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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외 리뷰] Westside Gunn - Pray For Paris
    rhythmer | 2020-05-26 | 10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Artist: Westside Gunn
    Album: Pray For Paris
    Released: 2020-04-17
    Rating: 
    Reviewer: 강일권









    범죄와 관련한 주제를 다루는 이른바 범죄 랩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힙합 팬들의 마음을 앗아왔다. 저마다의 랩 스타일과 스토리텔링으로 무장한 랩 범죄자들이 만들어낸 이 음악은 힙합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최고의 판타지 중 하나다.

     

    오늘날 이 계열의 최고봉으로는 락 마르시아노(Roc Marciano), 고스트페이스 킬라(Ghostface Killah), 프레디 깁스(Freddie Gibbs)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범죄 이야기를 영화적인 무드의 프로덕션 안에 담아내며, 범죄 랩의 범위를 컨텐츠에서 프로덕션으로까지 확장했다.

     

    2016년에 발표한 데뷔 앨범 [Flygod]을 통해 붐뱁 힙합의 적자임을 드러낸 웨스트사이드 건(Westside Gunn)은 이 같은 범죄 랩 후발주자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래퍼다. 그는 탄탄하고 빡센 랩으로 열혈 힙합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형제이기도 한 래퍼 콘웨이(Conway)와 설립한 그리젤다 레코드(Griselda Records)로 에미넴의 쉐디 레코드(Shady Records)와 계약했다.

     

    올해 가장 강렬하고 아름다운 커버 아트워크의 [Pray For Paris]는 웨스트사이드 건이 올해 1, 버질 아블로(Virgil Abloh/*필자 주: 루이비통을 이끈 최초의 아프리카계 인물이며, 가장 영향력 있는 패션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이번 앨범의 커버 아트를 맡았다.)의 오프화이트(Off-White) 파리 패션쇼에 참석한 후 영감을 얻어 만든 작품이다.

     

    가장 먼저 프로덕션의 변화가 눈에 띈다. 트랩, 드릴 뮤직, 이모 랩 등등, 현재의 트렌드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건 변함없지만, 전작들보다 드럼의 타격감을 강조한 비트 스타일을 지양하고, 샘플 프레이즈를 부각한 비트 위주로 꾸렸다. 콘웨이, 베니 더 부쳐(Benny the Butcher) 등과 결성한 그리젤다의 앨범에서 이미 선보인 방향성이긴 하다. 그럼에도 본작에선 더욱 우아하고 기품 있게 연출되었다. 좀 더 극적인 무드를 극대화하는 데 집중한 느낌이다.

     

    디제이 먹스(DJ Muggs), 디제이 프리미어(DJ Premier), 알케미스트(The Alchemist) 같은 거장부터 랩으로도 참여한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 그리고 건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대린저(Daringer)와 캐모플러지 멍크(Camoflauge Monk) 등등, 다양한 프로듀서 진이 참여했지만, 흡사 한두 명의 프로듀서가 책임진 것처럼 유기적인 흐름이 돋보인다.

     

    가스펠 그룹 더 클라크 시스터즈(The Clark Sisters)“They Were Overcome (By the Word)”에서 후반부에 등장하는 두 번째 코러스를 따와 프레이즈를 만든 “Versace”, 재즈 싱어 키트 앤드리(Kit Andree)“Feelings”를 샘플링하여 메인 프레이즈를 만들고 유럽의 힙합 아티스트 메이드 인 엠 앤 스무브(Made In M & Smuv)“Good to Go (Home)” 드럼 파트를 재가공하여 입힌 “327” 등등, 프로듀서 진은 잘 알려지지 않은 소울, 펑크(Funk), 블루스, 재즈, 팝을 재료삼아 인상적인 프레이즈를 만들어냈고, 웨스트사이드 건은 그 안을 강렬한 범죄 랩과 브래거도치오(braggadocio)로 채웠다.

     

    특히, 알케미스트가 주조한 “$500 Ounces”는 아주 전통적인 동시에 영리한 샘플링의 마력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호주 출신의 재즈, 알앤비 싱어 르네 게이어(Renée Geyer)1974년에 발표한 “It's Been a Long Time” 단 한 곡만을 이용하되 원곡의 시간순서를 재구성했다. 원곡에선 후반부에 나오는 관악과 스트링 파트 일부를 앞쪽에, 그리고 원곡 초반부의 백업 보컬 파트는 뒤쪽에 배치한 다음, 마치 원래 한 부분이었던 것처럼 이어서 인상적인 프레이즈를 완성했다.

     

    한편, 단어에 힘을 주면서 전체적으로 쥐어짜듯 뱉는 웨스트사이드 건의 랩은 여전히 옹골지다. 비트에서 줄어든 드럼의 타격감을 그의 랩이 대신한다. 시종일관 텐션을 유지하기 때문에 듣는 이에 따라선 피로해질 수도 있겠으나 본작에선 게스트 래퍼들과 소울풀하고 차분한 무드의 비트가 이를 어느 정도 상쇄한다.

     

    더불어 [Flygod]에서 다소 평범했던 가사는 이번 앨범에 이르러 한 단계 발전한 듯 느껴진다. 특히, 건은 여느 래퍼들처럼 돈과 여성 편력을 자기과시의 도구로 이용하기보다 앨범의 컨셉트에 맞춰서 현재의 지위를 부각하는 걸로 대신한다. 러프한 하드코어 래퍼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패션쇼에 초청받아 참석하고, 돈 씨(Don C), 니고(Nigo) 등의 유명 디자이너와 나란히 앉은 모습을 과시하는 “327” 같은 곡에서의 가사는 대표적이다. 그런 가운데 간간이 스토리텔링 구성을 취한 가사가 흥미를 더한다.

     

    [Pray For Paris]는 비유하자면, 험악한 마약거래의 현장을 런웨이 위로 옮겨온 듯한 작품이다. 락 마르시아노가 발표한 일련의 앨범들이나 고스트페이스 킬라와 아드리안 영(Adrian Younge)의 합작, 그리고 프레디 깁스와 매드립(Madlib)의 합작과 비슷한 듯 맞닿아 있으면서도 고유한 특징을 지녔다. 웨스트사이드 건은 붐뱁과 하드코어 랩의 현재를 대변하는 래퍼 중 한 명이며, [Pray For Paris]에 바로 그 현재가 잘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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