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외 리뷰] Young Eman - Bine
- rhythmer | 2026-11-05 | 3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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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Young Eman
Album: BINE
Released: 2026-10-30
Rating:



Reviewer: 강일권
영국 래퍼 영 이만(Young Eman)이 스스로를 팝스타라 부르는 모습은 꽤 뻔뻔하다. 번쩍이는 무대나 호화로운 저택 대신 셰필드의 낡은 주택가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스타 행세를 한다. 2025년 발표한 “popstar in da bits”는 이런 허풍을 흥미로운 음악으로 바꿔놓은 곡이다. 능청스러운 랩과 기묘하게 뒤틀린 목소리, 한 번만 들어도 입에 맴도는 후렴이 어우러져 그의 허풍에 기꺼이 넘어가게 만든다. 그에게 팝스타란 성공한 뒤 얻는 칭호보다 당장 자기 입으로 선언할 수 있는 신분에 가깝다. 그리고 그 허세를 뒷받침할 만한 음악적 재능도 충분했다.
영국 힙합 씬은 UK 언더그라운드 랩을 중심으로 최근 몇 년 사이 빠르게 변모해왔다. 페이크밍크(Fakemink), 에스디키드(EsDeeKid), 피미게레로(Fimiguerrero) 등 젊은 래퍼들은 미국의 트랩과 레이지, 저크를 받아들이면서 영국 특유의 억양과 정서, 전자음악의 영향까지 녹여내 각자의 음악을 발전시켰다. 저크의 엇박을 강조하는 스네어와 잘게 쪼개진 드럼 패턴, 레이지의 거칠게 왜곡된 신시사이저와 묵직한 저음 등 서로 다른 스타일의 요소가 이들의 음악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인터넷을 통해 접한 폭넓은 음악을 자유롭게 흡수하고 장르의 경계를 거리낌 없이 넘나드는 태도 역시 공통적이다. 그중에서도 영 이만은 종잡을 수 없는 랩과 변칙적인 곡 구성으로 어수선하면서도 자꾸 귀가 가는 음악을 만들어낸다. 어린 시절부터 그라임(Grime)과 팝을 즐겨 들은 이만은 트래비스 스콧(Travis Scott)과 칸예 웨스트(Kanye West)는 물론 이머전 힙(Imogen Heap)과 비요크(Björk)에게서도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언뜻 공통점을 찾기 어려운 이름들이지만, 그의 음악을 들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16곡으로 이루어진 이만의 첫 공식 믹스테이프 [BINE]을 채운 프로덕션은 상당히 다채롭다. 거칠게 일그러진 808 베이스가 곡의 무게를 지탱하고 하이햇과 스네어가 쉴 새 없이 튀어 오르는 사이 높은 음역의 건반과 신시사이저가 멜로디를 만들어낸다. 특히 “geek up”, “idi”, “my rib”에서는 저크의 영향이 두드러진다. 강세를 엇갈리게 배치한 드럼과 연신 요동치며 쪼개지는 박자를 타고 변칙적인 랩이 더해지면서 음악은 한층 부산스러워진다. 이 과정에서 이만의 목소리는 또 하나의 타악기처럼 다가온다.
그런가 하면 “money & violence”와 “mazda”에서는 레이지의 강렬한 성향이 전면에 드러난다. 육중한 베이스와 날카로운 전자음이 강한 압박감을 만들어내고, 거칠게 내지르는 랩이 곡의 긴장감을 더욱 끌어올린다. “money & violence”는 단연 하이라이트다. 저음 위를 날렵하게 가로지르며 신시사이저가 만들어낸 멜로디와 억양 및 강세를 자유롭게 바꾸는 랩이 절묘하게 맞물리면서 짜릿한 쾌감을 안긴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사운드 속에서도 귀에 감기는 멜로디가 살아나는 지점은 영 이만의 음악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한편 그가 전자음을 다루는 방식은 “the end”, “ldncity”, “intoxication”로 이어지는 구간에서 절정을 이룬다. “the end”는 경보음처럼 솟구치는 신시사이저와 애상적인 보컬 멜로디가 묘한 대비를 이루는 곡이다. 후렴에서 목소리를 길게 끌어올리며 노래하던 이만은 묵직한 드럼이 몰아치기 시작하면 날 선 랩으로 돌아선다. 그렇게 간절히 호소하는 듯한 노래와 쏘아붙이는 랩이 교차하면서 처음의 애틋한 정서는 점차 격렬한 감정으로 번져간다. 그러다 마지막에 비트가 걷히고 신시사이저의 잔향만 남으면, 한바탕 소란이 지나간 자리에 쓸쓸한 여운이 감돈다.
“ldncity”는 기이하고 소란스러운 매력이 두드러진다. 그 어느 때보다 심하게 일그러지고 끊임없이 분절되는 가운데 절규하는 듯한 사운드효과가 어우러진 프로덕션은 마치 세상과의 단절을 자처하는 듯하다. 그런 비트에 끌려가듯 전개하는 이만의 래핑은 결국 파멸할 것을 알면서도 나아가는 것처럼 다가온다. 앨범에서 가장 강렬한 곡 중 하나다.
“intoxication” 역시 마찬가지다. 높은 음역의 전자음 사이로 길게 늘어지는 탄성과 짧은 구절을 외치는 목소리가 뒤엉키고, 잘게 끊기는 드럼과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추임새, 시종일관 귀를 괴롭히는 잡음까지 가세하면서 음악은 한바탕 소동처럼 흘러간다. 그런데 이 어수선한 소리들이 묘하게 귀에 감긴다. 이 세 곡을 나란히 듣고 나면 영 이만이 자신의 목소리를 얼마나 다채롭게 활용하는지 실감할 수 있다.
다양한 음악적 시도는 마지막 곡 “páris”에서도 이어진다. 현악과 관악의 조화를 연상시키는 신스가 웅장한 영화음악과도 같은 도입부부터 예사롭지 않다. 이만은 이 호화로운 비트를 배경으로 파리 패션위크와 자신의 성공을 의기양양하게 떠벌린다. 곧이어 공격적인 드릴식 드럼이 난입하고, 일그러진 저음과 날카로운 전자음이 뒤엉키면서 음악은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친다. 여기에 이만은 과장된 발성과 추임새로 소란을 보탠다. 파리의 호화로운 세계를 동경하는 래퍼의 허풍과 음악의 요란한 과장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이만에게는 서로 어울리지 않을 법한 소리들을 하나의 곡으로 엮어내는 감각과 그 과정 자체를 즐기는 장난기가 있다. 특히 자신의 목소리를 정말 잘 활용하는 래퍼다. 예컨대 “popstar in da bits”에서 그는 피치를 조절한 목소리로 엘린 드 생트 베로디아(Eline De Sainté Vherodia)라는 여성 페르소나를 등장시킨다. 작은 소동극처럼 펼쳐지는 이 곡을 들어보면, 이만에게 목소리란 음악 속 캐릭터를 연기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가사에서는 허풍과 불안이 묘하게 뒤섞인다. 자신의 죽음을 위장하고 세상에서 사라지는 상상을 펼치는 “how to fake your own death”부터 빠른 자동차와 밤의 유흥을 이야기하다가 문득 삶의 속도를 늦춰야겠다고 노래하는 “the end”에 이르기까지, 성공과 쾌락을 좇는 들뜬 태도 뒤로 피로와 불안이 언뜻 비친다.
이만은 이런 감정을 구구절절 털어놓기보다 요란한 음악과 엉뚱한 농담 사이에 슬쩍 흘려 놓는다. 한껏 허세를 부리다가 느닷없이 속내를 내비치는 모습에서 젊은 음악가의 치기와 솔직함이 함께 묻어난다. 스스로를 팝스타라 부르는 태도도 그 연장선이라 할 만하다. 과도한 자신감에 웃음이 나오다가도 그 허풍 속에서 성공을 향한 간절한 욕망과 아직 그곳에 이르지 못한 현실이 엿보여 적잖은 감흥을 자아낸다.
다만 소리를 빽빽하게 채워 넣은 프로덕션은 양면성이 있다. 저음과 드럼, 신시사이저와 보컬이 한꺼번에 쏟아질 때의 쾌감은 상당하지만, 때로는 지나치게 많은 소리가 서로의 매력을 가리기도 한다. 예컨대 “hydin park”에서는 복잡하게 얽힌 드럼이 독특한 리듬을 만들어내지만, 랩과의 호흡은 다소 어색하다. 그럼에도 많은 곡에서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뚜렷하다.
[BINE]은 영 이만이라는 신인의 재능뿐 아니라 오늘날 영국 힙합의 활력과 저력을 확인하게 하는 작품이다. 미국에서 건너온 새로운 음악적 경향을 자신들의 것으로 바꾸며 저마다의 개성을 키워가는 젊은 래퍼들 사이에서 그는 특히 눈여겨볼 만한 존재다. 아직은 넘치는 아이디어를 모두 꺼내놓는 데 열중하는 듯하지만, 그 과욕마저 즐겁게 들리는 순간이 많다.
무엇보다 이만은 자신이 만드는 음악을 누구보다 신나게 즐기는 듯하다. 셰필드의 낡은 주택가에서 팝스타를 자처하던 청년이 이제는 그 말을 농담으로만 듣기 어렵게 만들었다. 아직 왕관을 씌워주기는 이르지만, 적어도 그가 왜 그토록 자신만만한지는 알 것 같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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