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외 리뷰] $uicideboy$ - Thy Kingdom Come
- rhythmer | 2025-08-18 | 7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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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uicideboy$
Album: Thy Kingdom Come
Released: 2025-08-01
Rating:
Reviewer: 강일권
이제 래퍼들도 “나는 아프다”라고 고백하는 새로운 힙합의 시대가 열렸다. 이모 랩으로 대표되는 일부 래퍼들은 삶의 밑바닥 경험과 정신적 위기를 그대로 토해내며 청년 세대가 직면한 우울과 자기 파괴적 충동을 대변했다. 주류 힙합이 성공과 부, 자기과시의 서사로 채워질 때 그들은 나약함과 허무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리고 이 같은 흐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 수어사이드보이즈($uicideboy$)는 매우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두 멤버 루비 다 체리(Ruby da Cherry)와 스크림($crim)은 이모 래퍼들이 선보여온 우울증, 자기혐오, 약물 중독, 자살 충동 같은 어두운 주제의 극단을 보여주지만, 프로덕션은 남부 힙합, 특히 90년대 멤피스 랩의 유산을 이어받았다. 여기에 트랩, 퐁크(Phonk), 클라우드 랩, 호러코어, 이모 랩의 특성을 접목하여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 그만큼 듀오의 음악 속에선 여러 감정선과 에너지가 끊임없이 충돌한다. 수어사이드보이즈의 음악을 듣는 건 마치 허무, 절망, 염세의 심연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다.
다섯 번째 정규 앨범 [Thy Kingdom Come]에서도 루비와 스크림은 지하를 걷고 있다. 제목을 비롯하여 앨범 곳곳에 배치된 종교적 어휘가 눈에 띄지만, 듀오가 온전한 신앙의 언어로 번역했을 리 만무하다. 그들은 이번에도 바닥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은 허무주의와 자기파괴의 서사 속으로 끌어들인다. "Self-Inflicted”와 "Now and at the Hour of Our Death" 같은 제목의 곡을 보라. 피처링도 본즈(BONES)와 나이트 로벨(Night Lovell)처럼 비슷한 정서적 뿌리를 공유하는 동료를 초빙했다. 이 둘은 단순한 이름값을 넘어 톤과 가사적으로 수어사이드보이즈와의 정서적인 고저를 형성하여 더욱 흥미롭다.
무엇보다 탁월한 건 프로덕션이다. 전곡을 책임진 스크림(aka Budd Dwyer)은 지역성과 장르 혼합을 교묘하게 조율한다. 이번에도 멤피스 랩에 근간을 두었지만, 트랙별로 질감과 리듬의 방향성이 뚜렷하게 갈라졌다. 역설이 담긴 제목으로 앨범의 성격을 단번에 제시하는 첫 곡 "Count Your Blessings"부터 사운드의 온도차가 선명하다. 이른바 멤피스 랩 리바이벌에서 비롯한 습기와 저음은 여전하나 퐁크가 스치는 리듬부에 생성된 공간감이 전작보다 확연히 넓어졌다. 장르를 섞고 곡을 구성하는 지점 또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Napoleon”도 대표적이다. 듀오의 고향에서 탄생한 바운스 뮤직을 샘플링(Big Freedia “Gin in My System”)하여 그들의 카탈로그 안에서 보기 드문 익살과 역동성을 만들어낸다. 자칫하면 기존의 무드를 깨는 난입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보통의 파티 찬가가 아닌, 냉소와 자조를 동력으로 삼는 듀오만의 톤이 유지되어 의외성과 개연성을 동시에 획득한다.
그런가 하면 “Full of Grace (I Refuse to Tend My Own Grave)”는 본 떡스 앤 하모니(Bone Thugs-N-Harmony), 알앤비, 멤피스 랩의 공기가 한 호흡으로 섞였으며, 마지막 곡 “Monochromatic”은 클라우드 랩과 이모 랩의 몽롱함을 끌어와 보컬을 전면에 두었다. 특히 자살충동과 허무주의를 은총의 이미지로 포장한 “Full of Grace (I Refuse to Tend My Own Grave)”는 한없이 침잠하는 내면을 멜로디화한 듯한 “Oh, What a Wretched Man I Am!”과 함께 앨범에서 가장 감정적인 순간을 선사한다.
[Thy Kingdom Come]은 수어사이드보이즈의 커리어에서 가장 인상적이며 멤피스 랩의 창의적 재해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다만 그들의 앨범을 감상할 때면 매번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다. 랩, 가사, 프로덕션이 어우러져서 자아내는 특유의 무드에 심취하다가도 육체적, 정서적 붕괴와 재구축을 반복하는 인간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음악으로서 즐긴다는 점이 모순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Thy Kingdom Come] 역시 그들이 만든 미학적 틀에 대한 감탄과 그들이 쏟아내는 자기파괴 서사를 무기력하게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불편함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게 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부분이 듀오의 음악을 돋보이게 하는 강점이니 가혹한 역설이 따로 없다. 체념과 냉소의 언어로 번역한 약 29분 동안의 기도가 귓속에 잔향처럼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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