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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외 리뷰] El-P – Cancer 4 Cure
    rhythmer | 2012-08-28 | 5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Artist: El-P
    Album: Cancer 4 Cure
    Released: 2012-05-22
    Rating:
    Reviewer: 양지훈









    캐니발 옥스(Cannibal Ox)의 [The Cold Vein]과 엘-피(El-P)의 [Fantastic Damage] 등, 발매하는 앨범마다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던 데피니티브 젹스(Definitive Jux) 레이블이 고공 행진을 거듭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돌이켜 보니 무려 10년 전의 일이었다.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앱스트랙 힙합(Abstract Hiphop)의 대명사로 군림하던 프로듀서 겸 랩퍼 엘-피는 최근 3년 간 데피니티브 젹스의 앨범 자체 발매 중단을 결정했을 뿐, 여전히 앱스트랙 힙합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평단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호평을 이끌었던 [I'll Sleep When You're Dead]에서 보여준 타이트함이 청자들의 머리에서 희미해질 때가 되자, 엘-피는 5년 주기로 또 하나의 솔로 앨범을 만들고 있었다. 그는 킬러 마이크(Killer Mike)와의 합작 [R.A.P. Music]의 제작과는 별개로, 솔로 앨범의 완성에도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며 올드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했다. 결국, 2012년 5월 킬러 마이크의 앨범과 일주일의 간격을 두고 자신의 세 번째 솔로 앨범을 발매했다.

    [I'll Sleep When You're Dead]의 뒤를 잇는 [Cancer 4 Cure]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엘-피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랩을 통해 어두운 소재들을 거침 없이 논하는 것부터 참신함이 가득한 비트까지 스타일의 변화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샘플링 작법은 가끔씩 활용하되, 신시사이저와 기타 이펙터, 때로는 오르간까지 대동하는 작법으로 독특한 그루브를 양산한다. 또한, 그는 자신의 입맛에 맞게 여러 세션을 진두지휘하며 프로듀서의 역량을 100% 발휘한다. 앨범은 서서히 시동을 밟다가 곡 말미에 비로소 엘-피의 랩을 폭발시키는 "Request Denied"와 빠른 비트로 분위기를 압도하는 첫 싱글 "The Full Retard"로 포문을 연다. 앨범 중반에 자리한 "Oh Hail No"와 "Tougher Colder Killer"가 이어지는 부분에는 게스트 랩퍼들을 동원해 박진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빠른 BPM과 함께 정교하게 짜인 미스터 머더퍼킹 엑스콰이어(Mr. Muthafuckin' eXquire)의 랩, 그리고 킬러 마이크의 랩을 연이어 감상하게 되는 중반부는 랩과 비트의 빠르기가 최고조에 이르는 순간이다. 특히, 엘-피의 장기인 '곡 중간에 비트를 자연스럽게 뒤틀어 진행하는 작법'이 담긴 "Tougher Colder Killer"는 매 앨범마다 등장하는 엘-피의 실력 과시용 트랙이라 분류하기에 손색이 없다.

    중반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는지, "True Story"까지 돌진을 계속하다가 이후부터는 소강 상태에 돌입한다는 점이 아쉬운데, 사실 이것 역시 엘-피의 의도적인 전개로 추측된다. 그렇다 보니 비교적 미니멀한 비트가 줄을 잇는 후반부에서 가사의 전달력이 극대화된다. 늘 그랬듯 엘-피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어둡고 부정적인 도시의 이야기다. 그는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폭력 사건의 목격자가 되고("For My Upstairs Neighbor"), 여성을 겨냥하여 취조하듯 쏘아붙이는 랩을 보여주기도 하며("The Jig is up"), 때로는 보컬리스트를 대동해 청자의 혼을 빼놓기도 한다("Stay Down"). 자신의 앨범을 'Fight Music Abstract'이라 묘사하고, 평소에 보고 듣고 생각한 어두운 것들을 가감 없이 묘사하고 싶었다던 그의 계획은 이번에도 성공이다.

    다행히도 [Fantastic Damage]처럼 랩과 비트의 동시 감상이 불가능할 정도의 압도적인 비트는 없고, 그렇다고 해서 세션의 엉성한 조합도 없다. 기존 힙합 음악의 틀에서 벗어나, 뉴욕을 거점으로 한 다양한 세션 뮤지션의 초대, 그리고 변칙적 드럼 전개에 능한 그에게서 허점을 찾는 일은 이번에도 어렵다. 게다가 마음 속에 내재된 부정적인 생각들을 거침없이 표출하는 랩도 달라지지 않았다. 비록, 그의 개성 없는 목소리는 커버할 방법이 없지만, 랩에 담긴 주제는 늘 묵직하다. 엘-피 특유의 마니악한 스타일에 대해 잘 알고 그것을 즐길 줄 아는 이들이라면, 이번 앨범의 촘촘한 비트와 네거티브한 랩에도 대부분 만족을 표할 것이라 믿는다. 물론, 그를 처음 접하는 이들이 가장 의아하게 생각할 부분이지만 말이다. 이렇게 타이트한 비트 위에 긍정이라고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랩만 얹히는 엘-피는 예나 지금이나 참 독특한 존재임에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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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mments
      1. SsakJoo (2012-11-04 23:14:23, 112.144.249.***)
      2. 엘피 진짜 최고!! ㅠㅠ
      1. 양지훈 (2012-08-30 22:02:43, 1.241.191.***)
      2. 엘-피와 작업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염세주의자가 될 것 같아요...
      1. moonice (2012-08-28 22:13:53, 58.232.2.***)
      2. 졸라 사랑한다 정말.
      1. Messlit (2012-08-28 13:54:59, 211.246.77.***)
      2. 엘피랑 작업한번만 같이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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