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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외 리뷰] Death Grips - The Powers That B
    rhythmer | 2015-04-21 | 13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Artist: Death Grips
    Album: The Powers That B
    Released: 2015-03-31
    Rating:
    Reviewer: 지준규









    힙합 그룹 데스 그립스(Death Grips)의 음악적 방향성은 언제나 명확했다. 그들은 데뷔 초부터 힙합 음악의 정형화된 방법론에 얽매이는 것을 거부하고 뚜렷한 개성과 스타일을 확보하고자 부단히 노력해왔으며, MC 라이드(MC Ride)의 정제되지 않은 걸걸한 래핑과 파격적인 가사, 그리고 메인 프로듀서 잭 힐(Zach Hill)이 주조한 실험적인 사운드는 이 같은 그룹의 가치관을 여실히 대변했다. 변칙적인 드럼 비트를 내세워 긴장을 고조시키거나 과도한 이펙트들을 반복적으로 사용해 의도적인 혼란을 유도하는 등, 색다른 시도들은 여타의 랩 음악과는 또 다른 신선함을 유발했고, MC 라이드의 날 것 같은 거친 음성은 그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강한 에너지를 내뿜었다. 특히, 사회, 정치적 이슈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은 물론, 내면의 발칙한 욕망과 분노까지도 독창적인 비유와 구성을 통해 극적으로 풀어내는 MC 라이드의 능력은 많은 힙합 팬의 이목을 단번에 집중시켰다. 그리고 얼마 전 데스 그립스는 두 개의 디스크로 구성된 네 번째 정규 앨범 [The Powers That B]를 발매하며 탁월한 음악적 재능을 다시금 증명하였다.

     

    이번 앨범의 특징적인 부분은 우선 사운드에 있다. 변화무쌍한 신시사이저를 활용하여 곡의 안정적인 흐름을 파괴하거나 어둡고 날카로운 느낌의 전자음들을 맹렬하게 몰아붙여 단조로움을 탈피하는 등의 모습들은 전과 다를 바 없으나, 곡에 들어간 음악 소스들의 범위를 크게 확장했다는 점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잭 힐과 그룹의 또 다른 프로듀서 앤디 모린(Andy Morin)은 하드코어 펑크(Hardcore Punk)의 과격한 기타 루프나 사이키델릭 록의 몽환적인 사운드를 비롯하여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에나 어울릴 법한 선 굵은 멜로디 라인, 또는 독창적으로 가공된 보컬 샘플까지 적극 사용하면서 보다 넓어진 음악적 스펙트럼을 과시한다. 하지만 이처럼 다채로운 장르와 각양각색의 사운드들이 공존하는 와중에도 각 디스크의 통일성은 무난하게 유지되는데, 이는 트랙마다 세부적인 차이는 있지만, 곡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이끄는 핵심 요소들만큼은 변함없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6월 선 공개된 바 있는 첫 번째 디스크 [Niggas On The Moon]의 모든 수록곡엔 잭 힐이 연주를 맡은 롤랜드 브이 드럼스(Roland V-Drums/*필자 주: 전자 드럼의 일종) 사운드와 아이슬란드 싱어송라이터 비요크(Bjork)의 보컬 샘플이 빠짐없이 전면에 등장하며, 두 번째 디스크 [Jenny Death]에선 자신의 진솔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내비치며 세상의 온갖 부정의를 향해 격노를 터트리는 MC 라이드의 성토가 50여분의 러닝 타임 내내 끊임없이 이어진다.

     

    백미는 두 번째 디스크다. 첫 디스크에 실린 “Say Hey Kid” “Fuck Me Out” 등의 곡들 역시 기존 힙합의 규약과 제한에서 자유로워지려는 그들의 욕구를 충실히 반영하며 희열을 안기지만, 앨범의 진가를 드러내는 주요 트랙들은 대부분 두 번째 디스크에 수록되어 있다. 그 포문을 여는 첫 곡 “I Break Mirrors With My Face In The United States”에서 MC 라이드는 모순으로 가득 찬 현실에 따끔한 일침을 날린다. 그는 상대방을 먼저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왜 남들이 틀렸는가를 지적하는데 익숙해진 현대인의 비정함과 오히려 그것을 조장하며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의 불합리함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 때문에 자신을 비롯한 모든 이들은 늘 불안한 삶을 살고 있다고 토로한다. 이와 함께 귀를 찌르는 예리한 전자음들과 저돌적인 드럼 연주가 이리저리 뒤섞이며 긴장감은 점점 고조되는데, 이는 곡의 메시지와 묘하게 어우러지며 감흥을 배가시킨다. 몇 트랙이 지나 등장하는 곡 “Why A Bitch Gotta Lie”에선 한층 더 노련해진 멤버들의 프로듀싱 능력을 엿볼 수 있다. 헤비메탈의 묵직한 비트와 다이내믹한 리듬의 글리치(Glitch) 사운드, 그리고 간혹 튀어나와 세련미를 더하는 중독성 강한 일렉트로닉 팝 사운드까지, 이 모든 것이 한데 버무려져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한 이 곡은 실험적인 힙합 음악이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는지를 명백히 보여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앨범에서 최고라 할 수 있는 트랙 “The Powers That B”가 등장한다. 속도감 넘치는 드럼, 어지러운 신시사이저, 의도적인 잡음 등이 뒤섞인 날 선 반주 위에서 MC 라이드는 자아 분열적이며 절망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초반부에서 그는 의지와는 상관없이 즉흥적으로 사고하고 극단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 본인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다양하고 풍부한 표현들을 통해 생생히 묘사하며 공감을 유도한다. 하지만 그는 곡의 뒤로 갈수록 개인에서 타인으로 점점 그 시선을 돌리게 되는데, 세상이 정해놓은 바람직함의 기준에 얽매어 너무나 쉽게 포기하고 좌절하는 이들을 비난하는 마지막 대목에선 결국 이 곡의 칼끝이 겨누는 지점이 MC 라이드 본인이 아닌 주변 사람들임이 밝혀지며 짜릿한 전율이 인다.

     

    이 외에도 사랑하던 어머니의 죽음과 당시 받았던 충격, 정신적 고통 등에 대한 절절한 고백이 담긴 “Up My Sleeves”, 소음과 노래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주체할 수 없는 광기와 흥분을 훌륭히 담아낸 “Inanimate Sensation”, 곡 전반에 깔려있는 음울하고 처진 기운의 기타 연주가 독특한 쾌감을 안기는 “Centuries of Damn”, 고르지 않은 드럼 사운드와 자잘한 전자음들이 불규칙적으로 연결되어 역동적으로 전개되는 “Death Grips 2.0” 등의 곡들에서 데스 그립스의 빼어난 창의성이 유감없이 드러난다.

     

    다만, 비슷한 질감의 전자음과 보컬 톤이 쉴 새 없이 반복되는 탓에 간혹 피로감이 느껴지고, 종종 음악 소스들의 배치와 구성이 치밀하지 못한 부분들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데스 그립스는 그룹의 마지막 앨범이 될 수도 있는 이번 작품을 통해 과감한 도전 정신과 창작 열의를 다시 한 번 불태우며 전작들의 신선미를 잘 이어갔다(*필자 주: 데스 그립스는 작년 7월에 공식적인 해체를 선언했고, 본작이 그들의 마지막 합작 앨범이라고 밝혔다.). 틀에 얽매이지 않고 그룹만의 음악적 색깔을 뚜렷이 하는 일에 큰 비중을 두면서도 그 안에 참신하고 진중한 메시지를 담는 것 또한 소홀히 하지 않은 이들의 기조가 다시 한 번 빛을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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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양지훈 (2015-04-23 22:07:28, 1.241.243.***)
      2. 저는 엘-피(El-P)도 좋아했고 그가 속해 있었던 컴퍼니 플로(Company Flow)도 좋아했고 랩과 전자음의 조화에 큰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닌데

        이 데스 그립스라는 그룹의 앨범은 참 소화하기 어렵더군요. 이번 앨범도 어찌나 힘들던지...

        데피니티브 젹스 레이블이 한창 기개를 떨치던 시기의 앨범들은 이렇게 전자음이 난무하더라도 정교함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근데 이들의 앨범은, 뭐랄까 정박도 아니고 의도적인 엇박도 아니고, 소스 배치를 이렇게 해도 되긴 되나? 싶은 순간이 한둘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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