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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리뷰] 에픽하이 - Epik High Is Here 上
    rhythmer | 2021-01-22 | 15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Artist: 에픽하이(Epik High)
    Album: Epik High Is Here 上
    Released: 2021-01-18
    Rating:
    Reviewer: 황두하










    9
    [We’ve Done Something Wonderful](2017)과 컨셉트 EP [sleepless in __________]은 에픽하이(Epik High)의 현재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서정성을 강조한 프로덕션은 완성도가 낮아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고, MC의 퍼포먼스는 평범한 수준에 머물렀다. 종종 번뜩이는 라인을 선보이며 씬을 대표하는 리리시스트(Lyricist)로 불리던 타블로(Tablo)도 두 작품에서는 클리셰로 점철된 안이한 가사로 일관했다. 상업적으로 항상 좋은 성과를 올린 것과는 별개로, 이들의 음악은 자기 복제의 늪에 빠진 것만 같았다.

     

    [Epik High Is Here ]은 그들이 2년 만에 발표한 열 번째 정규 앨범의 첫 번째 파트다. 프로덕션의 색깔은 조금 달라졌다. 발라드 랩의 전형을 따르는 대신, 일본 멜로우 힙합 풍의 사운드를 차용한 점도 눈에 띈다. 그러나 보컬에게 후렴구를 일임하고, 서정적인 무드를 자아내는 악기로 곡을 이끄는 기존의 형식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드럼을 배제하고 피아노와 현악기 연주를 강조한내 얘기 같아와 부드러운 신시사이저 라인으로 단출하게 진행되는 “Leica”는 대표적이다. 이를 에픽하이 특유의 스타일로 규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미를 부여하기엔 완성도가 아쉽다. 의도적으로 미니멀리즘을 지향한 듯하지만, 뻔한 연출과 헐거운 곡 구성이 마치 습작 같은 느낌을 준다. 헤이즈(Heize), 김사월처럼 개성 강한 보컬들이 에픽하이와 만나 개성이 희석되는 것도 여전하다.

     

    붐뱁(Boom Bap)을 지향한 트랙들도 마찬가지다. 흡사 2000년대 초반의 한국 힙합을 떠오르게 하는 수상소감”, “Social Distance 16” 같은 곡들은 탁한 질감의 드럼만을 강조해 커리어 초반의 곡들을 다운그레이드 버전으로 만든 것 같다.

     

    물론, 인상적인 곡도 있다. 라틴 트랩 사운드를 준수한 완성도로 구현한 “Rosario”와 두터운 베이스 라인을 강조하고 독특한 소스들을 난입시키는 코드 쿤스트(Code Kunst) 특유의 작법이 빛을 발한정당방위가 그렇다. 특히, “Rosario”는 장르 음악이 줄 수 있는 감흥을 가장 잘 살려낸 트랙이다.

     

    타블로와 미쓰라(Mithra)는 커리어 중반까지 플로우에서의 그루브를 강조하기보다 라임을 빼곡하게 채워 리듬감을 자아내는 랩 스타일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We’ve Done Something Wonderful] 때부터 라임을 흘려보내는 식으로 스타일을 바꾸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독이 됐다. 이번 앨범에서도 마찬가지다. 딱딱한 플로우를 죽 이어가는 퍼포먼스는 별다른 감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종종 비트와 따로 노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무엇보다 “Rosario”정당방위에서 오랜만에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준 타블로와 달리, 미쓰라의 랩은 귀에 남지 않고 스쳐 지나갈 뿐이다. 게스트로 참여한 지코(ZICO), 우원재, 넉살, 창모의 퍼포먼스가 가장 집중하게 만드는 순간이라는 것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가장 아쉬운 건 가사다. 이들은 어떠한 상황이나 현상을 이성적으로 설명할 뿐, 구체적인 대상을 제시하거나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이별 후 모든 이야기에 마음이 아파지는 상황을 묘사하거나(“내 얘기 같아”), 세상에 환영받지 못하는 사랑의 형태를 설명하는(“True Crime”) 식이다. 누구나 아는 개인사가 앨범의 이야기와 어우러져 특별한 감흥을 주었던 타블로의 솔로 앨범과도 다르다. 그래서 이해할 수는 있지만, 심정적으로는 공감하기 어렵다.

    타블로의 특기인 허를 찌르는 펀차라인도 본작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첫 곡 “Lesson Zero”도 그간의레슨 시리즈를 부정하는 듯한 태도 변화를 설득력 있게 풀어내지 못했다. 개개인의 상황을 구체적인 단어 선택으로 풀어낸 게스트들의 벌스가 더 와닿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에서 같은 이름으로 열 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한 힙합 뮤지션은 드렁큰 타이거(Drunken Tiger)와 에픽하이가 유일하다. 게다가 에픽하이는 앨범을 발표할 때마다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이번 앨범도 차트에서 순항 중이다. 반면, [Epik High Is Here ]의 음악은 여전히 제자리다. 약간의 변화를 시도했지만, 대부분 너무 관성적으로 느껴진다. 두 번째 파트에서 반전을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첫 번째 파트에서는 17년 차 그룹의 제자리걸음만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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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mments
      1. Vannesa (2021-01-27 19:46:37, 116.32.51.***)
      2. CL이 왤케 아쉽지..
      1. 황두하 (2021-01-22 23:49:16, 117.111.12.***)
      2. @쏘니 쓰면서 혼동이 있었습니다. 바로 수정했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1. ripxxxtentacion (2021-01-22 23:10:09, 39.115.95.**)
      2. 이번 앨범이 그나마 전에 낸 ep보단 나은듯... 하편 기대하겠습니다
      1. 쏘니 (2021-01-22 22:23:07, 211.209.78.***)
      2. We've done something beautiful 이 아니라 wonderful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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