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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이건 우리 안의 계급, 힙합 카스트를 마주하다
    rhythmer | 2017-07-15 | 38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 강일권


    래퍼가 래퍼를 평가하다니!’. 래퍼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가 시작됐을 때 가장 많이 제기된 문제였다. 최초 알려진 것과 달리 아마추어와 신인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덜 알려진 기성 래퍼들까지 오디션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많은 힙합 아티스트와 힙합 팬들은 존중(Respect)’의 부재를 거론하며 비판의 칼날을 들이댔다. 그러나 쇼미더머니를 통해 인지도가 오르고, 이른바 행사 머니로 부유해진 래퍼들이 하나둘 등장하면서 분위기는 반전된다. 힙합에 대한 존중을 상실한 것은 물론, 온갖 왜곡된 인식을 주입한다며 손가락질받던 쇼미더머니가 순식간에 기회의 땅이 된 것이다.

     

    프로그램을 비난하거나 말을 아낀 채 눈치 보던 래퍼들은 몸값을 올리고자 체제에 순응하며 기꺼이 가슴팍에 번호표를 달았다. 이후 많은 래퍼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이민자들처럼 쇼미더머니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이것이 5년간 이어지면서 힙합 팬들도 어느새 이 같은 광경에 익숙해진 듯하다.

     

    최근 시작한 시즌6에서도 바뀐 건 없었다. 나름대로 커리어를 쌓아온 기성 래퍼들이 그들보다 상업적으로 더 잘나가는 기성 래퍼들 앞에서 오디션을 보고, 합격과 불합격 사이에서 일희일비하는 모습을 보는 건 여전히 민망하고 적응하기 어렵다. 힙합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해괴한 광경이다. 어떤 예술 분야에서든, 절대다수의 아티스트가 본인의 작품을 경솔하게 평가하는 것, 혹은 평가하는 행위 자체에 불편한 심경을 표해왔다. 그래서 흔히 창작자와 평론가를 두고 대척점에 있다고들 한다. 하물며 아티스트가 아티스트를 대놓고 심사한다면 어떠하겠는가.

     

    특히, 자존심을 목숨처럼 생각하고 존중과 존경을 매우 중요시하는 래퍼들 사이에서 이는 대단한 무례이자 금기로 여겨진다. 더구나 좁디좁은 한국힙합 씬에서 그들 대부분은 최소한 두 다리 건너면 얽힌 동료이기도 하며, 더 가깝게는 같은 크루이거나 절친한 친구 사이인 경우도 있다. 하지만 한국힙합의 현재를 대변하는 쇼미더머니세계에서 이들의 위치는 소수의 권력자와 다수의 피권력자로 명확하게 갈린다. 그것도 상업적인 인지도를 기준 삼은 엠넷 제작진의 입맛에 따라서.

     

    쇼미더머니는 마치 힙합의 대중화란 미명 아래 인공적으로 세워진 계급사회 같다. 좀 더 적나라하게 얘기하자면, 힙합 카스트제도에 의해 움직이는 세계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실제로 쇼미더머니엔 카스트제도처럼 네 개의 계급이 존재한다. 우선 꼭대기엔 절대 권력의 PD들이 있다. 이 모든 판을 짜고 래퍼들의 신분을 결정하는 건 물론, 피권력 래퍼들의 달콤한 미래에 막강한 영향을 끼친다두 번째 층에는 그러한 PD들로부터 선택받고 권력 일부를 위임받은 심사위원 래퍼들이 있다. 생존 게임이 시작되면, 1차적으로 피권력 래퍼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게 그들이다. 역시 막강한 권력을 지녔다.

    세 번째 층엔 복잡한 심경과 자기기만, 혹은 정신승리로 무장하고 오디션에 임한 기성 래퍼들이 있다. 그들 대부분이 꿈꾸는 건 꼭대기 층과 두 번째 층의 권력자들에게 간택받아 본인도 그 층에 입성하는 것이다. 이 세계에서 가장 간절하고 절실한 마음을 품은 계층이다. 마지막 네 번째 층엔 신인 래퍼와 아마추어 래퍼들이 자리한다. 처음 ‘쇼미더머니가 내세웠던 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이들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러한 쇼미더머니로 대변되는 한국힙합은 여전히 밝은 빛이 보이지 않는 메트로폴리스와도 같다.

     

    힙합이 탄생한 건 파티장이었지만, 힙합이 성장한 건 부당하고 저열한 계급 시스템의 한 가운데에서였다. 많은 래퍼가 힙합을 통해 이 같은 현실을 꼬집고 엿을 날리며 맞섰다. 그러나 한국힙합 씬에선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는 중이다. 한때 누구보다 힙합문화의 멋을 강조하고 왜곡을 비판하던 래퍼들이 스스로 저급하게 짜인 계급 시스템 안에 걸어들어가 기꺼이 장단을 맞춘다. 물론, 피권력자 래퍼군에 속한 이들을 무작정 비난만 할 순 없다. 혹자들은 비판보다 대안을 제시해보라 말한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 정말 필요하고 선행되어야 하는 건 잘못된 걸 깨닫고 고치는 일이다. 이를 외면한 채 대안을 운운하는 건 침묵하는 것만큼이나 무책임한 짓이다. 무엇보다 이상의 모습이 한국힙합의 현재라면 너무 서글프지 않은가.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의 원문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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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터스 (2017-07-21 17:43:30, 1.226.29.**)
      2. So nasty that it's probably somewhat of a travesty
        Having me, then he told the people You can call me Your Majesty
      1. 할로윈1031 (2017-07-19 11:12:26, 182.225.134.**)
      2. .... 예전에는 랩하는 사람들이 멋있고, 힙합한다고 집에서 욕먹어도 해낸다는게 뭔가 고집있고 달라 보였는데, 이게 실상은 그게 아니라 어중이 떠중이들 이합집산하는 시장바닥이 다름 없을지경.
        경쟁이 미덕인 힙합에서 한국사회가 만나면 이렇게 되나 봅니다. 자각이 없어요.
      1. ajaaja (2017-07-18 15:47:15, 118.176.8.***)
      2. 한국힙합의 음악적 다양성과 퀄리티가 기반이 되고
        그 위에 쇼미더머니가 올라가야되는데
        지금은 쇼미더머니란 기반 위에 한국힙합이 올라가있는 꼴이죠

        신인이고 베테랑이고, 아마추어고 프로고 너나 할 것 없이
        쇼미더머니 못나가 안달입니다

        엠넷이란 대기업은 시청률을 노리고
        프로듀서들은 제작진이 하사해주는 심사위원이란 포지셔닝을 노리고
        기존 랩퍼들은 얼굴 알려 행사비를 노리고
        신인 랩퍼들은 결과물 없이도 가능한 랩스타 자리를 노리고
        시청자들은 새로운 가쉽거리를 노립니다.

        음악 프로그램에서 음악을 통해 경쟁하지만
        그 누구도 음악을 목표로 하지 않는 기이함

        재밌는건 그 기이함이 너무나 한국에 잘 어울린다는 것
        그게 또 웃긴점입니다.
      1. 붕붕 (2017-07-17 14:32:31, 106.246.10.***)
      2. 쇼미더머니는 한국 힙합씬이란 재래시장 옆에 생긴 대형마트같아요.
        이용자수는 그닥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서로 옹기종기 모여앉아 사고팔고 하던 플리마켓 옆에 코스트코가 생긴 느낌이랄까요?
        대형마트의 등장에 처음엔 소비자와 소상공인들 모두 비난을 아끼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대형마트의 편의성과 여러 이점에 반한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하고, 결국엔 다들 대형마트를 우선하게 됐죠. 때문에 경쟁력에서 뒤쳐지게 된 상인들은 이젠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대형마트에 입점하고자 줄을 서게 되구요.

        해외서는 대형마트 못지 않게 일반 장터들도 고유의 멋을 유지하며 다수를 유지하고, 이용객 비율도 반반씩 가져가지만...한국은 시장이 딱 하나밖에 없던 상황이라 대형마트 앞에선 기를 못펴네요. 애초에 시장이 컸던 것도 아니구요.
      1. 원세연 (2017-07-15 22:32:20, 175.223.18.**)
      2. 이번화에서 피타입이 45등이였나? 등수를 받고, 디기리가 거의 꼴찌에 가까운 등수를 부여받는것을 보고 너무 낯뜨거웠습니다.
        어떻게 힙합뮤지션이 그런 추잡한 등수놀이에,...
        심지어 그런 등수놀이에 자진해서 입장해버린 피타입의 표정이
        너무 안타까왔습니다. 힙합이란 문화가 너무왜곡되버렸지만
        결국 상업성을 따라 너도나두뛰어드는 슬픈 현실입니다
      1. Fukka (2017-07-15 21:04:47, 110.70.27.***)
      2. RAWQUIP님 의견에 정말 100% 공감해요.
      1. pusha (2017-07-15 19:54:57, 1.237.227.***)
      2. 쇼미뿐만 아니라 프로듀스 101도 비슷한 포멧이죠..
        최상부 꼭대기층에 11명 자랑스렇게 세워놓고 그아래 쭐래쭐래 하부 계급
        만들어서 지들끼리 편 짜먹고 노는 졸라게 어처구니없는 시스템 ㅋ
        요즘 엠넷을 볼때마다 느끼지만 대한민국 사회의 모든 암적인 병리현상을
        종합적으로 집약시켜놓은 "적폐 방송국" 같아요.
      1. RAWQUIP (2017-07-15 19:15:54, 222.102.78.**)
      2. 말마따나 힙합도 예능의 소재가 될수있고, 그런 예능 몇개 있는게 무슨 대수이겠습니까만, 그 예능 하나에 시장의 흥망성쇠가 걸려있고 모두의 밥벌이를 올인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죠 ㅎㅎ 쇼미의 문제는 쇼미가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라, 쇼미가 "한국 힙합시장" 에 존재한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평론에 제시된 계급론이 단순히 티비안의 구조가 아니라 힙합시장 전체에 걸친 구조로 가시화되니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쇼미가 힙합을 소재로 이용하는게 아니라, 한국힙합씬이 쇼미에 기생해서 유지되는 시장.......

        지금 쇼미더머니로 발생되는 현상들을 "예능인데 머 어때" "그걸로 래퍼들이 성공하고 밥벌이 해결하는데 그 정도면 된거아니냐" 같은 소리들로 묻어버리기 힘든게 그래서 그런거죠. 미국에도 힙합을 예능 소재로 이용하고 실제 래퍼들의 배틀이나 대립을 이용한 쇼프로그램이 존재하긴 합니다만, 그 프로 하나에 미국힙합시장의 운명을 걸고 모든 래퍼의 밥벌이를 걸진 않잖아요 ㅋㅋ 한국 힙합시장이 매우 기형적이고 사상누각 형태로 커져가고 있는데..... 마치 건실한 제작사, 좋은 게임타이틀, 바람직한 제작환경으로 선순환되지 않고 소수의 거대 게임사, 몇몇 게임의 수익모델에 모두가 달라붙어 엉망으로 키워나간 한국 게임시장이 보이더라구요 ㅋㅋㅋ
      1. WooThe (2017-07-15 17:19:33, 121.155.184.***)
      2. 정말 와닿네요 누가 누굴 평가하는것이 실력의 차이가 아닌 상업적성공의 차이로 이루어진다는것이 정말 무섭네요.
        어떻게보면 예술만은 상업적영역에 오염되기 어려운 분야여야만 하고, 또 힙합이란 그 안에서도 곤조(?)를 지키던 분야였는데, 이렇게 망가지는걸 보자면...
        정말 차라리 엠씨메타가 말했듯이 신인, 아마추어만 지원했던 쇼미더머니1빼고는 정말 점점 가관이 되어가는것같네요.
      1. 폐식용유 (2017-07-15 13:26:51, 175.116.109.***)
      2. 돈 돈 돈 .. 돈 때문이죠..
      1. M.F.Doom (2017-07-15 11:37:57, 223.33.153.**)
      2. 정말이지 추잡하기 짝이 없는거같습니다. 도대체 이 꼬라지를 언제까지 봐야 할런지.. 잘읽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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