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외 리뷰] Kelela - Raven
- rhythmer | 2023-02-24 | 8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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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Kelela
Album: Raven
Released: 2023-02-10
Rating:
Reviewer: 황두하
2010년대 대중음악계의 화두 중 하나는 얼터너티브 알앤비다. 피비알앤비(PBR&B)를 위시한 얼터너티브 알앤비는 위켄드(The Weeknd), 프랭크 오션(Frank Ocean), 미겔(Miguel) 같은 스타들을 필두로 장르 음악의 지형을 뒤흔들어놓았다. 일렉트로닉, 록, 팝, 힙합 등 다른 장르를 적극적으로 껴안아 특유의 무드를 만들어냈고, 퍼포먼스도 폭발적인 가창력과 화려한 기교, 흑인 음악 특유의 그루브를 강조하기보다는 멜로디의 결을 살린 직선적인 팝 보컬에 가깝게 변모했다.케레라(Kelela)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등장했다. 알앤비를 기반으로 일렉트로닉의 다양한 하위 장르를 끌어안은 사운드를 통해 본인만의 색깔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비슷비슷한 얼터너티브 알앤비 사운드가 범람하는 와중에도 그의 존재감은 흔들리지 않았다. 2017년에 발표한 첫 정규 앨범 [Take Me Apart]에서는 팝적인 터치가 강한 멜로디 라인으로 대중성까지 챙겼다.
하지만 [Take Me Apart] 이후 공개적인 음악 활동을 하지 않았다. 팬데믹 동안 흑인 여성으로서 사회에서 고립되었다는 감정을 느꼈고, 창작가로서도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결국 약 7년이라는 공백기를 가졌다. 이번에 발표한 두 번째 정규 앨범 [Raven]은 그래서 더욱 반갑다.
[Raven]은 상승과 하강을 반복한다. 공간감을 강조한 신시사이저로 부유하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Washed Away”에서 개러지(Garage) 사운드를 차용한 “Happy Ending”으로 이어지고, 리듬 파트를 강조하지 않은 채 차분히 흘러가는 “Let It Go”로 다시 가라앉는다. 이러한 연출은 앨범의 마지막까지 지속된다.
드럼앤베이스, 개러지, 댄스홀 등 댄서블한 트랙들 사이사이에 앰비언트(Ambient) 기반의 “Holier”처럼 침잠된 분위기의 곡이 배치됐다. 덕분에 몽환적인 분위기를 강조한 신스와 로파이(Lo-Fi)한 질감의 믹싱으로 일관성이 느껴지는 가운데서도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어 역동성이 느껴진다. “Contact”와 “Fooley”, “Raven”과 “Bruises”처럼 트랙 사이를 자연스럽게 이은 지점도 특기할 만하다. 마치 잘 짜인 DJ 셋처럼 유기적으로 흘러간다.
케이트라나다(KAYTRANADA)가 참여한 댄스홀 트랙 “On The Run”, 곳곳에서 파티가 열리는 새벽의 열기를 표현한 드럼앤베이스 넘버 “Contact”, 두터운 신시사이저로 미니멀하게 시작되어 점점 여러 질감이 악기들이 중첩되다가 후반부에 이르러 베이스라인, 신스, 하이햇이 어지럽게 난장을 펼치는 “Raven”은 앨범의 기조를 대표하는 완성도 높은 트랙이다. 여기에 하모니와 여백이 강조된 유려한 멜로디 라인이 얹혀 소울풀한 기운이 살아났다.
앨범의 주제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사랑에 대한 갈망이다. 안개로 둘러싸인 물가를 표류하는 모습을 묘사한 첫 번째 트랙 “Washed Away”는 이러한 감정의 비유다.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고(“Missed Call”), 음악 속에 몸을 맡겨 외로움을 잊어 보려고 하지만(“Contact”), 결국 닿지 못하고 가라앉아버리고 만다(“Divorce”). 다이버의 레이더가 끊기는 듯한 소리를 묘사한 “Divorce”의 후주는 사랑을 찾지 못한 절망적인 심정을 대변하는 듯하다.
이어지는 “Enough for Love”에서는 이뤄지지 않은 사랑과 연인에 대한 심정을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Washed Away”를 변주한 마지막 트랙 “Far Away”는 수미상관의 형식으로 앨범을 마무리하며 표류가 끝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신호가 끊긴 듯이 보였지만, 멈추지 않고 나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앨범의 사운드와 내러티브를 모두 아우르는 적절한 마무리다.
앨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가사는 ‘far away’다. 케레라가 지난 7년간 느꼈던 고독함과 고립감을 함축하는 어휘다. 그는 저 먼 곳에 있어서 손이 닿지 않는 ‘무언가’를 추구하며 느리지만 끊임없이 헤엄쳐 나간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러한 노력은 결국 [Raven]이라는 걸출한 작품으로 이어졌다. 바다를 유영하는 듯한 사운드 구성과 연출, 그리고 주제 의식이 완벽한 퍼즐처럼 들어맞는 한 폭의 유려한 그림 같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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