합의 무게 중심을 찾아낸 “Ready or Not” 역시 많은 사랑을 얻었다. 몇 개의 레이어로 덧씌운 로린 힐의 보컬, 1969년 델포닉스(The Delfonics)의 히트곡에서 가져온 후렴구, 뉴에이지 뮤지션 엔야의 “Boadicea”에서 따온 허밍, 그리고 모던 재즈 쿼텟(Modern Jazz Quartet)이나 헤드헌터스(The Headhunters)의 앨범에서 살포시 떼어낸 재즈 샘플 몇 개로 꾸린 이 곡은 좌우로 패닝되는 특이한 진행으로 진한 인상을 남긴다. 여기에 일깨움이 있는 노랫말은 덤. 그 밖에도 밥 말리(Bob Marley)와 레게에 대한 영향을 그대로 투과하는 “No Woman, No Cry”의 리메이크나 존 포르테(John Forte)가 참여해 아이티 이주민들의 결속력을 보여주는 “Family Business” 등도 주의 깊게 들어볼 만하다. 추가로 보너스 트랙이라 명시된 후반부의 트랙들도 놓치면 아쉽다. “Fu-Gee-La”의 몇 가지 변주와 와이클레프의 솔로 “Mista Mista”는 앨범 감상을 마무리 짓기에 아주 적합한 방법이다.

    지금에 와서 이 앨범을 듣는 것은 당시와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신선함보다는 푸근한 느낌이 강할 것이고, 긴박함보다는 여유가 넘치게 흥얼거릴 수 있는 음반이 될 것이다. 이미 로린 힐의 솔로 앨범도 충분히 들었고, 와이클레프의 행진도 검토해 왔다면 더 진부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가득 품었던 패기는 여기에 가장 많이 담겨 있다. 콤팩트디스크에 회전을 가하는 순간 내가 속한 공간이 과거로 돌아가 그것을 느끼게 한다. 이 앨범이 없었다면 지금의 그들도 없다고 생각하니 아직도 흥분된다. 푸지스는 단지 음악만으로, 더 정확히는 이 앨범 하나로 차별의 손가락질을 존경의 박수로 바꾸어 놓았다. 이 사실은 시간이 지나도 유효하다. 아직도.
     
     

    기사작성 / RHYTHMER.NET 황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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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워럽A-YO (2010-05-23 13:53:41, 59.5.58.*) 삭제하기
      2. 로린힐을 여기에서 알앗어요 목소리가 굿 음

        저도 역시 다 플레이시키기엔 지루함을 느꼈다는
      1. 함사장 (2009-10-25 07:35:27, 221.149.144.***) 삭제하기
      2. 이 앨범이 굉장한 앨범임에는 틀림 없지만
        앨범을 항상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듣기엔 뭔가 지루하더라고요.

        하지만 'Ready or not'을 처음 듣고 한참 동안 멍하니 있었던 게 생각나네요.
        지금 들어도 참 감동적..

        근데 이 앨범 들으면서 아직도 궁금한건
        노래 끝날때마다 띵~ 하는 소리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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