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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리뷰] 비앙 X 쿤디판다 - 재건축
    rhythmer | 2017-12-09 | 22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Artist: 비앙 X 쿤디판다
    Album: 재건축
    Released: 2017-11-25
    Rating:
    Reviewer: 황두하









    슈퍼프릭 레코즈(SuperFreak Records) 소속 프로듀서 비앙(Viann)2014년 첫 정규 앨범 [Les Viann]을 발표하며 호기롭게 등장했다. 독특한 샘플 운용과 로파이(Lo-fi)한 질감의 드럼, 수시로 이루어지는 변주가 어우러진 그의 음악은 완성도를 떠나 국내 힙합 씬에서는 접할 수 없던 새로운 시도였다. 마치 인디 레이블 스톤즈 스로우(Stones Throw) 소속의 프로듀서 날리지(Knxwledge)를 떠오르게 하지만, 어설픈 흉내 내기 수준의 것은 아니었다. 이처럼 과감하고 실험적인 시도를 정규 앨범 단위로 펼쳐 보였다는 것에서 그의 야심을 엿볼 수 있었다. 그래픽 아티스트 레어버스(Rarebirth)와 함께한 프로젝트 핑앤퐁(Ping N Pong)에서도 PNSB, 넉살, 던밀스(Don Mills) 등의 기성 랩퍼들을 초대하면서 본인의 스타일을 잃지 않으며 신선한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그런 그가 또다른 앨범의 파트너로 선택한 아티스트는 신예 랩퍼 쿤디판다(Khundi panda)이다. 아카시(Acacy), 오르내림(OLNL) 등이 뭉친 크루 쥬스오버알코올(juiceoveralcohol) 소속인 그는 몇 장의 믹스테입을 통해 퓨쳐 바운스(Future Bounce)에 기반을 둔 음악 스타일과 독특한 톤의 랩으로 서서히 이름을 알려갔다. 특히, “Paradise Ride [신의 조우]” 같은 트랙은 탁월한 랩 스킬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더불어 베테랑 MC 메타(Meta)를 비롯해 동료 랩퍼들인 오왼 오바도즈(Owen Ovadoz), 심바 자와디(Simba Zawadi) 등을 향한 거침 없는 디스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둘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앨범 [재건축]은 각자의 스타일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작품이다. 쿤디판다는 올해 9월 믹스테입 [쾌락설계도]를 발표하며 기존의 퓨쳐 바운스 사운드를 탈피하고 텁텁한 붐뱁 트랙들에 몸을 실은 바 있다. 그런 점에서 본작은 믹스테입의 연장선에 있다. 비앙은 샘플링과 시퀀싱 작법을 오가면서 질척거리는 질감의 드럼과 독특한 소스들을 사용해 파트너가 마음껏 뛰놀 수 있는 판을 마련해줬다. 그러면서도 포커싱이 온전히 랩퍼에게만 가지 않는 것이 본작의 미덕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그가 만든 트랙들은 개성이 뚜렷하다. ‘1 MC + 1 Producer’ 포맷을 영리하게 이용한 것이다.

     

    “Randomcall”부터방목까지 이어지는 초반부는 비앙의 프로듀싱 능력이 가장 빛을 발하는 구간이다. 두터운 베이스라인과 노이즈 소스, 간주 구간의 신시사이저 운용으로 단숨에 앨범에 집중하게 만드는 첫 트랙 “Randomcall”은 앨범의 성격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트랙이다. 더불어 슈퍼프릭 레코즈 소속의 또 다른 프로듀서 뷰티풀 디스코(Beautiful Disco)와 알앤비 싱어송라이터 수민(Sumin)이 참여한 “Ms. 808”, 플라잉 로터스(Flying Lotus)가 이끄는 레이블 브레인피더(Brainfeeder) 소속 프로듀서이자 래퍼 제레미아 재(Jeremiah Jae)가 벌스를 보탠 “Foreignhub.co.kr” 등도 인상적인 트랙들이다. 특히, “Foreignhub.co.kr”은 붐뱁 비트에 판소리를 이질감 없이 융화시켜서 전위적인 프로덕션의 진수를 선사한다. 비앙의 뛰어난 샘플링 운용 능력을 엿볼 수 있다.

     

    한편, 앨범의 중앙에 위치한 방목에서는 어린 시절 부모님과의 갈등과 고민을 토로하다가 마지막 벌스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야기가 틀어지는데, 이에 따라 이루어지는 변주가 인상적이다. 다만, 뒤이어 나오는 “NOT4SALE”을 기점으로 프로듀싱에서 힘이 살짝 빠진다. “방목에서의 변주 이후로 무드가 바뀌면서 의도적으로 가벼운 터치의 트랙들을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전까지의 위협적인 기세가 이어지지 못하면서 다소 김이 빠지는 인상이다. 완성도가 나쁜 편은 아니지만, 감각이 번뜩이는 초반부를 생각한다면 아쉬운 지점이다.

     

    쿤디판다의 가사 역시 주목할만하다. 그는 재건축이라는 테마를 토대로 한국 힙합 씬과 한국 사회, 그리고 자신에 대한 고찰과 철학을 앨범 전체에 걸쳐 풀어냈다. 각각 [쇼미더머니]로 점철된 작금의 씬과 해외파 랩퍼들의 무분별한 사대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싱크홀국제도시”, 이사하면서 느낀 소회와 각오를 풀어낸 이사”, 인간의 불완전함을 긍정하는 생활오타 [Type O’Life]” 등등, 많은 트랙에서 가사가 주는 맛이 괜찮다. 특히, 어설픈 한영혼용 가사를 남발하는 랩퍼가 널린 한국 힙합 씬에서 대부분 한국어 가사로 탁월한 랩 퍼포먼스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다.

     

    스스로 컨셔스 랩(Conscious Rap)을 추구한다고 말하는 가사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건 그의 랩이다. 다소 난해할 수 있는 비앙의 트랙 위에서 리듬을 밀고 당기며 자유자재로 플로우를 만들어내는 랩은 그 실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울러 많은 양의 가사를 속도감 있게 뱉어내면서도 날카로운 하이톤의 랩으로 이를 명징하게 전달한다.

     

    [재건축]은 패기 넘치는 두 아티스트의 합작품으로써 손색없는 완성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비앙은 기존의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더욱 발전된 기량으로 트랙을 만들어냈고, 쿤디판다는 그 위에서 본인의 철학을 마음껏 펼쳐냈다. 앞서 말했듯이 프로듀서와 랩퍼 둘 다 앨범의 주인공이라는 것이 또렷이 드러나는 결과물이기에 더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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