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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외 리뷰] Vince Staples - Big Fish Theory
    rhythmer | 2017-07-09 | 25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Artist: Vince Staples
    Album: Big Fish Theory
    Released: 2017-06-23
    Rating:
    Reviewer: 지준규









    캘리포니아 롱 비치 출신의 래퍼 빈스 스테이플스(Vince Staples)
    의 이름 옆에는 처절한 현실주의, 냉소적인 시선 같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그에게 음악은 단순한 유흥의 도구가 아니다. 삶의 무게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훌륭한 도피처이자 이상과 욕망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해방구와도 같다. 시대를 꿰뚫는 냉철한 가사와 수준 높은 플로우로 무장한 빈스는 데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평단과 힙합 팬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데뷔 EP[Hell Can't Wait]부터 첫 정규작 [Summertime '06]과 작년에 발매한 EP [Prima Donna]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은 단 한 번도 실망시키는 법이 없었다. 두 번째 정규앨범 [Big Fish Theory] 역시 그렇다. 이번에도 그의 예리한 통찰과 뛰어난 음악적 감각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점은 프로덕션이다. 전작들을 지배했던 우울하고 무거운 분위기는 다소 누그러졌고, 그 여백을 빠른 박자의 댄서블한 비트가 대신하면서 보다 생동감 넘치는 사운드로 완성됐다. 여기엔 소피(Sophie), 지미 에드가(Jimmy Edgar), 플룸(Flume), 쥐티에이(GTA) 같은 일렉트로닉 프로듀서들의 참여가 한몫을 했다. 이들은 기성 힙합 사운드의 울타리에서 벗어난 채, 때론 힙합 고유의 색채를 끌어안은 채, 세련된 전자 음악 사운드를 혼합시켜서 신선하고 흡인력 있는 무드를 만들어냈으며, 이것이 빈스의 날 선 랩핑과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이 외에도 앨범엔 친근하지 않은 사운드 소스를 활용한 프로덕션이 전면에 나서있다. 상투적인 전개를 탈피하려는 빈스의 욕심이 엿보이는 지점이다.  

     

    전작들과의 차이는 빈스 스테이플스의 랩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눈에 비친 현실을 창의적인 비유와 생생한 이미지를 통해 그려내며 공감을 이끌어내는 그의 노랫말은 언제나처럼 매력적이지만, 모순 가득한 사회와 그로 인한 불안을 표출하는 데 치중했던 전과 달리 이번엔 본인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 안에 혼재된 여러 감정을 묘사하는 것에 더욱 집중한 느낌이다. 더불어 긴장, 우울, 혼란 같은 부정적인 요소들뿐만 아니라 사랑, 그리움, 애잔함 등의 정서까지 균형 있게 녹여냄으로써 한 차원 넓어진 감정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이상이 종합된 앨범의 주된 방향성은 첫 트랙 “Crabs In A Bucket”에서부터 선명히 제시된다. 저스틴 버논(Justin Vernon)이 프로듀서로 참여한 이 곡은 몽환적인 신스 위로 속도감 있는 하우스 드럼과 샘플 보컬이 변화무쌍하게 얹혀 전개되는 비트만으로도 강렬한 희열을 안긴다. 소모적 경쟁의 무의미함을 역설하고 스스로를 반추하는 빈스 스테이플스의 담담한 랩핑과 후반부에 등장하는 킬로 키쉬(Kilo Kish)의 유려한 보컬 역시 이와 오묘하게 어우러지며 매력을 더한다. 그런가 하면, 이어지는 “Big Fish”에선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이 전면에 드러난다. 빈스는 그동안 많은 부와 인기를 얻었지만, 행복은 찾아오지 않았고 삶은 여전히 삐걱댄다고 말하며, 좁혀지지 않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 때문에 오히려 전보다 괴롭다고 고백한다. 곡의 뼈대를 구성하는 쥐펑크(G-Funk) 사운드와 쥬시 제이(Juicy J)의 힘 있는 후렴(Hook)은 물론, 진솔한 속마음을 여과 없이 이야기하면서도 감정의 과잉 없이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하는 랩 퍼포먼스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앨범의 중반부에 다다르면 백미라 할 수 있는 곡 “Yeah Right”이 등장한다. 소피와 플룸의 손을 거친 감각적인 비트는 끊임없이 변주되며 혼란을 고조시키고, 정제되지 않은 각종 효과음들이 불규칙적으로 섞이면서 곡 전체를 휘감는 팽팽한 긴장감이 더욱 극대화된다. 빈스 스테이플스는 그 사이를 능숙하게 파고들며 현 힙합 씬을 이끄는 래퍼들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아가 사회 전반에 만연한 비도덕적 병폐들까지도 특유의 회의적인 시선으로 꼬집는다. 여기에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호소력 있는 래핑과 쿠츠카(Kućka)의 고혹적인 보컬이 더해지며 곡은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이 외에도 데이먼 알반(Damon Albarn)과 함께 사랑이라는 감정이 가진 이중성에 대해 고민하는 “Love Can Be...”, 릭 로스(Rick Ross)의 곡 “Hold Me Back”의 중독성 진한 후렴구를 차용해 흥미를 유발하는 “Homage”, 유연한 랩핑과 리듬감 넘치는 베이스 라인이 귀를 사로잡는 “BagBak”, 정신적 두려움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솔직한 노랫말이 적잖은 여운을 남기는 “Rain Come Down” 등의 곡들 역시 하이라이트를 장식한다.

     

    물론, 비슷한 분위기가 여러 번 반복되고 어지러운 전자음들이 과도하게 사용된 일부 곡들이 때때로 감흥을 저해하는 점은 다소 아쉽다. 다만, 기존 틀에 구애받지 않고 본인만의 독특한 스타일과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하고자 한 빈스 스테이플스의 예술적 지향과 가치관은 여전히 유효하고 힘을 발휘한다. 앨범에 드러난 그의 패기와 열정, 그리고 재치는 지난날과 다를 바 없으며, 한층 성숙하고 깊어진 메시지가 또 한번 진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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