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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드머 뷰] 미국의 감성 힙합, ‘이모 랩(Emo Rap)’의 침공
    rhythmer | 2018-05-18 | 7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글: 황두하


    2000
    년대 중·후반 한국대중음악계에서는 감성 힙합이란 키워드가 대두한 바 있다. 주로 말랑말랑한 비트 위에 사랑과 이별 이야기를 담은 곡들이다. 일부 제작사가 홍보를 위해 표현을 만들어냈고, 언론사의 받아쓰기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랩과 비트의 형식만을 빌려왔을 뿐, 단순하고 뻔한 내용의 가사와 단선적인 랩핑, 그리고 기존의 가요 발라드와 별다를 바 없는 멜로디의 보컬 등, 여러 부분에서 완성도가 부족했던 탓에 힙합 팬 대부분에게는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현재는 감성 힙합 음악의 80% 이상을 차지했던 랩 발라드(혹은 발라드 랩) 류가 대변하는 중이며, 주류에서는 물러난 상황이다(하지만 여전히 꽤 나오고 있다.). 그런데 근래 힙합의 본토인 미국에도 감성 힙합이 등장했다. 게다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논란도 적잖게 야기하고 있다. 바로 이모 랩(Emo Rap)’이 그것이다.



     


    이모 랩의 ‘Emo’는 감정을 뜻하는 ‘Emotion’의 줄임말이다. 그래서 직역한다면, ‘감성 랩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 유행했던 것과는 결이 매우 다르다. 장르의 대표 아티스트들이 대부분 SNS 형태의 뮤직 플랫폼인 사운드클라우드(SoundCloud)를 통해 등장했기 때문에 이모 랩은 사운드클라우드 랩(Soundcloud Rap)’으로 불리기도 한다.

     

    최근 여성 폭력을 비롯한 수많은 중범죄 혐의 탓에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엑스엑스엑스텐타시온(XXXTentacion)을 비롯해 릴 우지 버트(Lil Uzi Vert), 릴 잰(Lil Xan), 트리피 레드(Trippie Redd), 그리고 마약의 한 종류인 펜타닐(Fentanyl)의 과다복용으로 지난해 11월 숨을 거둔 릴 핍(Lil Peep) , 많은 신예 랩퍼들이 이모 랩을 표방하며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



     


    이모 랩의 어원은 록(Rock)의 서브 장르 중 하나인 이모(Emo)’이다. ‘이모이모셔널 하드코어(Emotional Hardcore),’ 혹은 이모코어(Emocore)’라고 불리기도 하는 장르로써 1980년대 중반 워싱턴 D.C.(Washington D.C.)를 중심으로 일어난 포스트-하드코어 펑크(Post-Hardcore Punk) 운동의 일환으로 탄생한 장르이다.

     

    이는 인디 록, 팝 펑크, 프로그레시브(Progressive) , 여러 하위 장르가 뒤섞인 사운드와 자기반성이나 고백, 혹은 감정적 괴로움 등을 토로하는 가사를 음악적 특징으로 한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마이 케미컬 로맨스(My Chemical Romance)나 폴 아웃 보이(Fall Out Boy)와 같은 밴드 등의 성공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모 랩의 음악적 특징 또한 이모와 무관하지 않다. 2010년대 들어 유행하기 시작한 클라우드 랩(Cloud Rap)이나 피비알앤비(PBR&B)처럼 음침하고 몽환적인 사운드에 인디 록, 팝 펑크 등의 장르를 섞어 한층 더 어둡고 쓸쓸한 느낌을 자아내는 것이 이모 랩의 음악적 특징이다. 장르의 선구자 중 하나로 평가받는 엠씨 라즈(MC Lars)는 이미 2004년에 2000년대 팝 펑크나 이모 트랙들을 샘플링하기도 했다. 더불어 우울, 불안감, 약물 과용, 공허함, 자살 기도와 같은 것들을 가사의 주 소재로 삼는 것 또한 이모 랩의 특징이다.

     

    작년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7위까지 오른 릴 우지 버트의 히트곡 “XO Tour Llif3”는 이러한 음악적 특징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곡이라다. 의외로(?) 비속어가 하나도 쓰이지 않은 이 곡에서 릴 우지 버트는 이별 후의 고통과 그것을 잊기 위한 재낵스(Xanax)의 과다 복용, 우울증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프로듀서 티엠에이리에잇(TM88)이 만든 사이키델릭한 비트가 특징인 이 곡은 상업적인 성과뿐만 아니라 비평적으로도 호평받은 바 있다. 이 밖에도 릴 핍의 유작인 [Come Over When You're Sober, Pt. 1]이나 텐타시온의 [17] 등은 이모 랩을 대표하는 앨범들이라고 할만하다.



     


    이모 랩의 발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아티스트 중 하나가 바로 키드 커디(Kid Cudi)이다. 키드 커디가 2009년에 발표한 [Man on the Moon: The End of Day]는 힙합뿐만 아니라 일렉트로닉, 록 등 다양한 장르를 결합시켜 지금까지 없던 신선한 사운드로 충격을 주었다. 이는 수많은 후배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사람들이 그를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얼터너티브 록 사운드를 시도한 앨범 [Speedin' Bullet 2 Heaven] 또한 정돈되지 않은 조잡한 사운드로 혹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모 랩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작품으로 거론된다. 웅얼거리는 듯한 랩과 베이퍼 웨이브(Vapor Wave)를 적극 활용한 뮤직비디오 등으로 마니아를 거느린 영 린(Yung Lean) 역시 이모 랩에 큰 영향을 준 아티스트이다. 영 린은 본인의 음악을 새드 랩(Sad Rap)’이라 칭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모 랩이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누구일까? 물론, 이모 랩이라는 용어는 이전에도 에미넴(Eminem), 제이 지(Jay-Z) 같은 많은 랩퍼들이 본인들의 음악 중 감정적인 가사가 포함된 곡을 특정해 부르고자 쓰이기도 했다. 제이 지의 “Song Cry” 같은 노래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모 랩이라는 용어를 장르로써 처음 사용한 것은 독일 랩퍼 캐스퍼(Casper)이다.

     

    2004년에 데뷔한 그는 2009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본인을 이모 랩퍼라고 지칭하였다. 실제로 그의 음악 역시 힙합에 하드코어, 펑크 록, 이모 등의 장르를 결합한 사운드와 자기성찰적인 가사가 특징이다. 독일 힙합 씬은 영미권을 제외하면 그 규모가 가장 큰 씬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캐스퍼의 존재가 현재의 이모 랩 붐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도 볼 수 있겠다.



     


    앞서 말했듯이 이모 랩은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장르인 동시에 논란을 몰고 다니는 장르다. 많은 사람은 이모 랩에서 주로 다루는 소재인 약물 과다복용과 자살 기도 등, 콘텐츠가 담고 있는 위험성 탓에 10대 청소년들에게 끼치는 악영향을 지적하기도 한다. 아울러 이모 랩퍼들이 저지른 수많은 범죄 경력도 좋지 않은 시선을 받는 데 한몫한다.

     

    중범죄 혐의 탓에 최근 스포티파이(Sportify) 등의 음악 스트리밍 업체로부터 플레이리스트에서 삭제당한 텐타시온이나 약물 과다복용으로 인해 사망한 릴 핍 등등의 사례는 대표적이다. 과연 이모 랩이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힙합의 새로운 메인 장르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과거의 많은 하위 장르들이 그랬던 것처럼 반짝 인기에 그치게 될까? 어느 쪽이 되었든 이모 랩은 오늘날의 힙합을 알기 위해 피해갈 수 없는 장르이며, 힙합의 새로운 면을 볼 수 있게 해준 장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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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인트 (2018-05-19 01:48:33, 220.121.85.**)
      2. 우리나라에서 "감성힙합"이라는 용어의 주인은 P&P로 시작된 청춘가사+소울샘플류라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샘플링 논란은 컸지만 그때 등장했던 뮤지션들이 아직도 힙합씬을 이끌고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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