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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리뷰] 발하쉬 - 해리절감
    rhythmer | 2026-09-05 | 7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Artist: 발하쉬(VALHASH)
    Album: 해리절감
    Released: 2026-07-30
    Rating:
    Reviewer: 강일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아티스트에게 음악은 종종 표현의 수단이기 전에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이 된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신작을 만들고 거의 반응이 없는 플랫폼에 곡을 올리며, 평가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다음 작업으로 넘어간다. 그러니까 주류의 바깥에 있다는 것은 자신의 음악이 어디에 도달하고 있는지 알 수 없고, 아티스트로서의 존재마저 혼자 확인해야 하는 상태에 가깝다.

    발하쉬의 두 번째 정규 앨범 [해리절감]은 바로 그 불확실성에서 출발한다. 앨범에서 발하쉬는 끊임없이 자신이 누구인지 묻지만 좀처럼 하나의 답에 도달하지 못한다. 세상을 향한 분노와 타인을 향한 적대감, 성공에 대한 욕망과 평가에 대한 반감, 자기 확신과 자기혐오가 한 사람 안에서 번갈아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음악을 통해 자신을 설명하려 하지만, 아티스트라는 정체성조차 때로는 또 하나의 가면처럼 느끼는 듯하다.

    그래서 [해리절감] 속의 거친 언어와 불안정한 형식에는 단순히 정돈되지 않은 표현 이상의 것이 담겨 있다. 아직 자신의 자리를 얻지 못한 아티스트가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과 자기를 이해하기 어려운 상태를 동시에 견디며 남긴 기록이다. 음악은 그를 구원하지도, 혼란을 깨끗하게 정리해주지도 않는다. 다만 흩어진 감정과 인격을 한곳에 붙잡아둔다. 이번 앨범은 그렇게 흩어진 자신을 음악 안에 붙잡아두려는 불완전한 봉합의 과정처럼 다가온다.

    총 16곡이 흐르는 동안 서로 다른 감정과 기억의 조각들이 끊임없이 모습을 바꿔가며 등장한다. 불쑥 과거가 튀어나오는가 하면, 돈 이야기가 등장했다가 사회와 씬에 대한 혐오로 넘어가기도 한다. 그러다 다시 자신을 향한 자조와 관계에서 비롯된 불안으로 되돌아간다. 음악이 자기표현인 동시에 자기탐색이 되는 순간이다. 이렇듯 앨범 전체에 퍼진 정리되지 않은 감정은 [해리절감]을 움직이는 힘으로 작용한다.

    2번 트랙 “해리”에서의 ‘누군지 모르겠어 내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된 혼란은 앨범 전체를 관통하고, “숨막혀”에서는 같은 외침의 반복을 통해 그 불안이 신체적인 감각으로 변한다. 특히 그 혼란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선다. 예컨대 “시초”에서는 사회를 뒤덮은 혐오를 바라보다가 ‘나 또한 다를 바 없는 놈’이라며 자신에게 시선을 돌린다. “암파인”에서는 괜찮다고 되뇌는 말과 그 아래에서 계속 흔들리는 감정 사이의 간극을 드러낸다. 그리고 “거짓”에 이르면 앞선 공격성 아래 감춰져 있던 취약한 감정이 모습을 드러낸다.

    발하쉬의 래핑은 이러한 혼란을 그대로 전달하는 쪽에 가깝다. 정교하게 짜인 플로우를 과시하기보다 곡이 내포한 감정에 따라 랩의 속도와 강약, 호흡을 바꾸며 전개해 나간다. 때로는 거칠게 뱉고 때로는 힘을 빼며 중얼거리듯 이어가는가 하면, 때로는 멜로디를 얹는 방식을 차용하기도 한다. 한 가지 톤으로 정돈되지 않은 랩 스타일 덕분에 가사 속 불안정한 감정의 결이 더욱 생생하게 전해진다. 발하쉬는 랩을 통해 감정의 온도를 바꾸는 데 능숙한 래퍼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다. 사회를 향한 분노가 때로는 감정의 크기를 드러내는 데 그치기도 한다. 그 분노가 포착한 현실의 구체적인 모습까지는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다. 솔직한 감정이라고 해서 언제나 가슴에 와닿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자신의 감정과 정체성으로부터 스스로가 분리된 듯한 상태를 덤덤하게 표현한 “해리”에 이어 갑작스럽게 분노를 터뜨리는 “룩인 룩어라운드”로 넘어가는 대목은 다소 어색하게 느껴진다. 가사뿐 아니라 래핑에서도 그 감정의 변화가 충분히 쌓이기 전에 초반부터 강한 에너지가 앞선 탓이다.

    아티스트가 의도한 바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은 생소한 아티스트의 감정을 듣는 입장에서는 분노가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무엇을 향하는지 한 번 더 들여다볼 수 있는 구체적인 단서가 필요한 순간도 있다. 넓은 감정의 폭 사이를 이어주는 과정이 조금 더 섬세했다면, 이 구간에서 느껴지는 혼란이 보다 설득력 있게 다가왔을 것이다.

    [해리절감] 속의 거친 언어는 결국 자신을 숨기기 위한 방어와 자신을 드러내려는 욕망 사이에서 발생한다. 발하쉬는 화가 나면 화가 난 대로 비틀린 감정은 비틀린 대로 꺼내놓는다. 그래서 때로는 거칠고 투박하게 들리지만, 그 투박함 자체가 [해리절감]의 표정처럼 느껴진다. 감정을 섣불리 미학화하지 않는 것. 이 앨범에서 가장 돋보이는 지점 중 하나다.

    이러한 랩과 가사가 힘을 얻는 데에는 발하쉬가 직접 구축한 프로덕션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해리절감]의 프로덕션은 트랩부터 전위적인 힙합과 실험적인 재즈, 그리고 인터넷 랩 세대 특유의 공허하며 불안정한 정서의 사운드까지 폭넓게 끌어안았다. 장르적 경계를 오가는 여러 요소가 한데 뒤섞이면서도 그 중심에는 자신의 감정을 소리로 옮기려는 일관된 태도가 자리한다.

    일례로 “개복치”에서의 반복되는 루프와 오묘한 무드는 하나의 정서에 오래 머무는 듯한 감각을 만들어내고, “채널 넘기기”에서는 서로 다른 장르의 질감과 아이디어가 교차하며 앨범의 실험적인 성격을 확장한다. “뮤직이즈낫포유”처럼 비어 있는 공간을 남긴 곡에서는 발하쉬의 랩 역시 매끈하게 다듬어진 퍼포먼스보다 감정을 즉각적으로 배설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특히 몇몇 곡에서 랩의 호흡이나 반복되는 구절을 사운드의 반복과 함께 배치하는 방식은 아티스트만의 음악적 언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느껴져 흥미롭다.

    다만 이 방식이 늘 장점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 스타일과 무드를 자유롭게 오가는 만큼 하나의 아이디어가 충분히 발전하기 전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듯한 인상을 주는 곡들도 있다. 여기에는 곡의 배치 문제도 한몫한다. "이십일" - "그때" - "사실 넌 변한 적 없지" 구간은 대표적이다. 음악 스타일과 무드 면에서 지금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십일"과 "사실 넌 변한 적 없지" 사이에 가사와 프로덕션 전부 이질적인 "그때"가 배치되어 감흥을 흐트러뜨린다. 앨범을 지배하는 거친 사운드 역시 전반적으로는 의도된 날것의 미학으로 들리지만, 조금 더 다듬었어야 할 부분과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이 공존한다.

    그럼에도 이 앨범의 프로덕션은 발하쉬의 음악적 방향성을 짐작하게 하는 중요한 단서다. 기술을 과시하기 위한 비트를 쌓기보다 자신의 랩과 감정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을 창조한다. 그래서 [해리절감]의 프로덕션은 가사와 랩 안에 담긴 감정을 온전히 끌어안는 또 하나의 표현이라 할만하다. 거칠고 불안정한 감정이 머물 자리를 직접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그의 프로덕션 역시 앨범의 정서와 닮아 있다.

    마지막 곡 “뭘 할 수”에 이르면 처음 던졌던 질문은 조금 다른 형태로 바뀐다. ‘나는 누구인가’를 묻던 그는 이제 ‘너는 뭘 할 수 있니’라고 묻는다. 그렇다고 명확한 답은 주어지지 않는다. 과거와는 달라졌다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면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서 있는 듯한 감각만이 남았다. 그런데 이 미완의 결말이야말로 [해리절감]에 어울리는 마무리다. 이 앨범은 완성된 자신을 보여주기보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 자체를 따라가고 있으니까.

    그래서 마지막에 남겨진 질문은 결핍으로 끝나지 않고 다음을 향한 여백으로 남는다. 발하쉬가 과연 이 혼란과 의문을 앞으로 어떤 방식을 통해 풀어갈 것인가. [해리절감]은 그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를 충분히 기대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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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mments
      1. wwa (2026-09-06 00:38:16, 119.193.36.***)
      2. 이런게 리드머의 순기능인듯 반타01이어서 간만에 취향노래를 찾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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