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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외 리뷰] Brockhampton - Iridescence
    rhythmer | 2018-09-30 | 8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Artist: Brockhampton

    Album: Iridescence
    Released: 2018-09-21

    Rating: 
    Reviewer: 황두하









    ‘보이밴드’를 자처하는 음악 집단 브록햄튼(Brockhampton)은 작년 한 해 동안 발표한 세 장의 [Saturation] 연작을 통해 씬에서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험적인 프로덕션과 유연하고 탄탄한 구성, 멤버들의 개성이 돋보이는 퍼포먼스, 그리고 개인사를 병렬적으로 늘어놓아 몰입도를 높인 가사가 어우러져 놀라운 완성도를 보여줬다.

     

    흥미로운 건 빠른 시간 안에 발표한 세 장의 앨범이 모두 비슷한 구성을 보임에도 워낙 완성도가 뛰어난 덕분에 식상하기는커녕 획기적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특히, [Saturation III]의 마지막 곡 “TEAM”의 후반부에서 음폭이 변화하며, [Saturation]의 첫 곡 “HEAT”로 자연스레 이어지는 지점은 이들이 얼마나 치밀하게 앨범을 구성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트릴로지의 성공으로 RCA 레코즈(RCA Records)와 메이저 계약까지 따내며 승승장구할 것 같던 이들에게 올해 초 큰 풍파가 들이닥쳤다. 그룹의 핵심 멤버인 아미르 벤(Ameer Vann)의 성범죄 혐의가 SNS를 통해 폭로된 것이다. 그룹은 발 빠르게 성명서를 발표하며 벤을 팀에서 방출했다. 당연한 조치였지만, 묵직한 랩으로 그룹의 색깔에 크게 일조했던 멤버였기에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 탓에 본래 6월에 발표하기로 했던 [Puppy]의 발표와 투어 일정이 취소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도 이 젊은 아티스트들의 창작욕을 멈출 수는 없었다. 사건 이후, 4개월 만에 새로운 앨범 [Iridescence]로 돌아온 것이다. 앨범의 사운드는 전보다 훨씬 더 과감하고 진취적으로 변모했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앨범의 전면에 배치되어 몰입도를 높이는 강렬한 서던 힙합 트랙 “NEW ORLEANS”는 대표적. 이어서 나오는 “THUG LIFE”에서 리듬 파트는 유지된 채 긴장감을 조성하던 신시사이저가 피아노 연주로 교체되며 전혀 다른 분위기로 자연스레 전환되는데, 그 순간이 매우 절묘하여 감탄을 자아낸다.

     

    NEW ORLEANS” “THUG LIFE”처럼 앨범에는 강렬한 뱅어 트랙들과 서정적인 무드가 돋보이는 트랙들이 교차로 배치되었다. 전자에서는 과장된 신시사이저와 역동적인 리듬파트로 귀를 자극하고, 후자에서는 현악기, 어쿠스틱 기타 등 리얼 악기 연주로 여운을 남긴다. 이처럼 분위기의 낙차가 심한 트랙들이 연달아 이어짐에도 산만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전체적으로 일정한 톤을 유지하고 있고,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변주가 둘 사이를 자연스럽게 이어준 덕분이다.

     

    런던 커뮤니티 가스펠 콰이어(London Community Gospel Choir)의 합창이 진한 감동을 주는 “SAN MARCOS”를 기점으로 후반부에서는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침잠된 무드의 곡들이 이어지며 마무리된다. 특히, 마지막 곡인 “FABRIC”의 후반부에서는 점차 고조되는 킥 드럼 소리 이후 전혀 다른 곡의 비트가 이어지며 다음 앨범을 자연스럽게 예고한다. 얼마나 철저한 계산 아래 앨범을 구성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일관된 주제 없이 각자의 개인사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나열됐던 전작과 달리 본작은 일정한 주제의식을 공유한다. 성공 이후에 찾아온 위기와 그에 따른 불안감이 바로 그것이다. 일례로 “TONYA”에서는 본인들의 상황을 영화 [아이 토냐, I Tonya](*필자 주: 온갖 구설에 휘말렸던 피겨스케이팅 선수 토냐 하딩의 실화를 다룬 영화)에 빗대기도 한다.

     

    흥미로운 건 전작들을 통해 캐릭터들을 착실하게 구축해놓은 덕분에 모두 각자의 관점에서 주제를 풀어감에도 자연스레 감정선을 따라갈 수 있다는 점이다. 전작들이 캐릭터를 소개하는프롤로그와 같았다면, 본작에 이르러 드디어브록햄튼이라는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멤버들의 퍼포먼스 또한 뛰어나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돔 맥클레넌(Dom McLennon)과 베어페이스(Bearface). 돔은 여전히 위트 넘치는 가사와 차진 랩으로 분위기를 환기하며 자주 곡의 하이라이트를 가져간다. 특히, “BERLIN”에서의 벌스는 앨범의 백미라 할만하다. 전작들보다 분량이 늘어난 베어페이스는 곳곳에서 랩과 보컬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본작에서 처음 시도한 그의 피치 올린 랩은 케빈 앱스트랙(Kevin Abstract)의 것과는 또 다른 매력을 뿜는다.

     

    [Iridescence]는 브록햄튼이 앞으로 발표할베스트 이어즈 오브 아워 라이브즈(The Best Years of Our Lives)’ 트릴로지의 첫 번째 작품이다. 이 욕심 많은 그룹은 또 한 번의 연작 앨범으로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줄 심산이다. 과감하면서도 철저한 기획 아래 탄탄한 완성도로 마감된 본작은 그 시작으로써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 뒤이어 나올 두 장의 앨범이 기다려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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