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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외 리뷰] Tyler, the Creator - IGOR
    rhythmer | 2019-06-07 | 9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Artist: Tyler, the Creator
    Album: IGOR
    Released: 2019-05-17
    Rating: 
    Reviewer: 황두하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의 커리어는 한 마디로가면을 벗고 나오는 과정이었다. 커리어 초창기에 발표했던 [Bastard](2009) [Goblin](2011)에서 위악적이고 공격적인 가면으로 세상에 맞섰던 10대 소년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차 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네 번째 정규 앨범 [Flower Boy](2017)에 이르러 섬세하고 복잡한 속내를 꺼내 보였다. 그는 어느새 20대 중반의 어엿한 청년으로 자라있었다. 타일러는 이 앨범에서 가면을 벗고 진짜 모습을 담아냄으로써 커리어 사상 최고의 역작을 만들어냈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르고 발표한 [IGOR]는 새로운 캐릭터인이고르(Igor)’의 러브 스토리를 담은 작품이다. 이고르는 이성 애인이 있는 한 남자와 짝사랑에 빠져 열병을 앓는 인물이다. 타일러가 (전작에서 언급한 대로) 양성애자라는 점이 자연스레 연상되는 지점이다. 그래서 이전의 기믹들과 달리 이고르는 훨씬 더 타일러 본인에 가깝다. 더불어 [Flower Boy]를 발표한 직후 코미디언 제러드 카마이클(Jerrod Carmichael)과 했던 인터뷰를 내러티브에 맞게 중간중간 스킷으로 넣어 둘 사이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었다.

     

    마치 자넬 모네(Janelle Monae)[Dirty Computer]에서제인 57821(Jane 57821)’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자신의 성정체성을 커밍아웃한 것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다른 점이 있다면, [IGOR]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 안에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는 점이다.

     

    이고르의 사랑은 사춘기 소년마냥 열정적이다. 상대의 애인을 향한 질투를 격정적으로 드러내기도 하고(“Running Out Of Time”, “New Magic Wand”), 스스로의 처지를 비관하다가(“A Boy Is A Gun”, “Puppet”) 혼자서 마음을 정리하지만(“Gone, Gone / Thank You”, “I Don’t Love You Anymore”), 이내 다시 미련을 내비친다(“Are We Still Friends?”). 그런데 이것들이 혼잣말에 가깝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밝은 사운드와 어우러져 더욱 처연한 느낌을 자아낸다.

     

    다만, 가사가 이고르의 캐릭터처럼 직선적이라는 점은 아쉽다. 섬세한 표현과 재기 넘치는 말장난을 통해 내면의 복잡함을 흥미롭게 풀어낸 전작과 비교되는 지점이다. 이는 보컬의 비중이 늘어난 탓이기도 하다. 디지털 가공한 보컬은 나름 매력적이지만, 일정 경지 이상에 오른 랩에 비할 바는 아니다. “New Magic Wand”, “A Boy Is A Gun”, “Gone, Gone / Thank You” 등등, 간간히 랩을 선보이는 와중에도 번뜩이는 재치와 물오른 플로우로 귀를 즐겁게 해주고 있어 조금 감질나게 느껴진다.

     

    이번에도 역시 타일러가 전곡을 맡은 프로덕션은 탁월하다. [Cherry Bomb] [Flower Boy]를 절충한 사운드에 복고적인 색채를 입혔다. 노이즈 소스가 전반에 깔린 가운데 특유의 신시사이저와 감미로운 피아노 연주가 번갈아 진행되는 연주곡 “Igot’s Theme”은 앨범의 사운드를 대변한다. 알앤비, 네오 소울, 신스 팝, 두왑(Doo-Wap) 등 다양한 장르를 그만의 색깔로 소화했다.

     

    역동적인 신스 진행과 각종 소스의 활용, 그리고 겹겹이 쌓아 올린 멜로디를 통해 이루어지는 변주는 산만함과는 거리가 멀다. 전체적으로 한결같은 톤으로 잘 정돈되어있으며, 전에 없던 여유까지 느껴진다. 타일러 식 얼터너티브 힙합이 완성형에 가까워진 것이다.

     

    게스트의 활용도 흥미롭다. 릴 우지 버트(Lil Uzi Vert), 솔란지(Solange), 칸예 웨스트(Kanye West), 찰리 윌슨(Charlie Wilson) 등등, 걸출한 이름들이 참여했는데, “Earfquake”에 참여한 플레이보이 카티(Playboi Carti) 정도를 제외하면, 모두 애드립이나 코러스처럼 작은 역할에 머물렀다. 이들의 목소리를 적재적소에 하나의 소스처럼 활용한 셈이다. 앨범을 장악하는 그의 역량이 성장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앞서 말했듯이 [IGOR]의 페르소나는 타일러 본인에 가장 가깝다. 전처럼 본 모습을 숨기기 위한가면이라기보다는 그의분신이라고 하는 편이 옳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전작보다 더 솔직하다. 사운드 디자인 역시 이에 따라 한결 능숙하고 자연스러워졌다. 영원히 철없을 것 같았던 그도 어느새성숙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뮤지션으로 성장했다. 그의 커리어가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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