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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외 리뷰] Slaughterhouse - Welcome to: Our House
    rhythmer | 2012-09-10 | 3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Artist: Slaughterhouse
    Album: Welcome to: Our House
    Released: 2012-08-28
    Rating:
    Reviewer: 예동현









    힙합음악에서 랩은 과연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가? ‘매우 중요하다’라는 뻔하고도 모호한 답을 제외하면, 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일 것이다.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마저도 랩은 평범하나 비범한 비트가 담긴 클래식 앨범, 또는 불세출의 실력을 갖췄으면서도 역사에 남을 명작을 발표하지 못한 엠씨들을 떠올리면서 약간의 찝찝함을 느낄 텐데, 이 앨범은 후자의 경우다. 엄청난 기술을 가졌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만족스러운 앨범을 발표하지 못했던 최고의 엠씨 네 명이 모여서, 인디에서 인상적인 활약에 힘입어 메인스트림에까지 진출해서는 그런저런 앨범을 발매해버렸다. 굉장히 살벌한 도살장을 기대하고 들어갔는데 가게 안은 이것저것 판매하는 어수선한 동네 마트의 모양새다.

    물론, 실망스러운 앨범은 아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기대에 못 미치는 앨범이다. 인디에서 발매한 [Slaughterhouse]는 그야말로 시원한 라임으로 점철된 수작이었지만, 아쉬운 프로덕션과 허술한 마감 때문에 일말의 아쉬움을 남겼다. 그렇기에 에미넴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일명 ‘셰이디 2.0’이란 타이틀로 리뉴얼된 레이블의 사활을 걸고 앨범 작업에 매진한다는 그들의 소식은 하드코어 힙합 팬들의 기대를 성층권 바깥으로 끌어올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뻔한 사운드의 메인스트림 랩 앨범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프로덕션의 실패에 있다.

    사실 앨범의 전체적인 사운드는 역시 인디 시절에 비해 완성도가 높고 때깔 좋은 비트들이 대거 들어찼다. 사실 몇몇 곡은 굉장한 랩에 부합하는 감동을 만들어내며 끝내주는 순간들을 제공한다. 하지만 몇몇 형편없는 비트들과 뻔한 구성, 그룹의 장점을 제거해버린 벌스의 분배, 독창성의 부재 등등 이 앨범은 메인스트림 힙합 앨범에서 찾을 수 있는 프로덕션의 모든 실패를 거듭한다. “Our House”로 구현해낸 그들의 위대한 메인스트림 입성의 드라마가 주는 비장한 감동은 이어지는 “Coffin”과 “Throw That”의 재미없이 앵앵거리는 비트들이 완전히 지워버린다. “Hammer Dance”에서 다시금 정상궤도로 올라선 앨범은 중반부에서 후반부로 넘어갈수록 널뛰기를 거듭한다. 특히, 이 앨범의 프로덕션이 보여주는 창의력의 부재는 치명적인 요소인데 “My Life”는 저스트 블레이즈(Just Blaze)의 몇 년 전 히트곡들과 다를 바 없고, 스위즈 비츠(Swizz Beatz)와 유사하지만-그보다 더 정신 사납고 덜 흥미로운 “Throw It Away”, “I Need A Doctor”의 슬로터하우스 버전인 “Rescue Me” 등등 이 앨범은 단 한 순간도 유니크한 경험을 청자에게 선사해주지 못한다. 그나마 그런 유사한 분위기를 공유하긴 하지만, 몇몇 곡에서 이 굉장한 엠씨들의 어마어마한 라임을 충실히 받아낸 것이 본작의 쟁쟁한 프로듀서들이 거둔 작은 승리일 뿐이다.

    이 앨범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는 오직 랩뿐이다. 사실 랩으로만 따졌을 때 이 앨범과 비교할만한 작품은 근 3년을 통틀어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을 것이다. 로이스는 역시나 그 위대한 기량을 한껏 펼쳤고, 그들의 데뷔작에서 가장 돋보였던 조엘 오티즈(Joell Ortiz) 역시 대단한 라임과 특유의 다채로운 플로우로 청자의 귀를 현혹한다. 하지만 가장 큰 공헌을 한 멤버는 크루킷 아이(Crooked I)인데 절박함마저 느끼게 되는 “Rescue Me”나 극도의 유연한 텅 트위스팅을 선보이는 “Flip A Bird” 등등 그의 기술과 가사, 플로우는 이 괴물 집단의 화학작용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한편, 가장 과소평가되는 조 버든(Joe Budden) 역시 때로는 절제하며 다른 팀원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내어주고, 때로는 폭발적으로 자신의 기량을 과시하며 각 트랙에 적절한 밸런스를 선사한다. 이 앨범의 랩 퍼포먼스는 거의 완벽에 가깝다. 자그마한 흠이라면, 가끔 거슬리는 후렴구의 빈약함이나 벌스의 잘못된 분배에서 빚어진 랩의 압축이다. 특히, 후자가 안타깝다. 여기서 랩의 압축 문제는 미리 3개의 벌스로 디자인된 비트에 4명의 멤버가 랩을 할 때 하나의 벌스에 두 엠씨가 교차로 랩을 주고받는 것을 가리킨다. 몇몇 싱글 컷을 노린듯한 트랙에서는 이것이 어느 정도 용인되지만, 앨범 전체에서 이 문제를 너무 자주 반복한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압축된 하나의 벌스에 두 명의 멤버가 주고받는 랩들이 가끔 서로 부딪히거나 조화롭게 어울리지 못하고 억지로 채워진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또 하나 아쉬웠던 점은 “Move On”이나 “Raindrops”, “Pray” 등등과 같은 좀 더 그들의 내면을 살펴볼 만한 트랙이 적었다는 것이다. 물론, 앞의 트랙들과 연장선에 있는 “Good bye”나 재치있는 컨셉트의 “Hammer Dance”와 같은 흥미로운 곡들이 있지만, 이 앨범은 그들의 압도적인 실력을 과시하는데 너무 무게중심이 쏠린 나머지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그들의 결합과 활동, 메인스트림 입성까지의 드라마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싶다.

    에미넴은 이 앨범과 슬로터하우스를 소개하면서 “지금의 랩게임에 필요한 그룹이자 팬들이 원하는 앨범”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우린 슬로터하우스같은 그룹이 더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앨범을 원한 적은 없다. 혹자는 이 앨범을 D-12의 앨범과 비교하기도 하는데, 에미넴 정규작의 확장판이었던 D-12 앨범과는 달리 슬로터하우스의 앨범은 에미넴의 입김이 상당 부분 걸쳐있지만, 그만큼 완성도 높은 확장판은 아니며, 전체적으로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작품이 되고 말았다. 프로덕션의 난잡함은 엄청난 중량감의 라임들 덕분에 제법 균형미를 가진 것처럼 착각하게 한다. 그게 이 앨범을 감상할 때 가장 큰 곤란함을 준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힙합음악에서 랩은 과연 얼마나 중요한가? 내 생각에는 엄청나게 중요하다. 비약하자면, 100점 만점에 80점쯤? 물론, 래퍼의 앨범에 한정된 얘기다. 그럼 래퍼의 앨범에서 비트가 가지는 영향력은 20%밖에 없는것인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난 그렇다고 대답하겠다. (조악한 비유지만) 훌륭한 비트를 받아 스무 걸음 더 나아간 70점짜리 래퍼의 앨범이 클래식이라고 불릴 때, 그저 그런 프로덕션에 발목 잡혀 뒷걸음질치거나 제자리에 머문 만점 래퍼의 앨범은 잊힌다. 슬로터하우스는 이 앨범에서 발목을 잡혔지만, 그들의 전설적인 스킬 덕분에 간신히 뒷걸음질치는 것은 면했다. 그들에게도 힙합 팬들에게도 어느 정도는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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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YGA (2013-11-23 12:46:45, 112.144.245.***)
      2. 비트는 Slaughterhouse음반보다는 별로였고 랩은 확실히 좋았고 하지만 음반 퀄리티는 Slaughterhouse가 더좋아요
      1. Messlit (2012-09-17 23:39:39, 175.223.2.***)
      2. 초반부에... 음? 내가 제대로 듣는거 맞나;하다가 그래도 갈수록 포텐이 터져서...ㅋ
        Throw it away같은건 지릴뻔하기도하고... 뭐 기대만큼은 아니었지만 나쁘진 않았던거 같아요
        아쉬운점이라면 버스타라임즈나 에미넴의 피쳐링에서 스킬을 경합하는 그런 느낌을 받을줄알았는데 뭐랄까... 제일 아쉬운 트랙들이되버렸다는거;?
      1. vinie (2012-09-13 23:23:35, 110.8.14.*)
      2. 비트의 3분의1은 진짜 최악이더군요... 도대체 누구의 입김에 의해 초이스된
        프로덕션이진 모르겠지만 도무지 납득할수없는 인스의 연속~
        죽여주는 랩도 똥같은 비트에 의해 지극히 평범해질수있다는 좋은예를 보여준 앨범.
      1. 사도 (2012-09-12 13:10:32, 173.55.154.***)
      2. 셰이디랑 계약했으면 나름 라디오 히트정도는 하나 만들어서 판매량이라도 많기를 바랬는데 비트들이 기대보다 이하였습니다. 랩은 당연 괴물.
      1. co.wic (2012-09-11 00:12:24, 210.106.208.***)
      2. 조엘오티즈의 쫄깃한 랩에 한창 꽂혀있는지라, 재밌게 듣고 있네요. 저도 물론 훨씬 타이트한 완성된 앨범이라는 결과물을 원하긴 했지만, 랩만으로 쾌감 느껴지는 앨범이 얼마만인가- 라며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리뷰 잘 봤습니다.
      1. WHEB (2012-09-10 23:50:36, 121.88.209.***)
      2. 으어...정말 크루킷이랑 로이스가 랩 할때마다 실신하는줄 알았습니다.
      1. Lafayette (2012-09-10 21:33:56, 124.111.242.***)
      2. 한창 비트를 쓰레기통에서 들고온듯했던 나스가 기억나는 앨범.

        그렇지만 진짜 넷의 랩은... 엄청났어요.
        각자 개개인도 뛰어나지만 그 개개인의 뛰어남이 전혀 서로에게 마이너스가 안되는..
      1. disaster (2012-09-10 20:10:31, 211.45.56.*)
      2. 리뷰와 같은 이유로 혼란스러워하며 들었습니다
        그러나 랩이 주는 원초적인 즐거움이 워낙 강했던지라
        개인적으로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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