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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외 리뷰] Danny Brown - Atrocity Exhibition
    rhythmer | 2016-10-20 | 16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Artist: Danny Brown
    Album: Atrocity Exhibition
    Released: 2016-09-30
    Rating: 
    Reviewer: 조성민









    대니 브라운(Danny Brown)은 상당한 경력을 가진 랩퍼지만, 양지로 나오게 된 건 정규 3 [Old]를 통해서다. 2013년에 큰 반향을 일으킨 해당 작품은 두 가지 이유로 놀라웠다. 일단 [XXX]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앨범의 후속작이라는 점에서 그랬다. 브라운은 그 작품을 통해 주체적인 스타일을 정립했고, 다음 정규작에서 그것을 더욱 확고히 할 것이라 전망됐다. 그런 의미에서 앨범의 많은 비중이 파티튠 트랙으로 구성된 [Old]는 그야말로 카운터펀치였다. 당시 브라운의 선택은 분명 정석에서 벗어난 것으로 비쳐졌지만, 그가 마음먹고 만든 대중친화적인 앨범이 긍정적으로 평가받으며 결과론적으로는 매우 시기적절했음이 증명됐다.

     

    브라운은 [Old]를 통해 팬층을 넓히고 몸값도 높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값진 전리품은 메인스트림 진입을 하면서도 마니아층을 잃지 않은 부분이다. 여러모로 연승행진 중인 그가 기세를 이어가기 위해 발표한 정규 4집은 전체적으로 [XXX]와 흡사하지만, 보다 밀도 있고 흡입력 있는 작품이다. 브라운은 [Atrocity Exhibition]을 통해 마약 체험을 기반으로 한 각종 고통과 환각, 그리고 희열을 연출하는 선을 넘어 선명하게 시각화해냈다. 블랙홀처럼 끊임없이 넘실대는 고밀도 사운드 속으로 속수무책 끌려들어 갈 정도다.

     

    본작은 브라운의 비극적인 일상 중 비교적 마무리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는 첫 트랙인 “Downward Spiral”에서 스스로가 위태로운 상황에 부닥쳐있음을 자각하지만, 나아지는 방법은 마약을 통해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뿐이라고 결론짓는다. 그로부터 브라운은 본격적으로 마약 중독에 대한 혐오감과 자괴감, 체념, 그리고 희열로 이어지는 순차적인 회로를 묘사한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를 풀어내는 그의 서술법이다. 브라운은 중독에 대항하거나 더 깊이 빠져들기 위해 행한 행동들을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기도 하고, 마약 효과로 인해 발휘된 어둡고 왜곡된 상상력을 고차원적인 비유와 워드플레이를 통해 구체화한다. 더욱이 인상적인 부분은 심적 고통과 환각 속을 헤매는 와중에도 종종 던지는 블랙 유머를 위시한 라인들이다. 끝없는 자학과 자신을 포기한 듯한 상태에서도 희망을 찾으려는 모습에서 무의식적으로 살아남으려는 생존본능이 불쑥불쑥 느껴진다.

     

    프로덕션은 매우 실험적이면서 지저분하고 괴기스럽다. 어두운 톤 앤 매너를 기본으로 트랙마다 다른 형식의 소스 활용과 변주 등의 장치로 무질서하고 난해한 흐름을 만들어나간다. 사이키델릭한 신스를 맞물린 룹에 엇박으로 떨어지는 드럼과 랩이 묘한 조화를 이룬 “Downward Spiral”을 시작으로 의도적으로 어눌하게 운용한 신스와 브레이크 변주를 기반으로 한 “Tell Me What I Don’t Know”, 그리고 카우벨과 흡사한 체명악기 샘플과 굵직한 베이스 멜로디로 힘을 준 “Rolling Stone”까지의 초반부는 각기 전혀 다른 바이브를 지닌 구간이다.

     

    중반부에 배치된 “Ain’t It Funny”에서 “Dance in the Water”까지 이어지는 구간은 프로덕션의 백미를 차지한다. 훌륭한 뱅어(Banger) 역할을 하는 “Pneumonia”를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다들 극한의 실험성을 띄고 있는 탈관습적인 구조의 트랙들로 브라운의 광기를 충실히 대변하고 있다. (Horn)과 타악기, 그리고 여느 때보다 폭발적으로 뿜어낸 랩이 트랙의 스케일을 최고치로 확장한 “Ain’t It Funny”와 무차별적으로 드럼을 폭격한 포스트 펑크 록 트랙 “Golddust”, 신스 운용과 관악기 샘플로 위태로운 브라운의 심리를 그려낸 “White Lines”, 타악기와 뒤로 흐르는 콰이어 룹이 낯선 박자를 만들어낸 “Dance in the Water”는 깔끔히 정제되지 않은 탓에 오히려 특유의 로우(raw)함이 잘 살아났다.

     

    구성적인 면에서 실험성이 도드라지기 때문에 각 트랙의 응집력 자체는 불안정하다. 언제라도 작은 입자로 흩어질 것같이 위태롭지만, 이를 안전하게 잡아주는 것은 브라운의 랩이다. 사실 이러한 비트를 무더기로 선택했다는 것과 플로우를 디자인해낸 사실만으로도 랩에 대한 그의 자신감이 엿보인다. 그는 그루브를 지양한 대신 높은 피치에서 연속적으로 내리꽂는 플로우를 선보이며 쉴 틈 없이 새로운 길을 뚫어낸다.

     

    [Atrocity Exhibition]은 모든 면에서 위대함이 느껴진다. 브라운의 카리스마가 살아있고 뚜렷한 서술적 구조와 실험적인 프로덕션의 조화도 매우 긍정적이다. 전작보다 더욱 다양한 프로듀서들과 협업했고 분명 중구난방 형태의 난장판으로 끝날 여지도 있는 조건이었지만, 기획력을 통해 무질서함을 일관성으로 포장해냈다. 게다가 양질의 랩은 물론이며, “Really Doe”처럼 만족스러운 단체곡도 보너스로 포함되어 있다. 제한된 시장과 끊임없는 복제로 인해 과도기를 맞이한 작금의 씬에 미지의 영역이 있음을 증명한 [Atrocity Exhibition]은 대니 브라운이 근래에 이루어낸 성공이 전혀 요행이 아니었음을 입증한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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