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외 리뷰] Yeat - 2093
- rhythmer | 2024-05-09 | 30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
Artist: Yeat
Album: 2093
Released: 2024-02-16
Rating:
Reviewer: 강일권
때때로 사람들은 부정적이고 어두운 것에 매혹된다. 역유토피아를 그린 예술 작품처럼. 래퍼이자 프로듀서 이트(Yeat)의 [2093]은 디스토피아 사회를 주제 삼아 힙합의 경계를 확장하고 시험하는 앨범이다. 음악은 레이지(Rage), 트랩(Trap), 인더스트리얼 힙합, 일렉트로-인더스트리얼을 넘나든다. 공기를 찢고 지나가듯 현란한 리듬과 일그러진 사운드가 신경을 옭아매고, 랩은 지배계층의 비밀암호처럼 은밀하게 퍼져나간다.이트가 인도하는 새로운 차원을 뒤덮은 곡들에선 아티스트의 초현실주의적 성향이 짙게 묻어난다. 수록곡 대부분은 혁신적이고 급진적이며 도발적이다. “Power Trip”을 들어보자. 이 곡에선 총 세 번의 비트 변주가 발생한다. 산성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 속 미래도시의 밤거리를 연상케 하는 초반부에 이어 인더스트리얼 힙합 사운드가 스모그처럼 깔리더니 목가적인 음악으로 마무리된다.
이 외에도 둔탁한 드럼과 짓눌린 신스의 환상적인 상호작용을 비롯하여 장중하게 연출된 프로덕션이 훌륭한 첫 곡 “Psycho CEO”, 잡음과 전자음이 농밀하게 조합된 상태에서 끊임없이 비트의 단절을 경험하게 하는 “ILUV”, 리듬 파트부터 샘플 소스까지 금방이라도 깨질 것처럼 위태롭게 전개되며 긴장감을 형성하는 “Keep Pushin”, 곡 자체가 현혹될 만큼 강력한 사운드 폐기물 덩어리인 “2093” 등등, 기존의 안일하고 개성이 몰살된 레이지와 메인스트림 힙합 음악에 경종을 울릴만한 곡이 그득하다.
[2093]의 미래지향적 컨셉을 대변하는 두 개의 장엄한 스코어 “If We Being Rëal”에서 “1093”으로 이어지는 마무리도 더할 나위 없다. 특히 “1093”은 거칠고 지저분한 사운드와 서정적 무드를 병치하여 주조한 프로덕션이 미묘한 감흥을 끌어낸다. 앨범엔 릴 웨인(Lil Wayne), 퓨쳐(Future), 드레이크(Drake) 등의 랩스타가 피처링했으나 무엇보다 귀를 사로잡는 건 압도적인 프로덕션과 개성 있는 이트의 퍼포먼스다.
유일하게 아쉬운 건 가사다. 이트는 본인을 다른 행성으로부터 온 외계인처럼 묘사해 왔다. 이번 앨범에서도 "Nothing Changë"를 통해 ‘현실을 느끼고 싶고, 평범한 인간과 같이 느끼고 싶어.’라고 말하듯이 남다른 정체성을 내세운다. 그리고 [2093]은 AI와 로봇이 화두인 현시점에서 붕괴 직전에 이른 듯 암울한 미래 세계를 얘기한다. 그러나 이트의 가사는 거창한 세계관과 작가적 야심을 따라가지 못했다.
일단 의도는 신선하다. 그는 여느 래퍼들처럼 평범한 자기과시에서 탈피하여 범우주적인 방식으로 스케일을 키웠다. 일례로 사악한 지배계층(CEO)에 빙의한 시점으로 이야길 전개하며 절대적인 통제력과 힘을 드러내는가 하면(“Psycho CEO”), 무려 지구를 샀다가 팔아치우기도 한다(“Bought The Earth”). 하지만 그 안을 채운 라인들이 단순하고 소모적인 탓에 아이러니하게도 평범한 과시로 귀결되었다.
만약 가사까지 탁월했다면, [2093]은 2020년대 힙합 명작이 되었을 것이다. 그만큼 가사를 제외한 다른 요소가 매우 훌륭하다. 이트의 미지를 향한 탐구 정신과 다재다능함이 만들어낸 결과다. 더불어 이트의 독특한 스타일과 음악적 신념을 엿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공간에서 랩 음악의 또 다른 미래를 연 이트의 음악은 우리가 기대한 것 이상을 들려주었다.
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