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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리뷰] 나플라 - instinct
    rhythmer | 2026-09-08 | 20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Artist: 나플라
    Album: instinct
    Released: 2026-08-26
    Rating:
    Reviewer: 강일권









    낯설지만 매력적인 억양, 박자의 틈을 위협적으로 파고드는 플로우, 씬에 막 모습을 드러냈음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할 만큼 위엄서린 자기과시까지, 나플라(nafla)는 데뷔했을 때 이미 완성된 기량을 갖춘 래퍼처럼 보였다. 마치 은둔해있던 젊은 고수가 운명에 이끌려 비로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듯했다. 나플라의 이름에는 그렇게 재능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붙었다.

    그 뒤로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둘러싼 맥락도 달라졌다. 이제 나플라를 이야기하며 병역 논란과 재판, 수감과 사회봉사 같은 단어를 건너뛰기는 어렵다. 한때는 랩만으로 자신을 증명하면 됐던 아티스트가 음악 바깥에서 내린 선택까지 함께 감당해야 하는 위치에 놓인 것이다. 삶과 음악을 완전히 떼어놓기 어려운 힙합에서는 더욱 그렇다. 특히 진짜와 가짜를 끊임없이 가르고 자신의 태도를 정체성의 일부로 삼아온 래퍼라면, 둘 사이의 경계는 더욱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나플라가 새 앨범의 제목으로 내세운 것은 ‘본능’이다. 과거의 그를 떠올리면 꽤 자연스럽다. 생각하기 전에 박자를 타고 계산하기 전에 랩을 뱉으며, 남의 시선보다 자신의 감각을 먼저 믿는 것. 실제로 앨범에서는 한때 우리가 알던 나플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붐뱁과 LA의 공기, 대마와 돈의 이미지, 헤이터를 향한 조롱, 랩 실력에 대한 확신까지 익숙한 재료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익숙한 자리로 돌아갈 수는 있어도 그 자리를 비운 시간까지 지울 수는 없다. 예전의 나플라에게 본능이 재능과 자신감의 다른 이름이었다면, 지금의 나플라에게는 선택과 책임, 회피와 생존까지 아우르는 훨씬 복잡한 의미가 되었다. 어쩌면 그는 [instinct]에서 그동안 자신에게 벌어진 일과 그 시간을 통과하며 생긴 변화까지 풀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가장 잘하던 방식과 가장 익숙한 감각으로 돌아가는 쪽을 선택했다.

    앨범을 관통하는 뚜렷한 서사가 있는 것은 아니다. 대신 여러 곡에서 공통적으로 반복되는 이미지가 눈에 띈다. 나플라는 랩을 생각이나 메시지보다 몸의 반응에 가까운 것으로 묘사한다. 예컨대 “lungs”에서는 호흡과 폐를, “adrenaline”에서는 아드레날린과 식욕을, 다른 몇몇 곡에서는 술과 연기, 취기를 끌어오며 랩을 먼저 느끼고 움직이는 감각으로 표현했다.

    그런 의미에서 “intro: home”은 짧지만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말을 배울 때는 먼저 그 소리를 잘 듣고, 그 다음에는 그 소리를 똑바로 내야 합니다.’라는 오래된 음성은 이후 “faded”, “pata”, “attitude” 등등, 여러 곡에서 드러나는 나플라의 랩에 대한 태도를 암시한다. ‘home’이라는 제목까지 고려하면 이번 앨범에서의 집은 단순히 한국이나 LA 같은 장소라기보다 나플라가 처음 랩을 익혔던 소리와 리듬, 발음과 태도를 가리키는 듯하다.

    그러니까 [instinct]는 오래전부터 자신을 만들어온 랩의 방식과 감각을 다시 꺼내 든 작품에 가깝다. 나플라가 여기서 증명하려는 것은 새로워진 자신이 아니다.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래퍼로서의 능력이다. 그가 씬에서 사라진 동안 무엇이 바뀌었든, 비트가 주어지면 다시 예전처럼 랩을 뱉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앨범 곳곳을 채운다.

    바로 그래서 가사에 대한 아쉬움도 커진다. 나플라는 “shot with me”의 ‘사회봉사, 닦아 접시’, ‘잃은 게 많아, 쏟았어 변호사비’, “attitude”의 ‘수갑 찼을 때 배워 차가운 현실’처럼 병역 논란과 그 이후의 시간을 연상시키는 경험을 가사 안으로 끌어온다. 그런데 이 경험들은 그가 얼마나 많은 것을 잃고 견뎌냈는지를 강조하는 장치로만 활용되었다. 자신이 어떤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이 무엇을 남겼는지 돌아보는 계기는 엿볼 수 없다.

    물론 그가 앨범에서 병역 문제를 해명하거나 사과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음악이 반성문의 역할까지 떠맡을 필요는 없으니까. 다만 자신의 삶에서 가장 큰 균열 가운데 하나를 직접 가사에 옮겨왔다면, 그 시간이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어떤 변화를 남겼는지까지 드러낼 필요가 있었다.

    이런 아쉬움은 그가 앨범 내내 ‘진짜’라는 가치를 강조하기 때문에 더욱 두드러진다. ‘진짜를 그리워했니?’라고 묻고(“plur”), ‘realler than ever’라는 선언까지 내놓는가 하면(“adrenaline”), 다른 래퍼들은 가짜이고 그저 유행을 좇으며, 실력조차 자신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공격한다. 배틀 랩에서는 익숙한 언어다. 하지만 지금의 그가 다시 진정성을 논한다면, 한 번쯤 그 기준을 자기 자신에게도 돌려볼 여지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만약 타인의 가짜를 그토록 예민하게 감지해온 아티스트가 자신의 모순까지 바라봤다면, [instinct]에서의 자기 과시는 훨씬 복잡하고 흥미로운 의미를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앨범은 그러한 질문이 생길 때마다 ‘I don't give a fuck’, ‘내가 꼴리는 대로’ 같은 익숙한 태도로 되돌아간다.

    심지어 그가 자신하는 자기과시와 배틀 랩의 언어마저 예전만큼 날카롭지 않다. 예컨대 '난 위험해 like a cocaine'("lungs"), '너네들은 망했어 / 마치 윈도우 업데이트'("pata"), '유행이 지난 너의 / 스타일은 like 숀리'("92 wave")처럼 즉각적인 재미를 노리는 비유가 발상의 신선함이나 표현을 비트는 재치까지 이어지지 못한 경우가 많다. 더불어 종종 사용된 비속어 표현 역시 공격적인 에너지를 만드는 순간보다 마디 사이를 채우는 습관처럼 느껴지곤 한다.

    더 뼈아픈 것은 나플라가 가장 확실한 무기로 여겨온 플로우에서도 예전 같은 압도감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창 때의 나플라는 단순한 루프 위에서도 악센트와 음절 배치를 변주하여 흐름이 단조롭게 들리지 않게 하거나 정석적으로 비트를 밟아가더라도 빈틈없는 플로우로 상당한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래퍼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익숙한 억양과 단조로운 리듬 패턴에 기대는 순간이 눈에 띈다.

    특히 "tops", "lungs", "bad problem"처럼 짧은 구호를 반복하는 후렴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더욱 확연하다. 과거의 나플라가 단순한 비트 위에서도 랩의 정보량을 높이는 쪽이었다면, 이번에는 오히려 랩의 정보량을 줄여 비트의 반복에 몸을 맡기는 순간이 많다. 그러한 사실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다만 감흥을 떨어뜨린다면 문제가 된다.

    프로덕션 역시 전반적으로 앨범이 설정한 귀환의 방향과 맞물린다. 새로운 스타일을 탐색하기보다 나플라가 가장 익숙하게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복원한 느낌이다. 묵직한 베이스와 건조한 드럼, 짧게 순환하는 루프와 넓게 비워둔 보컬 공간이 중심을 이룬 비트가 지배적이다. 앨범의 흐름은 대략 세 구간으로 나뉜다.

    초반부는 저음과 반복적인 후렴을 강조한 공격적인 클럽 사운드에 가깝다. 특히 “lungs”와 “bad problem”은 빠른 템포와 단순한 구호형 후렴구를 통해 음악을 신체적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이후 "faded"와 "attitude"에서는 붐뱁으로 중심이 이동하며, 느슨하고 나른한 트랩 그루브의 “plur”를 지나 “adrenaline”과 “92 wave”에서 다시 전통적인 랩 배틀의 무대로 돌아간다.

    가장 돋보이는 곡은 “plur”다. 느긋한 808 드럼과 부드럽게 가라앉은 신스, 따뜻한 무드를 자아내는 멜로디 라인이 어우러져서 ‘chill’, ‘파사데나(Pasadena)’, ‘야자수’, ‘드라이브스루’ 같은 가사의 공간적 이미지를 뚜렷하게 만들어낸다. 특히 나플라의 LA 정체성을 말로 주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유로운 웨스트코스트 힙합풍의 그루브로 체감하게 한다. 나플라가 말하는 ‘집’이 물리적인 장소인 동시에 특정한 억양과 리듬의 기억이라는 사실도 이 곡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처음부터 조성된 긴장감이 끝까지 이어지는 “attitude”도 인상적이다. 1990년대 이스트코스트 힙합의 질감을 고스란히 구현한 동시에 나플라의 랩에 가장 필요한 것이 정확한 리듬의 틀이라는 점을 이해한 비트다. 다만 이외의 수록곡 대부분은 만족스럽지 않다. 곡마다 템포와 서브 장르의 인상은 달라져도 편곡이 움직이는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데, 나플라의 평면적인 래핑과도 시너지를 내지 못하다 보니 좀처럼 인상적인 순간을 찾기 어렵다.

    예컨대 “bad problem”의 빠른 템포와 어두운 저음은 처음에는 즉각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내지만, 반복하는 후렴구와 버스(Verse)가 리듬이나 보컬 운용에서 뚜렷한 대비를 만들지 못해 곡이 진행될수록 단조롭게 들린다. 앨범의 적재적소에서 중심을 잡아주었어야 할 붐뱁 트랙들 또한 특별히 귀에 남는 루프나 구성을 엿볼 수 없어 아쉽다.

    [instinct]에서 나플라가 증명하려는 것은 분명하다. 그는 여전히 랩 하는 것을 즐기며, 남들이 뭐라고 하든 마이크 앞에서는 자신이 가장 뛰어나다고 선언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만큼 제목에 충실한 앨범도 드물다. 쓰러진 뒤 다시 일어나 가장 익숙한 감각에 몸을 맡긴다는 점에서 표면적으로는 나플라다운 복귀작이기도 하다.

    하지만 삶에서 큰 굴곡을 겪었음에도 가사적으로 그 경험을 충분히 파고들지 못한 채, 이전의 랩 방식과 자신감을 다시 꺼내 드는 데만 집중했다는 점은 그와 작품 모두의 한계로 다가온다. 더구나 그 시도마저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았으며, 랩에서조차 자연스럽게 발휘했던 긴장감을 되찾지 못했다. 프로덕션의 완성도가 지금보다 나았다고 해도 이 같은 단점을 상쇄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많은 이를 놀라게 한 “Wu” 이후 한동안, 나플라는 자신이 얼마나 뛰어난 래퍼인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몇 마디만 들어봐도 쉽게 알 수 있었으니까. 반대로 [instinct]의 나플라는 자신이 여전히 잘하고 진짜이며,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호소한다. 그러나 그 반복이 쌓일수록 역설적으로 과거와 현재 사이의 거리만 더욱 선명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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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mments
      1. sinjerm (2026-09-08 20:41:07, 211.234.194.**)
      2. 반타부터 시작해서 요새 리드머 씹호감이면 개추 ㅋㅋ
      1. 비관 (2026-09-08 17:47:12, 115.90.194.***)
      2. 나폴리에 대한 애증이 느껴지는 평론이군요
        합리적인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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