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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외 리뷰] DJ Khaled - Grateful
    rhythmer | 2017-07-03 | 9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Artist: DJ Khaled
    Album: Grateful
    Released: 2017-06-23
    Rating:
    Reviewer: 강일권









    한때 많은 이가 디제이 칼리드(DJ Khaled)의 앨범에서 도대체 칼리드가 하는 일은 뭘까?’라는 의문을 표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앨범을 들어보면, 그의 역할이 전무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보통 디제이가 앨범을 냈을 땐 두 가지 경우다. 턴테이블리즘 앨범이거나 프로듀싱 앨범이거나. 그런데 칼리드의 앨범은 둘 다 아니었다. 굳이 분류해야 한다면, 후자에 가깝지만, 그것도 기존의 형식과는 달랐다. 그는 곡 작업에 직접 관여하기보다는 선수들(랩퍼, 싱어, 프로듀서)을 불러모으고 판을 짜는 것에 집중했다. 프로덕션 크레딧에서 칼리드의 이름은 겨우 한두 곡에서나 볼 수 있는 정도였고, 그 외엔 디제이 특유의 외침 멘트를 얹는 게 다였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컴필레이션 앨범의 총감독 같은 역할인 것이다.

     

    물론, 과거에 이런 형식의 앨범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보통은 앨범 제작을 주도한 아티스트의 이름 뒤에 ‘Present’란 수식어가 붙고, 엄밀히 컴필레이션으로 분류해왔다. 칼리드처럼 본인의 정규작으로 규정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칼리드는 정규 앨범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셈이다. 많은 힙합 스타가 그에게 호의적이었고, 그 탓에 인맥 힙합이란 비난도 있었지만, 어느 샌가 미디어와 대중은 이 같은 칼리드의 앨범 형식에 익숙해져 갔다. 또한, 수록곡 크레딧에서도 그의 이름이 더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앨범의 참여 진은 점점 더 화려해졌고, 완성도와 상관없이 팬들의 반응도 열렬해졌다.

     

    어느덧 열 번째 정규작인 [Grateful]은 오늘날 힙합 씬에서 칼리드의 위세가 어느 정도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두 장의 디스크 속에 빼곡한 참여 진의 이름은 현재 가장 인기 있는 힙합/알앤비 스타부터 베테랑까지, ‘90년대 랩퍼부터 최근의 멈블 랩퍼까지를 전부 아우른다. 영화로 치자면,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를 방불케 할만큼 역대급 라인업이다. 더불어 칼리드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곡에 직접 관여했다. 사실 눈에 띄는 싱글은 있었으나 앨범으로서의 밀도는 매우 부족했던 전작들의 사례에 비춰봤을 때, 규모가 훨씬 커진 본작은 더욱 혼란스럽고 지루할 거로 예상했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다르다. 물론, 블록버스터 컴필레이션 형식의 앨범이 지닌 한계는 여전히 엿보이지만, 앨범으로서의 밀도가 높아졌다.

     

    특히, 다양한 스타일과 무드의 곡이 큰 이질감 없이 치고 빠지는 첫 번째 디스크의 구성이 타이트하다. 본인의 삶과 아들로부터 느끼는 환희를 숙연한 무드의 프로덕션과 관록의 레게 아티스트, 시즐라(Sizzla)의 보컬을 빌어 전하는 첫 곡 "(Intro) I'm So Grateful", 비욘세(Beyonce)가 기가막힌 리듬 타기에 이어 권태로운 듯 후렴구를 떨구고 제이 지(Jay Z)가 랩으로 조력한 "Shining", 산타나(Santana)라틴 락 + 알앤비트랙 “Maria, Maria”를 리안나(Rihanna)와 브라이슨 틸러(Bryson Tiller)를 불러들여 커버에 가깝게 재구성한 “Wild Thoughts”, 마크 프리처드(Mark Pritchard)의 앰비언트 넘버 "Under the Sun"을 샘플링하여 트랩 뮤직으로 재해석한 비트 위로 빅 션(Big Sean)이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를 겨냥한 듯한 문제적이고도 멋진 벌스를 얹은 “On Everything”, 앨리샤 키스(Alicia Keys)와 니키 미나즈(Nicki Minaj)의 명불허전 퍼포먼스와 ‘90년대 힙합 소울의 향수가 물씬 묻어난 "Nobody", 캘빈 해리스(Calvin Harris)와 합작으로 그루브하고 멜로딕한 프로덕션을 구축한 “Don’t Quit” 등은 이 구역에서 접하는 하이라이트 곡들이다.  

     

    다만, 칼리드에게 생애 첫 빌보드 차트 1위의 영광을 안겨준 "I'm the One"은 참여 랩퍼의 면모를 고려했을 때 지나치게 버블껌 팝-랩적인 프로덕션이 아쉽다. 또한, 트랩 뮤직을 주된 테마로 삼은 두 번째 디스크의 감흥은 확실히 떨어진다. 미고스(Migos), 투에니원 새비지(21 Savage), 코닥 블랙(Kodak Black), 퓨쳐(Future), 구찌 메인(Gucci Mane), 영 떡(Young Thug) 등등, 현재 메인스트림 힙합의 트렌드를 이끄는 프로듀서와 랩퍼들이 대거 포진하여 흐름을 주도하지만, 프로덕션적으로나 퍼포먼스적으로나 평이한 수준에 그쳤다. 각 아티스트의 앨범이었다면, 귀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흘러갔을 곡들처럼 말이다.

     

    물론, 그런 가운데에서도 빛나는 곡은 있다. 마약상 허슬을 읊는 랩의 피라미드에서 맨 꼭대기에 있는 두 랩퍼, 푸샤 티(Pusha T)와 제이다키스(Jadakiss)가 예의 빈틈없는 플로우와 라임을 작렬시킨 “Good Man”, PBR&B와 트랩 사이의 균형을 잘 맞춘 대니보이스타일스(DannyBoyStyles)의 프로덕션과 코닥 블랙의 웅얼거림이 끈적하게 붙어가는 후렴구가 조화로운 "Pull a Caper" 등이 그렇다. “Interlude”에 등장하여 짧지만, 굵은 인상을 남긴 팔레스타인계 캐나다 랩퍼 벨리(Belly)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겠다.  

     

    이전까지의 앨범에서 매번 가장 큰 단점으로 여겨진 건 칼리드의 무책임함이었다. 본인의 인맥을 동원하여 일단 유명한 선수들을 불러모으는 데까지만 주력한 다음, 정작 음악적인 결과물은 어떻게 되는지 보자란 식의 느낌이 강했다. 그렇다 보니 허울뿐인 정규 앨범처럼 다가온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엔 적어도 한 장의 앨범으로 엮기 위해 신경 쓴 흔적이 엿보인다. 그럼에도 여전히 굳이 두 장의 분량으로 구성했어야 할까?!’란 의문은 남지만, 칼리드는 이제야 비로소 정규 앨범다운 정규 앨범을 내놓았다고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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