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리뷰] 담예 - 가장 얇은 가죽
- rhythmer | 2026-09-30 | 8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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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담예
Album: 가장 얇은 가죽
Released: 2026-08-28
Rating:



Reviewer: 강일권
사람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걸치고 산다. 옷 위로 표정과 말투가 포개지고, 취향과 태도 역시 어느새 자신을 설명하는 일부가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얼굴 뒤에는 좀처럼 드러내고 싶지 않은 마음도 남는다. 이를테면 별것 아닌 척 넘겼지만 오래 신경 쓰였던 말이나 괜히 더 멋있어 보이고 싶어서 부풀렸던 언행처럼 이상하게 본인만 잘 기억하는 것들이다.
담예(Damye)의 [가장 얇은 가죽]은 몸에 붙은 이런 겹들을 하나씩 더듬어보는 앨범으로 다가온다. 외모에서 출발한 시선은 취향과 허세, 불안과 사랑받고 싶은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번져간다. 그렇다고 분위기가 지나치게 무거워지지는 않는다. 담예는 그 속을 한참 들여다보다가도 슬쩍 웃어넘기는가 하면, 남이 건드리기 전에 먼저 자신을 놀려버리며 감정의 무게를 한 번 비틀어 놓는다. 이렇게 선수를 치면 상처도 조금 덜 아픈 법이다.
음악도 이런 성격을 닮았다. 담예의 중요한 음악적 뿌리인 알앤비/소울을 중심으로 기타 중심의 인디 팝과 포크, 사이키델릭 록, 힙합, 펑크(Funk)의 요소가 느슨하게 얽힌다. 그 위에서 담예는 힘을 적절히 덜어낸 보컬로 여러 장르 사이를 자연스럽게 오간다. 전작부터 이어온 특유의 창법에도 한층 여유가 붙으면서 곡의 흐름에 부드러운 굴곡이 생겼다.
이런 유연함은 여러 장르를 다루는 방식에서도 이어진다. 최근 얼터너티브 알앤비 주변부에서 익숙해진 혼합적 성향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담예는 각각의 요소를 자신의 감각 안에서 무리 없이 녹여냈다. 이는 담예라는 사람의 윤곽을 더듬게 하는 또 하나의 단서이기도 하다. [가장 얇은 가죽]의 감흥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어떤 장르를 얼마나 능숙하게 섞었는지 살피는 재미도 있지만, 서로 다른 음악적 취향과 모순된 감정이 한 사람의 얼굴로 모여드는 과정을 듣는 순간 이 앨범의 매력이 온전히 드러난다.
프로덕션적으로 앨범을 가장 단단하게 묶는 악기는 기타다. 도드라진 리프나 화려한 연주를 내세우기보다는 곡의 촉감을 만드는 데 집중한 느낌이다. 코드를 건드린 뒤 길게 남는 울림, 줄을 긁을 때 묻어나는 마찰감, 음 사이로 넉넉하게 열린 공간이 앨범 전반의 공기를 만든다. 드럼과 베이스 역시 여백을 살리며 목소리와 기타가 움직일 자리를 마련했다. 드럼과 베이스가 힘을 보태면 리듬에 자연스럽게 무게가 실리고, 편성이 간결해지는 순간에는 목소리와 기타 사이의 거리마저 음악의 일부가 된다.
“반골기질친구들”은 좋은 예다. 날것의 질감을 살린 기타와 느슨한 리듬 위로 랩과 노래의 경계를 오가는 보컬이 흐르고 겹겹이 쌓인 목소리가 그 사이를 채운다. 서로 다른 재료가 한꺼번에 움직이지만, 산만해지지 않고 오히려 담예 특유의 느슨하고 비틀린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귀에 남는 것은 장르를 다루는 담예의 태도다. 무엇을 들었는지보다 듣고 나서 어떻게 자기 것처럼 시치미를 떼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보컬 또한 이 사운드와 긴밀하게 맞물린다. 힘을 과하게 싣지 않은 채 말을 건네듯 멜로디를 흘리고 박자에 살짝 뒤로 기대며 레이드백(Laid-Back)한 리듬을 형성한다. 문장 끝을 가볍게 흘리는가 하면 노래와 랩, 대화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기도 한다. 음색의 변화 폭은 크지 않지만 억양과 호흡, 말의 속도를 달리하며 곡마다 미묘하게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런 보컬은 담예식 유머와 만날 때 더욱 생생해진다. 자신의 외모를 놀리다가 반골 기질을 과장하고, 느닷없이 연극적인 목소리를 끼워 넣는 순간조차 평소 말투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마치 자기 안에 있는 여러 모습을 조금씩 부풀려 노래 속으로 불러내는 듯하다. 그렇게 담예가 노래하는 방식은 그 말을 건네는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까지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다만 앨범의 약점도 이 일관된 태도에서 비롯된다. 강약의 폭을 크게 벌리지 않는 편곡과 비슷한 거리에서 들려오는 보컬, 기타가 중심을 잡는 사운드가 오래 이어지면서 개별 곡의 윤곽이 희미해지는 구간이 있다. 짧은 아이디어에 집중한 몇몇 트랙에서는 편곡이 한두 걸음 더 나아갔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반면 “not my spotify”와 “사기꾼 증후군”처럼 리듬 파트, 기타, 보컬이 정교하게 맞물리는 순간에는 여유로운 소리 안에서도 곡을 앞으로 끌고 가는 힘이 살아난다.
사운드에서 느껴진 가장 얇은 질감은 가사의 주제와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담예는 자신을 어떻게 보여줄지, 타인의 시선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되는지를 여러 곡에 걸쳐 되짚는다. 특히 좋은 아이가 되기 위해 말을 둥글게 만들고 감정을 한 겹 아래로 숨기는 모습은 남들에게 보이는 얼굴과 속마음 사이의 희미한 경계를 떠올리게 한다. ‘가장 얇은 가죽’은 그렇게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과 그 아래 감춰둔 마음 사이에 붙어 있는 얇은 막과도 같다.
담예는 이 같은 자의식을 특유의 자기풍자로 풀어냈다. 외모를 걱정하며 사진의 각도와 보정을 신경 쓰지만, 자신의 음악 취향만큼은 건드리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러면서도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쉽게 감추지 못한다. 그는 특별해지고 싶은 욕망 속에 숨은 모순부터 슬쩍 들춰낸 다음 취향을 자신을 설명하는 수단이자 자존심과 불안을 함께 감춰두는 장소로 바라본다. 그중에서도 음악은 담예가 가장 오래 붙들고 있는, 쉽게 벗겨지지 않는 피부 같은 것이다.
“반골기질친구들”은 그 모순을 가장 재치 있게 붙잡은 곡이다. 유행을 모른 척하고 ‘진짜’를 말하며, 남의 취향을 은근히 깎아내리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타인의 인정을 갈망한다. 취향으로 뭉친 공동체에서 꽤 자주 목격되는, 조금 민망해서 더 익숙한 풍경이다. 무엇보다 담예는 그 인물을 바깥에서 비웃는 대신 스스로 같은 무리 안에 들어간다. 덕분에 풍자는 특정한 취향의 사람들뿐 아니라 특별해지고 싶어 하는 자기 자신에게도 슬쩍 가해진다. 그렇게 특별함에 대한 욕망과 평범함이 계속 맞부딪치지만 어느 쪽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현실에서도 대체로 그렇다.
한편 앨범 후반으로 갈수록 질문의 초점은 달라진다. ‘나는 특별한 사람인가’에서 ‘나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인가’로. 그 변화를 가장 섬세하게 포착한 곡이 “사기꾼 증후군”이다. 상대의 여러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도 정작 자신을 향해서는 계속 주저하는 화자에게 ‘How do I look in your eyes?’라는 질문은 상대의 눈을 빌려 자신을 다시 바라보려는 고백에 가깝다.
프로덕션도 이 망설임을 차분하게 받쳐준다. 베이스와 기타는 불안을 부풀리지 않은 채 주변을 천천히 감싸고 힘을 뺀 보컬은 앞선 곡들의 능청스러움을 잠시 거둔 채 망설임을 길게 남긴다. 큰 클라이맥스 없이 감정이 서서히 깊어지는 연출이 인상적이며, 앨범 내내 꾸준히 쌓아온 절제와 자기 의심이 가장 조화롭게 만나는 순간이다.
이렇게 보면 앨범을 관통하는 감정은 자기혐오와 자기긍정 사이에서 계속 흔들린다. 담예는 자신을 특별한 사람으로 믿고 싶은 마음과 평범한 자신이 마주치는 순간을 오래 들여다본다. 남들과 다른 취향을 붙들거나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려는 행동도 결국 그 간극에서 생겨난다. 그리고 그 끝에서 남는 것은 특별하지 않고 불완전한 자신과도 함께 살아가는 일이다. “nakedinmy”는 이 흐름을 가장 직접적으로 정리한 곡이다.
[가장 얇은 가죽]에는 애써 자신을 멋지게 포장하기보다 평범하고 모순되며 쉽게 흔들리는 모습까지 음악 안으로 끌어들인 한 아티스트의 얼굴이 담겨있다. 담예는 그토록 복잡한 마음을 자신이 가장 잘 다루는 복합적인 사운드와 느슨한 보컬 안에 담아냈다. 그래서 이 앨범을 듣고 나면 세공된 이미지 뒤로 그의 성격과 결이 한층 또렷해진다. [가장 얇은 가죽]은 그렇게 폼을 덜 잡는 대신 사람을 조금 더 많이 남긴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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