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드머 필진이 선정한 '2021 국내 알앤비/소울 앨범 베스트 10’을 공개합니다. 아무쪼록 저희의 리스트가 한해를 정리하는 좋은 가이드가 되길 바랍니다.

 

※2020년 12월 1일부터 2021년 11월 30일까지 발매된 앨범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10. 엘라이크(L-like) - Olive

Released: 2021-07-20

 

엘라이크는 주목해야 할 신예 프로듀서다. 데뷔작 이후 2년 만에 발표한 두 번째 EP [Olive]에서 그의 진가가 제대로 드러난다. 전체적으로 빈티지한 질감을 강조한 가상 악기가 활용됐고, 곡 분위기에 맞춰 독특한 소스나 피아노, 기타 등의 악기가 추가됐다. 여기에 일렉트로닉 사운드 또한 적극적으로 차용됐다. 그래서 트랙마다 개성이 살아있으면서도 사운드적으로 일관성이 느껴진다. 그의 색깔이 가장 잘 드러나는 건 연주곡에서다. 피아노로 시작해 악기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첫 트랙 “Harmonic”, 신시사이저와 드럼으로 미니멀하게 진행되는 도회적인 감성의 “Espresso Build”, 변칙적인 드럼 라인과 상승하는 신스, 보이스 소스가 어우러진 “Butterfly” 등, 미래지향적인 사운드가 빈티지한 질감으로 마감됐다.

 

프로듀서의 앨범은 많은 게스트 사이에서 주인공으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중심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Olive]는 이 부분에서 꽤 성공적이다. 엘라이크는 여섯 명의 피처링 아티스트를 음악 안에 포용하며 본인이 어떤 아티스트인지 확실하게 보여줬다. 뒷심이 아쉽지만, 기승전결이 확실한 앨범이라는 점도 고무적이다. 유행을 좇아 양산형 트랙을 만드는 이들이 즐비한 씬에서 사운드로 본인을 표현할 줄 아는 프로듀서가 등장했다.

 

 

9. 베이빌론(Babylon) - Hardy

Released: 2021-02-04

 

얼터너티브 알앤비 열풍 속에서 장르 간의 경계가 무너진 작품이 쏟아진 가운데, 베이빌론의 [Hardy]는 우리에게 익숙한 알앤비의 정수를 들려준다. “Chandelier”부터 “Red Lipstick”까지 이어지는 초반 구간은 2000년대 중후반 유행하던 슬로우잼을 세련되게 재해석한 사운드가 돋보인다. 특히 박재범과 합을 맞춘 “너가 좋아하는 노래”는 캐치한 멜로디와 두 보컬의 능숙한 퍼포먼스가 어우러져 앨범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다.

 

피비알앤비(PBR&B)의 기운이 느껴지는 “White Suit”와 후반부를 장식하는 발라드 넘버 “Don’t Go In The Rainbow”, “혼자” 같은 트랙들도 유려한 애드리브와 팔세토 창법을 무기로 한 베이빌론의 보컬 덕분에 일관성이 느껴진다. 무려 18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랩 단체 곡 “Going In”도 2000년대에 유행하던 방식을 현대적으로 구현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베이빌론은 [Hardy]를 통해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던 2000년대 알앤비의 매력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무엇보다 프로덕션과 퍼포먼스의 완성도가 뒷받침되었기에 더욱 의미 있다.

 

 

8. 유라(youra) - Gaussian

Released: 2021-02-02

 

유라가 쓰는 가사엔 예상치 못한 상징어가 태연하게 자리한다. 클클하고 혼란스럽다. 그러나 그 속의 감정이 어떤 파동을 갖는지 눈에 보인다. ‘미미(微微)’로 그리움이라는 파동을 만든 “미미(MIMI)”와 낙관을 꿈꾸는 “분홍(PINK!)”이 그렇다. 특히, “하양(RAL 9002)”에서 그 강점이 두드러진다. 내리는 눈, 머리카락, 눈동자를 모두 함의하는 ‘하양’은 공허함을 뜻한다. 회색에 가까운 색상 코드 ‘RAL 9002’를 활용해 공허라는 감정을 시각적으로도 나타낸다. 한 시절이 허물어지는 무상함을 음악에 진하게 새겨 자꾸만 곱씹게 만든다.

 

피비알앤비(PBR&B), 하우스(House), 얼터너티브 록(Alternative Rock)까지 다채로운 장르를 넘나들면서도 준수한 완성도를 보여준다. 더불어, 그의 보컬은 다양한 장르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는다. 음울이 밴 몽환적인 목소리가 가사를 읊으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귀를 기울이게 된다. 어떤 고민과 번민, 고뇌, 소회. 유라는 그 모든 것을 피하지 않고 뭉쳐낸다. 그리고 빤히 마주하고 있다.

 

 

7. 저드(jerd) - A.M.P.

Released: 2021-11-21

 

두려움은 파동을 일으킨다. 파고를 잠재우기 위해 뒤척여 보지만 쉽지 않다. 너울지는 감정은 번잡으로 변모한다. 저드의 첫 정규 앨범 [A.M.P.]에서는 오롯이 하나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누군가 번뇌하고, 그 번뇌를 덜어내려 부단히 움직이고, 결국엔 ‘내가 누구인지’ 또렷하게 응시하는 과정. 기승전결이 분명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저드다. 그래서 그가 뱉는 노랫말을 읽다 보면 그가 새긴 발자국을 따라가게 된다.

 

프로덕션을 영리하게 배치해 유기적인 흐름을 빚어낸다. 우선, 차분한 멜로디로 쓸쓸한 분위기를 전반적으로 조성한다. 하지만 감정의 파고를 표현하는 듯 통통 튀는 “Phone Phobia”, 리드미컬한 기타 리프가 돋보이는 “휴!” 같이 존재감 뚜렷한 트랙들이 뾰족하게 솟아오른다. 가장 첫 트랙 “12345”와 뒤따르는 “Knock Knock”의 유기성은 특기할 만하다. 독립적으로 활동하던 때 부르던 “Swimmmmm”을 샘플링한 “12345”와 팔로알토(Paloalto)가 목소리를 보탠 “Knock Knock”을 붙여 배치해 자신이 맞이한 변화를 근사한 방식으로 은유하기도 한다. 저드가 품던 ‘말도 안 되는 상상’은 당장의 현실로 구현되었다. 그래서 기대하게 만든다. 그가 떨쳐내고자 했던 번민이 또 어떤 음악을, 어떤 미래를 그려낼지.

 

 

6. 릴피쉬(Lil Fish) - 분열

Released: 2020-12-31

 

싱어송라이터 릴피쉬(Lil Fish)의 데뷔 EP [분열]에 지배적인 기운은 죽음이다. 그는 팬데믹 시대에 느낀 정서적인 분열을 때론 간절한, 때론 서늘한 기운이 밴 언어로 풀어놓았다. 2020년의 마지막 날 앨범을 발매하며 2021년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지만('올해는 즐겁지 않았어. 2021년에는 괜찮아지겠지?'), 작품의 근저엔 한없이 비관적인 정서가 흐른다. 솔직함과 염세주의가 뒤섞인 자기소개서, 첫 곡 "정신분열"부터 '자살각'을 언급한 릴피쉬는 '죽는 건 어때, 죽으면 어때'라고 독백하는 "언제 멸망할까요"와 내일에 대한 바람과 체념이 섞인 마지막 곡 "잘가요"에 이르기까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현실에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진 본인을 가감 없이 전시한다.

 

[분열]을 듣고 있으면, 당장 오늘과 내일에 대한 걱정이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까지 나아가 생성된 묘한 기운이 느껴진다. 그 속엔 슬픔과 비루함, 그런 가운데서도 구차하게 차오르는 일말의 희망이 어지럽게 뒤섞여있다. 음악을 듣는 동안엔 그가 만든 세계를 부유하는 듯하다. 이 우울한 시기가 한편으론 이렇게 흥미로운 작품을 마주하게 한다. 참으로 잔인하면서도 짜릿한 아이러니다.

 

 

5. 수민 & 슬롬(SUMIN & Slom) - MINISERIES

Released: 2021-09-15

 

프로듀서 슬롬과 함께한 [MINISERIES]은 독보적인 위치에 오른 수민의 현재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한번 들으면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 캐치한 멜로디 라인과 예상치 못한 순간에 등장하여 곡을 풍성하게 하는 코러스가 어우러져 시종일관 귀를 사로잡는다. 리듬을 자유자재로 밀고 당기고, 곡의 무드와 가사에 따라 톤이 미묘하게 바뀌는 연기력이 더해진 퍼포먼스는 더 능수능란해졌다. 슬롬이 책임진 프로덕션은 수민이 직접 프로듀싱했던 작품들과 비슷한 결이지만, 조금 더 정돈된 인상이다. 수민의 허밍과 무그(Moog) 베이스, 신시사이저, 전자 기타, 피아노 등의 악기가 차곡차곡 쌓여 공간감을 자아내는 인스트루멘탈 트랙 “ㅜ”는 대표적.

 

앨범은 ‘미니시리즈’라는 컨셉에 맞게 사랑의 다양한 순간과 미묘한 감정들을 절묘하게 포착했다. 재기발랄한 어휘 선택과 엉뚱한 매력이 돋보이는 표현법은 이야기를 더욱 생동감 있게 한다. [MINISERIES]는 그간 수민이 발표한 작품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완성도가 워낙 뛰어나고, 매번 다른 방식의 디테일한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덕에 여전히 신선하게 다가온다. 한국 블랙뮤직 씬의 최전선에 있는 아티스트의 현재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4. 정지아 - 입수

Released: 2021-11-24

 

정지아가 2019년에 발표한 첫 EP [재생]에는 낙관을 찾아볼 수 없다. 침울한 단어들이 파도친다. 대표적으로 “세상은 우리의 것”이 그러하다. 태연하게 흐르는 건반과 ‘세상은 온통 우리의 것 어지럽혀진 우리들로 채워진’이라는 가사를 듣고 있으면, 한 편의 잔혹 동화를 읽는 것 같다. 그러나 정지아는 이야기의 방향을 비관적이거나 냉소적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길을 튼다. 그때 그 마음이 진정한 속내를 숨기기 위한 위장이었음을 알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입수]는 누군가를 갈망하는 모습들로 빼곡하다. 연인을 만났다는 행복이 사랑받고 싶은 불안함으로 상쇄되어 그 어떤 상태도 아닌 ‘0’이 되었을 때를 훌륭하게 표현한다.

 

프로덕션 면에선 메인인 피아노에 기타 사운드를 쌓고, 울먹한 소스를 활용하는 등 변화를 준 모습이다. 성공적인 변화다. 전체적으로 우울한 분위기를 형성하지만, “영”부터 “그물”까지 둔중한 비트 위에 익숙하고 쉬운 리듬 패턴이 수놓아져 감흥을 자아낸다. 무엇보다 마지막 트랙인 “꿈”에서는 활용된 사운드스케이프가 바닷가를 걷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동시에 반짝거리는 소스로 버석거리는 마음을 그려낸다. [입수]를 트랙 순으로 따라가며 일어난 감정을 한 데 모아 피어나도록 하는 것만 같다. 그래서 “꿈”에 모든 마음을 풀어내고 싶어진다.

 

 

 

마인드 컴바인드(Mind Combined) - Circle

 

머피(Muhpy) - RE-SET

 

수잔 - Eros

 

지바노프(jeebanoff) - Talking Book

 

체(CHE) - PINE

 

 

 

3. 신드럼(SHINDRUM) - Who I Am

Released: 2021-01-03

 

신드럼의 [Who I Am]은 몹시 흥미롭다. 그는 아트 오브 파티스(Art of Parties), 진보, 잔나비, 딘, 윤종신, 고상지 등등, 특정 장르와 스타일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아티스트와 작업했다. 그 이력 덕분인지 앨범 전체에 풍성한 프로덕션이 구축되었다. 헤비한 기타 연주가 사운드를 장악하거나 그루브 넘치는 베이스 리프가 펑키한 사운드를 주조하며, 붐뱁 비트에 보컬 샘플링이 차용되고, 다양하게 활용된 건반 사운드를 통해 장르적 특성이 드러난다.

 

프로덕션과 더불어 연주도 중요한 포인트다. 단순히 샘플 소스를 사용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 연주를 가미하여 사운드를 완성했다. 물론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신드럼이다. 안정감 있게 곡을 이끄는 동시에 트랙마다 다양한 리듬 패턴을 자유자재로 소화한다. 드럼을 필두로 모든 연주자의 퍼포먼스가 준수해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신드럼은 오랜 세션 활동과 협업으로 쌓은 내공을 마음껏 쏟아내며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재능을 새롭게 증명해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답이 [Who I Am]에 있다.

 

 

2. 소금(sogumm) - Precious

Released: 2021-10-22

 

소금은 오디션 프로그램 [사인히어]에서 우승하며 레이블 AOMG와 계약했다. 프로그램의 결과에 따른 계약이었지만, 메인스트림 힙합/알앤비 사운드를 추구하는 레이블과 전위적인 얼터너티브 알앤비가 담긴 데뷔 앨범을 발표했던 그의 조합은 언뜻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회사를 통해 발표한 첫 앨범 [Precious]는 그러한 의구심을 날려버리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Sobrightttttttt]의 전위적인 사운드와 대중적인 접근이 적절히 어우러져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알앤비 음악이 탄생했다.

 

넘실거리는 신시사이저와 보컬을 디지털 가공한 소스가 어우러지고 사랑의 환희를 몽환적인 분위기아래 풀어낸 “처방전”은 앨범의 방향을 가장 잘 나타낸다. 사랑의 무결함을 ‘약’에 비유해 순수함을 드러내는 가사와 말하듯 읊조리며 그루브를 만드는 보컬도 여전하다. 다만 한 곡 안에서 뚜렷한 기승전결 구조를 갖췄다는 점이 달라졌다. 좀 더 많은 이가 쉽게 다가갈만한 요소가 추가된 셈이다. 그럼에도 꽤 많은 곡의 후반부에선 변주가 이루어지며 예전의 본성이 드러난다.

 

[Precious]에서 소금은 여전히 사랑을 노래한다. 복잡한 계산 없이 사랑하는 상대를 향해 순수하게 직진한다. 그리고 영원을 약속하는 동화 같은 사랑을 꿈꾼다. 낮게 읊조리다가도 어느 순간 감정을 터트리는 보컬은 소녀의 감출 수 없는 마음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것만 같다. 결국, 그 ‘마음’이 가장 ‘중요한(precious)’ 것이기 때문이다.

 

 

1. 따마(THAMA) – Don’t Die Colors

Released: 2021-09-28

 

따마는 [Don’t Die Colors]를 통해 자기 확신을 표명한다. 확신의 근원은 알앤비에 대한 애정이다. 섬세한 악기 사운드로 소울풀함을 한껏 살렸다. 가스펠 분위기를 풍기는 “Blessed”, 리드미컬한 “Real Thing”, 그루비한 무드에 신스 사운드를 얹은 “잠깐, 급한일이”까지 그가 잘할 수 있고 원하는 장르가 무엇인지 또렷하게 보여준다. 참여 진의 활약도 앨범을 단단히 세우는 요소다. 김오키(KimOki)의 색소폰 연주가 재즈 무드로 피어난 “København”부터 선우정아의 보컬이 쓸쓸한 길가와 닮아 있는 “Vanilla Sky”와 담백한 랩핑이 둔탁한 비트와 어우러지는 “Real Thing”까지 참여 진은 각자의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하이라이트는 앨범의 시작을 알리는 “Chill이라는 낱말의 존재이유”다. 펑키한 기타 리프와 소울을 머금은 따마의 스캣이 어우러져 완성도 높은 선율을 만들어낸다. ‘난 이미 닿을 수 없는 곳으로 와있지’라는 노랫말은 그가 구축한 음악들과 맞물려 그의 확신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처럼 [Don’t Die Colors]는 음악의 완성도와 전하는 메시지가 부합해 강한 시너지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