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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리뷰] 수퍼비 - Rap Legend 2
    rhythmer | 2020-04-11 | 15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Artist: 수퍼비
    Album: Rap Legend 2
    Released: 2020-03-13
    Rating:
    Reviewer: 남성훈










    래퍼 오디션 [쇼미더머니]에 여러 번 출연하며 이름을 알린 수퍼비(Superbee) 201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하여 가장 안정적으로 경력을 쌓은 힙합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결과물의 양부터 동시대 등장한 이들을 쉽게 따돌릴만하다. 믹스테입을 포함하여 EP 이상의 앨범을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뛰어난 박자 감각을 바탕으로 한 랩 실력 역시 단연 손에 꼽을만하다. 수퍼비의 랩은 흐트러짐 없이 깔끔하게 떨어지면서도 기술적인 과시가 곁들여졌다. 다만, 그동안의 결과물 중에 음악적으로 특별한 인상을 남기거나 성취를 거론할만한 작품은 없었다.

     

    2017년의 [Rap Legend]를 잇는 [Rap Legend 2]를 지배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 기인하는 인정욕구다. 그것을 풀어가는 서사는 단순하면서 비장하다. 수퍼비는 자신을 힙합의 핵심적인 가치를 지켜 나가는 성자와 같은 인물로 배치하고, 그런 자신이 한국 힙합 씬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곧 장르적인 카타르시스를 직설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힙합의 영원한 주제의식이기도 하다.

     

    앨범을 여는 "RL 2 !NTRO" '내 가치는 폄하를 당했지', '난 게임을 바꿀 계획 이 앨범은 투쟁 내 이들을 위해' 같은 라인, 그리고 이어지는 "떠나야"에서 자신의 심경을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올해도 내 패배로 끝나겠지 I'm done 좆같은 이미지 하락과 함께 I'm done' 류의 가사가 대표적이다. 이후 성공의 과시나 랩퍼로서의 우위를 점하려는 평이한 주제의 트랙들도 이런 정서적 무드 안에서 입체적으로 읽힌다. 성공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익사하는 듯한 연출의 "물에 빠져" 역시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러한 전개가 그다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선명하다. 설득력의 부재다. [Rap Legend 2] 속 수퍼비에겐 분명 현실의 수퍼비가 적극적으로 투영되었다. 하지만 그의 핵심적인 경력과 대중에게 각인된 이미지가 오디션 경연 프로그램에서의 활약이기에 힙합의 구원자이자 핍박받는 이로 본인을 설정한 가사가 화자의 진지함과 듣는 이의 뜨악함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비장함으로 무장한 가사 역시 마찬가지다. "RL 2 !NTRO"에서 고발하는 한국 힙합 씬의 모습은 10년 전 즈음 현재 베테랑으로 자리잡은 이들이 밟고 오르며 차별화하던 배경과 별반 차이가 없어 신선함이 떨어진다. 사회적 맥락의 내밀함이 강력하게 작용하는 힙합음악과 윤리 논쟁을 논의점 없이 단순화해 꺼내는 것도 시대착오적이라 힙합의 수호자라는 흥미로운 설정의 힘을 뺀다. 다음 트랙에서 이미 미국 힙합 씬은 물론, 한국 사회에서도 표현에 관한 논쟁 자체에서 벗어난지 오래인 성소수자 혐오 가사('호모 커플 같은 페이크 쥬얼리스')를 담은 것도 세련되지 못하다.

     

    제이지(Jay Z) [4:44]와 같이 씬의 최전선에 있는 이들이 힙합 특유의 무드를 놓지 않으면서, 늘 시의적 가치를 절묘하게 흡수해 가사적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더욱 아쉽다. 랩 가사의 구조적 짜임새는 훌륭하지만, 수퍼비가 앨범 속에서 철저하게 자신을 한국 힙합의 구세주로 규정했기에 [Rap Legend 2] 속 영리함과는 거리가 멀고, 세련미가 떨어지는 시선이 주는 감흥은 쉽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하지만, 결국 [Rap Legend 2]를 감상한 이후, 선명하게 남는 것은 작정하고 준비한 주제의식이 아니라 수퍼비의 랩 퍼포먼스와 비트 선택 능력이다. 그는 등장할 때부터 천부적이라 할 정도로 어느 비트에서나 쫀득하게 달라붙는 랩 스킬을 자랑했다. 동시에 뛰어난 전달력까지 겸비했다. 그런 그가 [Rap Legend 2]에선 한 단계 더 올라선다. 곡의 무드에 따라 목소리 톤에 과하지 않을 정도로 변화를 주면서 표현하는 감정선은 랩 퍼포먼스를 더욱 풍부하게 한다. 한국 힙합 씬에서 도끼(Dok2)가 추구했던 퍼포먼스의 방향성을 제대로 이은 거의 유일한 랩퍼로 부를만하다.

     

    리믹스 버전으로 실린 “Hue! (Remix Ver.)”와 앨범의 타이틀 트랙인떠나야”, “MUD BOY”는 그야말로 랩을 듣는 재미가 극대화된 트랙들이다. 오로지 수퍼비의 랩 퍼포먼스 하나만으로도 단연 치켜세울 만하다. 피처링 진의 배치와 활약도 자칫 피곤해질 수 있는 앨범의 분위기를 잘 환기한다. 특히, 키득키득(Kidk Kidk)과의 듀엣 곡 “Kidk Kidk”은 앨범의 마지막에서 재감상을 유도하는 흥미로운 장치다.

     

    프로덕션은 그의 빡센 랩을 더욱 긴장감 있게 포장하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다. 트랙을 관통하는 멜로디는 중독적이고, 겹겹이 쌓인 사운드는 산만하지 않게 큰 줄기를 만들어내며 수퍼비의 랩과 균형을 맞춘다. 발군의 랩 퍼포먼스를 고품질의 비트 위에 올린 앨범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 현재 한국 힙합에서 수퍼비가 지닌 가치일 것이다.

     

    다만, 그가 작정하고 몰입하여 전파하는 힙합의 모습은 그다지 흥미롭거나 새롭지 않고, 공허한 비장미만 맴돈다. 그래서 [Rap Legend 2]의 감상엔 양면성이 생긴다. 이는 수퍼비를 둘러싼 실력과 멋 사이의 괴리감을 만드는 원인이 무엇인지에 관한 힌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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