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외 리뷰] Dr. Dre - Compton
- rhythmer | 2015-08-12 | 20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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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Dr. Dre
Album: Compton
Released: 2015-08-07
Rating:
Reviewer: 남성훈
힙합 역사에서 닥터 드레(Dr. Dre)의 존재감은 독보적이다. 가장 뛰어난 힙합 아티스트를 꼽는 건 무의미한 일이지만, 가장 위대한 힙합 아티스트를 꼽는다면 닥터 드레가 아마도 꼭대기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 이유는 명확하게 두 가지로 드러난다. 첫 번째는 그의 앨범들이다. 드레는 가장 중요한 힙합 그룹 중 하나인 N.W.A의 멤버로 두 장의 걸작 [Straight Outta Compton](1988), [Niggaz4Life](1991)를 만들어내며 갱스터 랩과 미 서부 힙합을 전 세계로 퍼트리는 선봉에 섰었다. 이후 솔로로 발표한 [The Chronic](1993)은 스눕 독(Snoop Dogg), 독 파운드(Tha Dogg Pound), 투팍(2Pac)으로 이어진 이른바 데스로우(Deathrow) 레코드 시대를 열며 힙합의 무게 중심을 옮긴 기념비적인 앨범이었으며, 애프터매스(Aftermath) 레코드에서 발표한 두 번째 앨범 [2001](1999) 역시 완벽에 가까운 비트 프로덕션과 참여 진의 시너지로 모든 트랙을 명곡 반열에 올릴 만했다. 이렇듯 그는 랩퍼들의 꿈인 클래식 앨범을 넉 장이나 소유하고 있으며, 모두 평단의 지지와 상업적 성공을 넘어 음악 시장의 흐름을 바꾼 걸작 중 걸작이었다는 사실이 그가 다른 레벨에 올라가 있음을 증명한다.
두 번째 이유는 직접 키운 랩퍼들의 위용이다. 대표적으로 스눕 독, 에미넴(Eminem), 피프티 센트(50 Cent),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를 떠올릴 수 있는데, 그 이면엔 닥터 드레만의 과감함이 있었다. [The Chronic]에서 무명이었던 스눕의 랩을 자신보다 큰 비중으로 담아냈던 것이라든지 그런 스눕 독의 데뷔작 [Doggystyle]을 총괄 프로듀싱하여 걸작으로 만든 사실은 그가 클래식 앨범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아는 인물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재능이 드러나지도 않은 상태였던 백인 랩퍼 에미넴과 계약해 힙합 역사상 가장 천재적인 랩퍼로 변신시킨 사실, 번번이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 불발 탓에 불운한 랩퍼로 사라질 뻔한 피프티 센트에 상업적 세련미를 더해 폭발적인 흥행을 이룬 선구안은 극적이기까지 하다. 반대로 이미 완성형의 아티스트였던 켄드릭 라마의 경우 앨범 제작에 별다른 관여를 하지 않았다는 일화 역시 닥터 드레의 또 다른 과감함을 보여준다. 이런 일화가 드레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그들이 오리지널리티가 담긴 앨범을 손에 쥐고도 치열한 힙합 시장에서 대성공했기 때문이다. 드레가 가장 크게 성공한 제작자이자, 사업가면서도 언제든 힙합의 수준과 시장의 흐름을 향해 쓴소리를 할 수 있는 건 그가 가진 넉 장의 걸작과 그가 힙합 역사에 심어놓은 네 명의 랩퍼들, 그리고 그에게 영향받은 많은 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2002년 타이틀을 공개한 차기 앨범 [Detox]를 향한 기대는 당연히 하늘을 찔렀으며, 나오지도 않은 채 이미 걸작이 되어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는 대로다. 꾸준하게 던져진 관련 루머와 앨범을 위해 녹음했다는 랩퍼들의 증언, 우려만 더한 싱글 “Kush”, “I Need a Doctor”, 그리고 몇 개의 유출 곡만 남긴 채 무려 13년 동안이나 발매가 연기된 것이다. 그러던 중 드레는 돌연 N.W.A의 전기 영화 [Straight Outta Compton]에 영감을 받은 사운드트랙이자 [2001]에 이은 16년만의 정규작 [Compton]이 완성되었음을 선언한다. 동시에 [Compton]이 마지막 앨범임을 밝혀 [Detox]의 폐기도 공식화했다. [Detox]가 애초에 그가 출연했던 영화 [Training Day]에 영감을 받아 기획된 프로젝트였던 것을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한 사실이기도 하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드디어 드레의 새 앨범을 들어 볼 수 있게 되었다. 자, 이제 질문은 간단하다. [Compton]은 닥터 드레의 이름에 걸맞은 만족스러운 앨범인가? 하지만 답은 질문처럼 간단하지 않다. 드레의 앨범이라면 으레 기대할 법한 것 대부분을 놀라울 정도의 수준으로 충족시켜 주지만, 전작들과 같이 클래식 앨범인 동시에 판을 바꿀 작품이라 단정해 말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하나씩 풀어가 보자.
[Compton]의 진행은 전혀 빈틈 없이 견고하며 프로덕션과 가사에서 강렬함을 잃지 않는 에너지가 가득하다. 처음부터 앨범의 테마는 전부 드러나는데, ‘블랙아메리칸드림(The Black American Dream)’ 가득한 도시에서 높은 범죄율의 악명 높은 도시로 전락해버린 컴튼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소개한 “Intro”에 이어, “Talk About It”으로 듣는 이들을 컴튼의 현실 속에 강제로 밀어 넣는 연출은 압도적이다. 특히, 출구가 없어 보이는 현실에 놓인 젊은 랩퍼가 중산층 흑인의 꿈을 이뤄줄 것이라 여겼던 도시에서의 어그러진 꿈을 고백한 직후(‘난 아무것도 몰라, 하지만 하나는 알아, 나는 언젠가 모든 것을 다 가질 거야. 이건 다 꿈이었어. 나는 전부 원해.’), 컴튼의 가장 성공한 인물인 닥터 드레가 ‘난 캘리포니아를 방금 사버렸지(I just bought California)’라고 랩을 시작하는 순간은 단순한 자기과시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전율과 페이소스를 전달한다. 켄드릭 라마의 감정을 가지고 노는 랩과 소울풀한 보컬의 조화가 혼란스러운 변주와 만나 컴튼의 무자비한 면을 효과적으로 그려내는 “Genocide”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어지는 다섯 트랙은 30년간 이어진 닥터 드레의 경력을 훑는 작은 서사를 구성한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던 시절을 지나 오해받을 정도로 일 중독에 빠진 자신의 모습을 “It’s All On Me”, “All In a Day’s Work”에서 떠올리며 성공의 당위를 드러내고, “Darkside/Gone”, “Loose Cannons”을 통해 살아있는 전설이 된 자신을 조명한다. 비프가 있었던 동료 이지-이(Eazy-E)에게 보내는 그리움과 쥐-펑크(g-funk) 사운드의 창시자인 콜드 원에잇세븐엄(Cold 187um)을 소환해 함께 만들어 간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은 묵직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이어 전반부를 마무리 짓는 “Issues”에서 기반 지역을 향한 애정을 내보이고, 목표는 오직 클래식 앨범을 만드는 것이라 짚어내는 것은 닥터 드레가 직접 정리해 주는 자기 서사의 결론이다. 후반은 시야를 개인에서 외부로 넓힌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가 치열한 음악 산업계의 무자비한 현실을 빠져 나오기 힘든 깊은 물에 빠지는 것으로 표현한 “Deep Water”, 음반 제작은 물론 헤드폰, 스트리밍 사업으로 엄청난 부를 쌓고 있는 인물이기에 돈에 대한 다채로운 시선과 일갈을 던지는 “For The Love Of Money”는 굉장히 효과적이다. 역시나 같은 이유로 부를 자랑하는 가사를 쓰기 위해 억지스러운 삶을 사는 많은 철 없는 랩퍼들을 조롱하는 “Satisfaction”도 주제의 진부함이 감상을 방해할 틈도 없이 짜릿한 진행을 보여준다. 여전한 경찰의 인종차별적 행태를 나열하는 “Animals”는 분노로 가득 찼던 “Fuck the Police”의 23년만의 답가로 들리며, 이는 곧 “Medicine Man”에서 어그러진 분노로 표출되기도 한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인물을 풀어내며 적정한 수준의 문제 제기까지 이어내는 자연스러운 전개다.
어떻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이런 이야기의 전개가 밀도 있게 펼쳐지며 강렬함을 안기는 건 닥터 드레라는 인물이 주는 집중도도 물론 한몫 하겠지만, 앞서 밝혔듯이 쉽게 접하기 힘든 결벽에 가까운 완성미의 프로덕션이 받쳐주었기에 가능하다. [Compton]은 비장미와 장중함이 넘실대면서도 명료하게 구성된 한 치의 늘어짐도 없는 루핑이 랩, 보컬과 정확한 합을 맞추며 진행되는 가운데, 트랙 내 다양한 변주가 동시에 돋보인다. 랩퍼와 보컬의 등장에 맞추어 급작스레 비트와 무드가 전환되는 순간은 닥터 드레의 놀라운 연출력이 발휘되는 [Compton]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점들이다. 이는 앨범 전체를 개별 트랙 단위가 아닌 참여 진 각각의 파트 조합으로 구성한 하나의 극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다양한 사운드와 멜로디의 향연은 이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며 퍼포머가 바뀔 때마다 순간적인 집중도를 높여 앨범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몰아치는 과감한 전개를 피곤함 없이 받아들이게 돕는다. 불편함을 유발하며 중간 중간 긴장감을 부여하는 스킷(Skit)의 연출도 발군이다. 이런 연출은 모든 참여 진이 마치 이를 꽉 물고 참여한 듯한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펼치다 보니 그 효과가 더욱 두드러졌다. 켄드릭 라마가 모든 면에서 정점을 찍는 절정의 기량을 보여주고 킹 메즈(King Mez)와 같은 신예는 물론,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베테랑 랩퍼들도 녹슬지 않은 기량을 뽐내는 가운데, 많은 곡에서 즉흥미가 돋보이는 퍼포먼스로 소울풀한 기운을 듬뿍 담아낸 보컬 앤더슨.팍(Anderson .Paak)이 앨범에서 가장 돋보인다는 점도 흥미롭다. 그리고 무엇보다 반가운 점은 직접 가사를 쓰지는 않았겠지만, 닥터 드레의 공들인 것이 분명한 견고하게 짜인 랩이 그 무게감이나 가사의 주제 면에서 극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Compton]이 단순한 랩 경연장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주었다.
다만, 이런 프로덕션과 퍼포먼스의 견고한 합이 순차적으로 밀려오듯 진행되는 앨범은 하나의 거대한 극을 감상하는 듯한 경험을 만들어내지만, 큰 약점을 남기기도 했다. 바로 닥터 드레의 이전 작들을 끊임없는 재감상하게 만들었던 많은 명곡의 부재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 온 힘을 쏟은 참여 랩퍼의 파트들이 몰아치듯 연결되는 구성은 앨범 전체적으로 보면 그 효과가 뛰어나지만, [Compton]하면 떠오르는 비트와 벌스는 많아도 트랙은 만들어내지 못한 아이러니함을 지니고 있다. “Nuthin’ But a G' Thang”, “Still D.R.E”, “Forgot About Dre”와 같은 기념비적인 싱글이 [Compton]과 다르게 여유 넘치고 능글맞게 이야기를 풀어냈던 곡이었음을 생각해보면, 명곡 부재의 이유는 더 명확해진다. 더해서 [The Chronic]과 [2001]에 깔려있던 유머를 이번 앨범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Compton]은 결국 닥터 드레가 만들었던 걸작과 동일한 수준으로 평가 받지 못하겠지만, 오직 닥터 드레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강력한 블럭버스터급 힙합 엔터테인먼트이자, 위대한 힙합 아티스트가 여전한 절정의 기량으로 만들어 낸 장중한 마무리로 기억될 것이다. 가족에게 감사를 표하고, N.W.A 시절을 회상하며 그리워하는 마지막 트랙 “Talking To My Diary”에서 비트가 멈춘 뒤 노이즈가 흐르는 마지막 5초는 어쩌면 힙합 역사에서 가장 아쉬움이 남는 순간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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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eath Rhythm (2015-08-13 21:08:48, 220.89.39.***)
- 저도 꽤 오래된 힙합팬으로서 십수년을 기다린 새 앨범이 갑작스럽게 나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Kush나i need a doctor등에서 갖게 되었던 우려들이 앨범을 들으며 확 씻겨내려갔습니다. 닥터드레의 느끼하면서 단조로운 랩이 좀 타이트해져서 아쉽더라구요. 프로덕션면으로는 완벽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2001에서 보여준 완전히 새로운 사운드는 없더군요. 닥터드레에 대한 기대에는 혁신적인 사운드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별이 4개인듯 합니다. 해외평점도 대체로 4개이고 다들 새 앨범이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출하지만 앨범 자체에 대해서는 꽤 만족스러운 코멘트를 한듯 해요.
닥터드레가 세계최고의 귀를 지닌 것에는 여전히 의심의 여지가 없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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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eda14 (2015-08-12 19:38:40, 223.62.216.***)
- 드레 19년전부터 골수팬인데 이번 앨범 평가를 못하겠네요ㅜㅜ 중학교시절 스눕1집 국내정발될때가 생각나네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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