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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리뷰] 피셔맨 - The Dragon Warrior
    rhythmer | 2020-11-05 | 22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Artist: 피셔맨(Fisherman)
    Album: The Dragon Warrior
    Released: 2020-10-18
    Rating: 
    Reviewer: 김효진









    철학자 사르트르는
    존재가 본질에 선행한다.’라고 말했다. 아무 것도 아닌 인간은 순간마다 내린 선택을 통해 고유한 본질을 만들어간다. , 인간은 나름의 숙고를 통해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세우고 그 가치는 곧 그 개인의 존재를 증명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인간의 삶은 어떤 것을 믿느냐에 따라 모양새가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피셔맨(Fisherman)의 첫 정규 앨범 [The Dragon Warrior]에는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치열하게 숙고하는 개인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가 좇는 것은이다. ‘은 종교적 믿음(“DOOM”)이 될 수도 있고 우정이 되기도 하며(“Murphy”) 사랑일 수도 있다(“난 매일”).

     

    그가 이토록 생각에 잠긴 이유는 누군가 화자에게디버프”(*필자 주: PC NPC의 능력에 악영향을 주는 효과)를 걸었기 때문이다. 성실하게을 좇는 자에게용은 없다.’라고 단언한 거다. ‘용이 없다.’라는 문장이 사실이라면, 한 가지 모순이자 의문이 생긴다. ‘용을 좇는 화자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게 존재 이유를 증명하기 위해 이 치열한 숙고는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2CD로 구성된 만큼 본작엔 긴 호흡의 고민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특히, 가사 없는 곡들이 번뇌의 지점으로 역할한다. 앨범의 시작을 여는 산뜻한 스캣(“디버프”)은 개인의 숙고가 긍정적으로 끝날 수 있다고 암시하는 듯 하지만, 곧이어 “Blade of Dignity”로 존엄성에 관한 날카로운 고민을 드러낸다. “를 통해 증명하고자 하는 명제를 뒤집어 살펴보며 깊은 숙고로 들어가기도 하고, “Captcha”에 닿는 종국에는가 인간이 맞는지도 고민한다(*필자 주: ‘Captcha’는 사람과 컴퓨터를 구별하기 위한 자동 계정 생성 방지 기술이다.).

     

    [The Dragon Warrior]의 프로덕션은 피셔맨이 의도한 철학적 메시지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혼란으로 가득한 내면을 그리듯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끊임없이 변주하며 탁월하게 운용한다. 그 가운데 몽환적이면서도 재지한 무드를 자아내어 전체 분위기를 잡는다. 재즈, 보사노바, 힙합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지만, 중심을 잃지 않는 것이다. 혼잡스러운 마음에도 삶의 기준을 잃지 않으려는 개인의 모습처럼 비춰진다.

     

    피처링 진 또한 제 역할을 충분히 해낸다. 도입부에 등장하는 다린은 스캣만으로 앨범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키며, 수민(SUMIN)은 독보적인 보컬 퍼포먼스를 선사한다. 김심야(Kim Ximya)와 쿤디판다(Khundi Panda)는 능란한 랩핑을 보여주고, 피셔맨과 오래도록 합을 맞춰 온 구원찬과 지우(Jiwoo)는 익숙한 듯 트랙 위에 편안히 자리한다.

     

    특히, 비와이(BewhY)가 참여한 “DOOM”은 앨범의 하이라이트다. 유약한 피아노 소리와 조심스러운 기타 사운드가 어우러져 규칙적으로 진행되는 듯하지만, 이내 불규칙적이고 불안한 바이올린 사운드가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다. 이후 일렉트로닉으로 변모하여 웅장한 사운드로 혼란과 어지러움을 표현한다.  

     

    이처럼 위태로운 분위기를 잡아주는 것은 비와이의 가사와 노랫말을 전달하는 목소리다. 비와이는 묵도와 같은 가사를 덤덤히 읊어 처절한 분위기를 도리어 강조한다. 기도가 무엇도 해결해주지 못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종교적 믿음을 삶의 가치로 삼고 살아간 개인은 죽음(doom)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본작의 CD2는 참여진의 목소리가 지워진 인스트루멘탈(Instrumental)로만 구성되었다. CD1을 통해 종교적 믿음을, 사랑을, 우정을 삶의 가치로 삼거나 결핍을 내세우며 염세적인 태도로 삶을 꾸리는 자들의 이야기를 쉼 없이 들었다. 그렇게 마주한 트랙들은 우리에게 던지는 과제나 질문 같다. ‘는 이 트랙 위에 어떤 말들을 쌓아 올릴 수 있는가. 무엇이삶의 만듦새를 이루는가. , 내가 믿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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