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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랩퍼들의 인정욕구가 만들어낸 흐름, '글로벌 콜라보'
    rhythmer | 2015-03-19 | 26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요즘 한국 랩퍼와 국외 유명 랩퍼 간의 콜라보레이션이 한 달에 한 번 꼴로 쏟아지고 있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인가?!'라며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아웃사이더(Outsider)와 트위스타(Twista) "Star Warz(별들의 전쟁)"를 시작으로, 산이(San-E)가 케이알에스원(KRS-One)을 비롯하여 다양한 국가의 랩퍼를 초대한 "#HIPHOPISHIPHOP", 방탄소년단의 랩 몬스터(Rap Monster)가 워렌쥐(Warren G)의 비트 위에 랩을 한 "P.D.D"가 각각 3월 초에 발매됐다. 재미난 것은 셋 모두 힙합 씬 안에서 흔히 말하는 웩 MC(Wack MC)로 취급 당했거나 마니아와 평단의 지속적인 혹평을 견뎌내고 있는 이들이라는 점이다. '힙합'을 외치면서 말이다. 2015년이 그들에게 역전의 해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이 동시에 돌파구로 찾은 것은 바로 이런 (전성기는 갔으나 여전히 명성 있는) 미국 힙합 스타들과 글로벌 콜라보레이션이다.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한 힘이 바로 '인정욕구'라는 것은 흥미진진하게 바라 볼 필요가 있다. 어떤 의미로든 한국 힙합의 역사에 남을 이 세 곡을 주목해보자.



     

     

    Star Warz (별들의 전쟁) - 아웃사이더 / Twista

     

    인정욕구: 속도 빼고는 별 것 없다고? 억울하다.

    돌파구: 지구 반대편에서 나와 같이 외로운 길을 걷는(?)Twista와 전쟁

     

    '그 누구보다 빠르게 난 남들과는 다르게 색다르게 리듬을 타는 비트 위의 나그네'를 모토로 삼는 아웃사이더는 굉장한 속도감에도 뛰어난 전달력을 가진 랩으로 화제를 모으다가 소통을 갈구하는 주제의 "외톨이"로 단숨에 대중을 사로잡았었다. 그리고 아웃사이더는 빠른 랩으로 인해 4장의 골드(Gold) 앨범과 한 장의 플래티넘(Platinum) 앨범을 보유한 스피드 랩스타 트위스타(Twista)와 곧잘 비교되기도 했다. 특히, 트위스타의 전성기가 아웃사이더가 인기를 얻던 시기와 크게 차이나지 않아 국내에서 이는 좋은 홍보 도구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웃사이더는 대중적인 인기와 반대로 속도감과 전달력 외에는 그다지 주목할 구석이 없어 점점 식상해지는 랩과 억지 감성에 호소하는 조악한 구성의 음악 탓에 힙합 씬 안에서는 인정받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몇몇 랩퍼의 조롱, 혹은 분노를 담은 디스 트랙의 대상이 되기도 했는데, 이런 그가 돌파구로 찾은 사람은 당연히 트위스타다. '난 브레이크가 박살 나버린 Venom GT / 이건 스피드스타와 트위스타의 Philosophy'라고 랩 철학을 공유하고 시작하는 “Star Warz (별들의 전쟁)”는 둘의 콜라보레이션 자체에 집중하고 과시하며 이목을 끄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재미난 이벤트로 가볍게 받아들이기엔 시기가 많이 늦었고, 진지하게 받아들이기엔 다소 실소를 자아낸다. 듣다가 고개를 떨어뜨릴 정도의 산만함이 곡 전체를 아우르기 때문이다. '랩이란 언어로 구사하는 빛과 빛의 마찰 / 새 역사를 써내려 가는 60억분의 1의 맞짱'이라는 가사와 '지구 반대편에서 같은 길을 걸어 온 두 랩퍼의 역사적인 작업'이라고 적은 보도 자료로 둘을 동일 선상에 올려놓으려는 기획은 아웃사이더가 지금까지 발표한 결과물과 이 곡이 담긴 앨범을 생각해보면 그저 민망한 인정욕구의 발현처럼 읽힐 뿐이다.

     



    P.D.D -
    랩몬스터 / Warren G

     

    인정욕구: 아이돌이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인정못해!

    돌파구: 미국 갱스터 랩 계의 명 프로듀서 Warren G에게 인정을 받는다

     

    프로듀서 방시혁이 기획한 보이 그룹 방탄소년단은 힙합 장르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으로 넘쳐나는 아이돌 그룹들 사이에서 차별화를 노렸다. 노골적으로 장르 정체성을 표방한다는 것은 곧 장르 마니아와 평단의 시선을 받기 쉽다는 것이고 또 설득력 있는 차별화를 위해 그 시선을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 장르 씬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 시험대에 스스로 올라야 하는 것이다. 데뷔 타이틀 "No More Dream"을 두고 '90년대 Golden Era로의 회귀라는 모토로 9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갱스터 랩을 재해석'했다는 어리둥절한 보도 자료를 쓰거나 쇼케이스에 음악 평론가들을 초대하여 평단의 따스한 시선을 갈구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래서일까? 방탄소년단의 음악에서 장르적 가치를 찾아내려는 평단이 비슷한 부류의 다른 팀들보다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힙합 앨범으로써 별다른 주목을 할 필요가 없는 완성도 탓에 고른 지지를 얻기는 힘들어졌기에 아마도 그러한 인정욕구는 더 커졌을 것이다. 그들이 얻은 인기의 이유 역시 장르적 완성도와는 거리가 멀고 그 반대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이런 방탄소년단의 간판 랩몬스터가 '믹스테입(Mixtape)'이라는 장르 아티스트로서 행보를 의식한 결과물을 준비하며 미국 서부 힙합의 대표적 프로듀서인 워렌쥐와 콜라보레이션 트랙 “P.D.D”를 발표했다. 그들을 주인공으로 한 엠넷의 프로그램 [아메리칸 허슬라이프]의 연장선에서 만들어진 트랙으로 이른바 '미국의 명 프로듀서가 인정한 한국의 랩퍼'라는 기획인 셈이다. 방탄소년단에 우호적인 음악 활동가 김봉현이 때맞춰 진행한 워렌쥐의 인터뷰에서 랩몬스터의 이야기가 상당부분 차지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겠다. 랩의 주제 역시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에게 바치는 선전포고다. 곡 자체로만 보자면, 프로덕션과 랩 모두 즐길만하다. 다만, ‘믹스테입 나오면 매겨봐라 Rating’이라는 식의 가사는 감상을 방해하기도 한다. 구린 행보의 랩퍼가 자주 하는 이야기가 정규 나오면 증명인데, 나아가 정규작을 낸 보이 그룹의 랩퍼는 믹스테입을 통해 무언가를 증명하고자 한다. 왜 자꾸 별도로 뭘 증명한다는 건지는 도무지 모르겠다.

     



    #HIPHOPISHIPHOP -
    산이 / KRS-One

     

    인정욕구: 내가 힙합이 아니라고? 한국힙합 씬 전체가 다 hate me?

    돌파구: '힙합 그 자체' KRS-One과 전 세계 랩퍼가 나와 함께하는데?

     

    뛰어난 랩 실력으로 큰 주목을 받다가 JYP엔터테인먼트와 계약까지 이루어지며 상당한 기대를 모았던 산이가 수 년간의 경력을 이어가면서 그에게 열광했던 힙합 커뮤니티의 조롱을 받고 있는 현실은 흥미롭다. 브랜뉴뮤직과 계약한 후 본격화한 속칭 발라드 랩으로 대표되는 산이의 행보는 사실 조금 더 면밀하게 살피면 자신과 치열한 싸움으로 읽을 수 있다. 힙합과 별다른 상관이 없어 보이는 음악의 성공을 힙합 트랙을 통해 뽐내고, '음악은 내 자존심이다만 내 자존심 팔아 / 부모님과 나의 가족 지킬 수 있다면 이깟 자존심'이라는 황당무계한 가사로 음악적 정당성을 얻으려고도 했다. 한국에서 힙합 랩퍼로서 정체성을 보여주는데 1순위가 된 것 같은 디스 트랙을 적절하게 안배하는 것도 잊지 않았고, 힙합을 주제로 하는 프로그램에 꾸준히 출연하여 힙합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점점 더 힙합 뮤지션으로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그가 최근 돌파구로 선택한 방법은 바로 힙합 선생님으로 불리는 랩퍼 케이알에스원과 콜라보레이션이다. 이 프로젝트에는 둘 외에도 많은 국가의 랩퍼들이 참여했다. 주제는 제목대로 힙합은 힙합이다. 힙합 뮤지션으로서 인정욕구가 하늘을 찌르는 산이와 브랜뉴뮤직으로서는 마침 제격인 주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재미난 건 이 트랙의 핵심 초대 손님인 케이알에스원이 넬리(Nelly)와 디스전을 펼칠 때 주 테마로 삼았던 게 팝랩이라는 사실이다. 산이가 음원 차트를 노골적으로 노리는 '한국형 팝랩'의 대표주자라는 점에서 아이러니한 지점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콜라보는 산이의 도발적 발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이 조악하고 산만한 트랙을 끝까지 듣는 유일한 방법이다.

     


     

    듀오 지누션(Jinusean)이 지난 2001, [The Reign]에서 한국 힙합의 10년치 피처링 기운을 다 사용했었는지 그동안 아주 뜸하게 들려오던 미국 유명 랩퍼와 협연 소식이 한꺼번에 밀려들고 있다. 그것도 꽤 놀라운 조합으로 말이다. 그러나 그 주체가 대중적으로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정작 씬에서는 힙합 뮤지션으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랩퍼들이라는 점은 역설적이다. 그들의 좀체 해소되지 않는 인정욕구가 이제껏 쉽게 보지 못 했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결과물의 만족도는 듣는 이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한국 힙합의 기괴한 현재를 읽는 흥미로운 코드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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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mments
      1. demian.square (2015-07-19 15:22:23, 49.173.12.***)
      2. 성훈님 글 좋아요.
      1. Dunkin.D (2015-03-28 12:01:01, 58.237.183.**)
      2. 잘 읽었습니다
      1. 리듬을 타는 렉스 (2015-03-21 15:34:47, 110.70.56.***)
      2. 잘 읽었습니다!
      1. 이얍 (2015-03-20 01:50:11, 182.227.103.***)
      2. 한국에서 힙합 한다고 하는새끼들중에 제대로 하는새끼 이제 하나도 없다.
        진짜 가짜새끼들 한국힙합 좀먹고 있네 쓰레기같은
        개소리 나발불기 바쁜 한국힙합씬 여성부새끼들이 한국에서 힙합하지 말라고
        해주면 유일하게 칭찬해줄만한짓 했다고 찬양하겠다
      1. 디케이 (2015-03-19 20:05:36, 211.198.74.**)
      2. 더 이상 정규 내지 않는 노년의 록스타
        왕년의 팝스타가 내한공연 갖는 것 같다.
        우와하고 찾아보면 사실상 스탭은 한국 사람들이 전부.
        그렇다면 주인공은 기가막히게 잘했나 생각해보면 fuck`em
        쓰다보니 랩처럼 쓰여지는데 ㅋㅋㅋㅋㅋ
        김정은 개xx 하듯 피쳐링 에미넴 해봐
        그럼 원하는 인정해주겠다.
      1. Bruce Mighdy (2015-03-19 19:56:28, 58.123.207.***)
      2. 상당히 복잡한 생각이 드네요.. 사실 이 일련의 콜라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글을 읽으니 어느 정도는 정돈이 되는 느낌이 드네요.. 그래도 꾸준히 이 흐름에 대해서는 생각해봐야될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성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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