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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외 리뷰] Evidence - Cats & Dogs
    rhythmer | 2011-09-30 | 14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Artist: Evidence
    Album: Cats & Dogs
    Released: 2011-09-27
    Rating: 
    Reviewer: 예동현









    나는 불과 얼마전까지만해도 미국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이 더는 이전과 같은 힘과 매력을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90년대에 대한 향수는 오마쥬를 넘어 진부한 클리셰로 변했으며,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계속 새로운 흐름과 실험이 진행된 메인스트림 힙합에 비해 오히려 언더그라운드가 정체되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다양한 실험과 창의적인 시도들, 수준 높은 완성도의 언더그라운드 앨범들이 쏟아지고 있으며, 단순한 ‘90년대 힙합의 재현’을 넘어서는 목적성을 가진 앨범들이 제법 쏟아져 나왔다.

    그 가운데 올해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최고 기대작 가운데 한 장이 발매되었다. 다이얼레이티드 피플스(Dialated Peoples)의 에비던스(Evidence)가 내놓는 두 번째 솔로 LP [Cats & Dogs]가 그것이다. 무엇보다 이 앨범이 흥미로운 건 그간 에비던스가 들려주었던 붐뱁(Boom Bap) 스타일의 음악이 내가 언더그라운드 힙합에 대한 의심을 가지게 된 이유에 상당한 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에비던스의 신작은 그간 언더그라운드에서 쏟아져 나온 비슷비슷한 작품들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이 앨범이야말로 90년대 힙합에 베이스를 두고도 그 시대와 현재 주류와는 다른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그런 앨범이다.

    이런 표현을 마지막으로 써본 것이 얼마만인지 가물가물하지만, 본작의 프로덕션은 타이트하다. 디제이 프리미어(DJ Premier)는 “You”를 통해 간만에 높은 이름값에 걸맞은 비트를 뽑아냈고, 알케미스트(The Alchemist)는 전성기를 연상시키는 묵직하고 긴장감 넘치는 비트를 뽑아냈다. 초반부에 다채롭고 소울풀한 비트들이 포진해있다면, 후반부에는 에비던스 특유의 무겁고 웅장한 슬로우 템포의 비트들이 무게감을 더한다. 프로덕션의 균형은 흠잡을 데 없으며 킬러 트랙들도 앨범 적재적소에 골고루 위치하고 있어서 긴 플레이시간 동안 청자의 집중력을 지속적으로 환기시킨다. 특히, 초반부의 킬러트랙 “Strangers”를 빚어낸 트위즈 더 비트 프로(Twiz The Beat Pro)와 앨범 후반의 하이라이트인 “To Be Comtinued...”를 그려낸 시드 로엄스(Sid Roams)의 공로는 앨범의 완성도에 대단한 비중을 차지한다.

    랩은 더 인상적이다. 미스터 슬로우플로우(Mr.Slow Flow)라는 별명처럼 느릿하지만, 매 구절을 단단하게 밟아가던 에비던스의 플로우는 이 앨범에 이르러 절정에 이르렀음을 과시한다.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토대로 고통과 고난 등의 주제를 담은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놓지만, 그 어조는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빠지거나 상황 그 자체에만 집착하지 않고 스스로 앞길을 개척해나가는 강인함과 자부심을 내포한다. 거기에 탄탄함을 바탕으로 강한 개성을 어필했던 그의 라이밍은 이제 화려함까지 갖추었다. 그의 발음은 더욱 또박또박해졌고 전체적인 플로우 디자인 역시 상당히 역동적으로 변했다. 새롭게 등장한 많은 랩퍼들이 ‘누구처럼‘ 랩하는 것에 비해 에비던스는 그 누구와도 다른 자신만의 매력을 지키면서 더욱 발전된 기량을 선보인다. 피처링 아티스트들의 활약도 인상적이다. 프로디지(Prodigy)는 출소 후 그가 뱉어낸 라임 가운데 가장 훌륭한 라임을 쏟아냈고, 패숀(Fashawn)을 비롯해 락 마르시아노(Roc Marciano)와 터매날러지(Termanology) 등 젊은 실력자들의 활약도 대단하다.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프로덕션과 아주 미묘한 불균형인데 전체적으로 좋은 라임들을 써냈지만, 최고의 비트 위에서는 예상 가능한 모습으로 일관한다는 점이다. 

    좋은 랩과 좋은 비트는 좋은 앨범이 탄생하는데 당연하게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이 앨범은 정확하게 그런 기대에 부합한다. 하지만 이 앨범의 더 큰 미덕은 자존심이다. 그는 팬들이 기억하는 좋은 시절의 ‘힙합’을 자신만의 분명한 색깔로 내놓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까지 제시했다. 이 앨범은 랩 게임에 대한 애정과 자신의 실력에 대한 믿음, 그리고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탄생한 수작이다. 탁월한 실력을 가졌지만, 너무 강한 개성을 가진 탓에 더 큰 발전은 기대하지 않았던 내게 에비던스의 이 앨범은 분명한 발전과 그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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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mments
      1. 조호재 (2011-11-07 14:35:20, 165.243.111.**)
      2. 최근 3개월 안에 들었던 앨범 중 가장 임팩트 있던 앨범!!!
      1. DeadMB5 (2011-10-22 04:24:33, 112.170.115.***)
      2. 요즘 프리모 감 떨어져서 욕 먹던데 You는 정말 쫄깃합니다. 올해 들은 최고의 힙합 비트 중 하나네요.
      1. 양지훈 (2011-10-05 23:21:11, 180.64.74.**)
      2. 노력한 흔적이 고스란히 보이는 앨범입니다.
        앨범 한 번 쭉 돌리고 나서 이런 느낌 받는 것도 오랜만이네요-
      1. co.wic (2011-10-03 06:51:53, 46.64.29.**)
      2. 근래 들어 다시금 '이름값에 비하면 조금 아쉽지만,' 같은 표현을 안 붙일 수 있는 프리모 결과물들이 나와서 행복합니다. you 정말 잘 들었어요.
        DP 팬임을 나름 자청하지만, 에비던스 랩은 사실 미묘한 느낌이었는데, 엄청 쫀득해졌네요 정말. 예동님 글 잘 봤사와요. :)
      1. Popeye (2011-10-01 02:43:32, 101.109.146.***)
      2. 존나개쩐다라는말밖에..^^
      1. vc231 (2011-10-01 00:33:01, 112.121.27.***)
      2. 허허 개인적으론 4.5 주고 싶습니다. 큰 틀을 벗어난건 아닌데 이렇게 식상하지 않고 짠한 90년대식 언더그라운드는 정말 오랜만입니다. 또 예동님 말씀처럼 에비던스의 랩의 텐션감이 훨씬 좋아졌다는게 정말 맘에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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