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외 리뷰] Chino XL - RICANstruction: The Black Rosary
- rhythmer | 2012-10-17 | 13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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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Chino XL
Album: RICANstruction: The Black Rosary
Released: 2012-09-25
Rating:
Reviewer: 양지훈
2012년 10월, 현 시점에서 가장 현란한 랩을 구사하는 랩퍼가 누구인지를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본 떡스 앤 하모니(Bone Thugs-N-Harmony)와 트위스타(Twista)처럼 전성기를 넘긴 이들부터, 메인스트림에 갓 진출한 MGK, 언더그라운드의 랩 달인 테크 나인(Tech N9ne)에 이르기까지 빠른 랩에 능한 이들이 막연하게 떠오를 수도 있고, 고스트페이스 킬라(Ghostface Killah), 버스타 라임즈(Busta Rhymes) 등 세월의 흐름에 굴하지 않는 롱런의 아이콘도 정답이 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정도만 언급한다면, 출중한 기량에도 과소평가를 받은 인물 하나를 빠뜨리는 셈이 된다. 바로 치노 엑셀(Chino XL)이다. 놀라울 정도로 완벽한 딜리버리, 멘사 회원이라는 꼬리표에 걸맞은 다양한 단어의 활용, 그리고 끝없는 비유를 통해 실력을 검증받은 치노가 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할 이유는 조금도 없다. 6년 가까운 공백으로 인해 대중과 더욱 멀어졌을 뿐, 장담컨대 그의 랩이 놀랍지 않았던 순간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새 앨범이 발매되기 전까지 정식 싱글 발매, 혹은 불법적인 경로를 통한 유출 등으로 공개된 대여섯 곡만 들어봐도 그의 실력은 여전히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는 참으로 비범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마스터링, 투어, 그리고 어린 딸의 암 투병 등의 이유로 치노는 앨범 발매 날짜를 수차례 번복했다. 그러나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팬들의 인내심이 슬슬 한계에 이르렀을 무렵에 가까스로 공개된 [RICANstruction: The Black Rosary]에는 이 모든 상황을 뒤집을 막강한 트랙들이 담겨 있다. 무려 35개의 곡을 두 장의 CD에 담아 스킷(skit), 잔잔한 랩, 현란한 랩을 번갈아가며 배치시켰는데, 이러한 구성은 긴 러닝타임에서 생길 수 있는 지루함을 방지하려는 흔적이라 보면 된다. 오랜 세월 치노 엑셀을 주시한 사람이라면, 무엇보다 믿을만한 프로듀서를 활용했다는 점이 고무적일 것이다. 치노 엑셀의 랩을 받쳐주지 못하는 비트가 고질병으로 지적되곤 했던 과거를 돌이키면, 이번 앨범의 비트는 그의 커리어를 통틀어 최고 수준이다. 최근 오씨(O.C.)와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다시 한 번 샘플링의 달인임을 입증한 아폴로 브라운(Apollo Brown), 요즘 잘 나가는 언더그라운드 프로듀서 포커스(Focus), 자신의 앨범에 참여했던 치노에게 잘게 쪼개진 드럼("Closer to God")으로 화답한 오 노(Oh No) 등이 주인공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는데, 비록, 최상으로 불릴 만큼 완벽함을 유지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장족의 발전임에는 틀림없다. 알카홀릭스(Tha Alkaholiks)의 멤버 이-스위프트(E-Swift)는 리얼 드럼과 빠른 랩의 조화를 통해 타이트한 분위기를 극대화시켰고("Have 2"), 치노의 옛 앨범 크레딧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었던 이름인 닉 위즈(Nick Wiz)도 이번만큼은 허약하지 않은 비트("N.I.C.E.")를 제공하며 서른다섯 곡의 거대한 여정에 한 몫을 한다.
매 앨범에 등장했던 가족사와 관련된 곡은 이번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어린 나이에 암 투병 중인 딸을 소재로 한 "Father's Day", 어머니와 의붓아버지 때문에 불운했던 유년 시절을 회고하는 "Mama Told Me"가 대표적인데, 이는 치노가 구사할 수 있는 랩이 공격적인 스타일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기도 하다.
하지만 팬들이 누구보다 원하는 것은 감성적인 트랙이 아닌, 남성미가 넘치는 강한 랩임을 치노 자신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앨범 전반에 걸쳐 감성에 호소하는 랩보다는 스피디하고 타이트한 랩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으며, 수시로 등장하는 '청자를 압도하는 랩'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아예 자신감을 노골적으로 과시하는 트랙이 상당수 배치되어 있다. 코러스 없이 90마디를 달리는 "90 Bars of Intervention"은 듣는 이까지도 숨이 차게 만든다. 특히, 이 곡에서 계속 터져 나오는 직유와 은유의 반복은 무척 흥미롭다. 영화 [스타트랙]의 불칸 족(I have no emotion like I'm a Vulcan like an Egyptian sultan), 구글 사이트(I could go on forever like Googling the word Google), 영화 [록키 4]에서 이반 드라고를 상대하던 록키(Training like Rocky to fight the Russian) 등 번뜩이는 아이디어의 비유로 가득한데, 타이트한 랩에 심취하다가는 이러한 재밋거리를 놓치기 일쑤이니 꼭 챙겨보길 권한다. 호스 슈 갱((The Horse Shoe Gang) 멤버들의 현란한 랩을 거쳐 치노 가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Buried in Vocabulary"는 유출됐을 때부터 팬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았던 곡이며, 싱글 컷 된 "N.I.C.E."의 두 번째 벌스도 타이트함의 극치이다. 자신과 고(故) 빅 퍼니셔(Big Punisher)를 푸에르토리칸(Puerto-Rican)의 왕이라 묘사한 "Kings"는 아예 제목부터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곡이다.
게스트들의 참여도 흥미롭다. 참여한 이들 중에는 호스 슈 갱처럼 주인공의 힘을 부각시키기 위한 희생양(?)이 있는 반면에, 치노와 동등한 위치에서 실력을 과시하는 이도 있다. "Hell Song"에 참여한 테크 나인은 치노와 불꽃 튀는 라임 대결을 펼치며, 앞서 언급한 "Kings"에 수록된 빅 퍼니셔의 랩은 미공개 트랙 "Bx Niggaz"의 일부분을 따온 것인데, 이 역시 치노 엑셀의 랩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바이퍼 레이블의 간판 이모탈 테크닉(Immortal Technique)의 랩도 빼놓을 수 없으며("Arm Yourself"), 앨범 끝자락에는 비-리얼(B-Real) 등 라티노 랩퍼들을 대거 참여시킨 전형적인 올스타 형식의 트랙 "Latino's Stand Up"을 배치하기도 했다.
투팍(2Pac)의 [All Eyez on Me]나 노토리어스 비아이지(The Notorious B.I.G.)의 [Life After Death]처럼 곡 하나하나가 완벽한 2CD는 아니지만, 듣는 이를 랩으로 압도하는 곡의 수가 이렇게 많았던 앨범이 과연 힙합 역사에서 몇 장이나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막강한 작품이다. 집중해서 듣다 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현란한 플로우가 난무하여 청자의 혼을 수시로 빼놓는다. 최고의 비트가 깔리지 않은 곡에서도 치노는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랩'을 시전하며, 일말의 결점마저 커버한다. 두 말 할 나위 없이 2012년 최고의 '랩 스킬 집대성 앨범'이며, 하드코어 랩 애호가들은 향후 몇 년 동안 본 작에 필적하는 랩 앨범을 접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세월이 흘러도 무뎌지기는커녕 더욱 날카로운 랩을 발산하는 치노 엑셀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기립박수가 아깝지 않은 인물이고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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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unenee (2012-10-28 14:43:22, 180.69.111.**)
- Hell Song에서 치노벌스가 진짜 엄청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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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e.nNY (2012-10-24 20:53:58, 14.52.230.***)
- 별로일 거 같아서 안 들으려고 했는데
안들을수가없네...사야게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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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ukka (2012-10-23 14:46:02, 110.70.23.**)
- 아이튠즈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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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ggs (2012-10-23 13:58:37, 61.77.71.***)
- 어디서들 들으시는건가요...?
아이튠즈스토어에도 없고 국내에 수입도 안된거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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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민 (2012-10-19 01:53:40, 125.132.202.***)
- 플로우는 요동치지만 중심을 잃는 법을 모르고,
머릿속으로 들리는 라임들에서 벌스가 끝날때마다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랩을 시전합니다.
'이게 하드코어고 나야'라는 듯한 치노 엑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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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현 (2012-10-18 18:17:59, 1.247.241.***)
- 올해는 풍년이군요;;; Killer Mike의 앨범만큼 좋은 작품은 나오기 어려울거라고 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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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esslit (2012-10-17 18:27:03, 211.246.77.***)
- 하루에 세번씩 돌려듣고있지요
지금껏 나온 치노 앨범중에 제일 좋은거같아요
기다린 보람이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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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SM (2012-10-17 17:42:21, 175.209.134.***)
- Chino XL 신보라뇨... 감동이네요 갑자기 얻어맞은 기분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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