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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콜 리뷰] Jeru The Damaja - Wrath of the Math
    rhythmer | 2016-10-18 | 8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Artist: Jeru The Damaja
    Album: Wrath of the Math
    Released: 1996-10-15
    Rating: 
    Reviewer: 양지훈









    장르를 막론하고 한 작품을 통해 부나 명예, 혹은 둘 다 얻은 뮤지션이 차기 작품도 이전과 동일한 제작 방식이나 설정을 택하는 이른바 '안전제일주의' 경우를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지금 소개하는 제루 더 다마자(Jeru The Damaja, 이하 제루)의 두 번째 앨범 [Wrath of the Math]도 그러한 범주에 있는 작품이다. 디제이 프리미어(DJ Premier)가 모든 비트의 제작에 참여한 것부터 1 [The Sun Rises in the East]와 동일하고, 1집에 수록된 곡들과 유사한 느낌의 곡이 곳곳에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노선의 결과물은 웬만해선 전작의 그늘에 가리기 일쑨데, 본작은 여느 전작의 성공에 기댄 판박이 같은 후속 작품'들과 수준을 달리한다. 앨범의 유사성을 떠나서 완성도가 무척 뛰어난 덕분이다. 철저하게 샘플링에 기반한 프리미어의 비트와 잘 첨가된 스크래칭, 그리고 독특한 제루의 랩이 기가 막히는 조화를 이루며 귀를 즐겁게 해준다. 주로 소울과 펑크(Funk)에서 따온 샘플 소스와 타 랩퍼들의 목소리를 턴테이블 리릭으로 활용하는 프리미어의 비트 운용 능력이 경지에 올라있다.

     

    대표적인 트랙 "Me Or The Papes"의 샘플 활용을 예로 들어보자. 아마드 자말 트리오(Ahmad Jamal Trio) "I Love Music"에 담긴 피아노 음을 메인 루프로 활용하고,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프로콜 하럼(Procol Harum) "Repent Walpugis"에 쓰인 드럼 루프는 BPM을 높여 보다 빠른 전개를 유도하며,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저 유명한 "Money"에서 들을 수 있는 현금 출납기 소리(베이스 리프)도 중간중간에 삽입하는 식이다. 아낌없는 샘플 소스의 활용과 조합이 돋보이는 가운데, 1집의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느낌이 조금 더 부드러워졌을 뿐, 프리미어의 작법은 변함이 없다.

     

    프리미어가 샘플 소스를 적절하게 조합하는 가운데, 주인공 제루는 그에 화답하듯 좋은 랩을 들려준다. 일단 1집의 연장선상에 있는 트랙이 많다. "Mental Stamina"에 상응하는 "Physical Stamina"가 있는가 하면, 앞서 언급한 "Me Or The Papes" 1집의 "Da Bichez"와 다분히 의도적인 대치를 이루며, 'bitch''queen'의 대조적인 묘사를 보여준다. 흑인 사회를 바라보는 냉철한 시선도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앨범의 마무리를 책임지는 "Invasion" '90년대 미국 사회에서 목격할 수 있었던 인종 차별과 경찰의 공권력 남용을 다룬 곡으로, 최근 상황과 맞물려 20년이 흘렀음에도 느껴지는 울림이 상당하다.

     

    공격적이고 직설적인 랩, 그리고 추상적인(혹은 은유적인) 표현을 즐기는 성향도 여전하여 갱스터 랩퍼들을 겨냥한 직격탄 "Tha Bullshit"과 같은 곡이 존재한다. 하지만 앨범에서 가장 눈에 띄는 넘버는 스토리텔링 트랙 "One Day"이다. '힙합 인질극'이라고 요약할 수 있는 이 곡의 줄거리는 퍼프 대디(Puffy Daddy)와 폭시 브라운(Foxy Brown)이 힙합이라는 존재를 납치(kidnap)했다는 설정아래, 제루가 힙합이 어디로 갔냐고 묻자, 어젯밤 퍼프 대디가 힙합을 슈그 나잇(Suge Knight)에게 넘겼다고 하여, LA로 넘어가 힙합을 되찾아 온다.'라는 내용이다. 유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흥미로운데, 다분히 의도적인 논쟁 유발의 곡이었기에, 실제로 노토리어스 비아이지(The Notorious B.I.G)와 제루 사이에 비프를 제공하는 단초가 되기도 했다.

     

    신선한 충격이었던 데뷔 앨범을 처음으로 접했을 때 느낄 수 있는 짜릿함을 다시금 맛보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전작 못지않은 완성도를 통해 소포모어 징크스를 확실하게 깨부순 앨범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프리미어의 샘플 소스 활용은 나무랄 데가 없었고, 예기치 않은 지점에서 단어를 끊어서 발음하는 식의 독특한 스타일을 이어가는 제루의 랩은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비록, 후배 랩퍼들에게 큰 영향을 준 앨범은 아니었지만, 이 앨범에 수록된 다수의 곡은 오랜 힙합 팬들이 뽑는 'DJ Premier Beat Collection'에서 단골손님이 되고 있으며, 완벽한 ‘1 프로듀서 + 1 MC’ 형태의 작품이라 할만하다. 발매 2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힙합 팬들이 꾸준하게 회자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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