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리뷰] 비-프리 - 희망
- rhythmer | 2012-10-22 | 31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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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비-프리(B-Free)
Album: 희망
Released: 2012-10-12
Label: 하이라이트 레코즈
Rating:
Reviewer: 남성훈
비-프리(B-Free)의 [희망]은 비슷한 시기에 발매된 제이통(J-Tong)의 [모히칸과 맨발]과 서로 다른 극점에 위치한다. 제이통이 치밀하게 계산된 콘셉트 체화 및 그것을 내, 외부로 극대화하는 것에 힘을 쏟고 성과를 얻었다면, 비-프리는 특정 콘셉트를 철저하게 배제하고 난 후 자연스레 드러나는 개인감정의 나열에 앨범 대부분을 할애한다. 랩의 가장 흔한, 그렇지만 그만큼 마음을 흔들기도 어려운 방향성 안에서 비-프리는 놀랍게도 장르앨범 전형의 마감을 뛰어넘어 한국힙합이 펼쳐내는 표현의 범주를 한 뼘 넓힌다. 특유의 표현법을 통해 이제는 세상을 떠난 원맨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음악이 담고 있던 진한 정서, 즉, 부조리한 사회/현실 속 구질하고 애달픈 청춘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랩/힙합 장르 방식으로 재현해내는데 성공한다. 그렇다면, 그가 어떻게 이런 성취를 이뤄냈는지 조금 더 파고들어 보자.비-프리는 크게 세 단계를 거치면서 앨범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에 설득력을 부여하며 청자의 마음을 뒤흔든다. 우선 그는 기존의 랩퍼 판타지를 싹 걷어내고 있다. 이럴 때 보통 나타나는 비루함을 생활형 직장인에 자신의 위치를 대입시키는 ‘출장’, ‘행사’, ‘고객 만족’, ‘사무실’, ‘사장/이사’ 같은 단어들로 극복해낸다. 듣는 이의 옆, 즉 현실 속에 자연스레 자신을 위치시키는 것이다. 이런 장르 전형에서 살짝 벗어나는 단어들의 활용은 비-프리가 사용하는 표현법 중 가장 주목할 부분이기도 하다.
‘클럽이든 행사이든 어디든지 출장 (Do that)’, ‘돈이 없다 해도 너는 VIP. 고객만족을 위해 매일마다 노력하지 (Loco2)’, ‘오늘도 작업하다 보니 아침 여섯 시, 열심히 일했으니 이젠 나도 자야지 / 그렇게도 기다리던 행사가 또 취소돼 (AwwSh*T)’, ‘어느새 내가 이제 직업으로 랩 해 (Good Time)’, ‘팔로 형은 우리 회사 사장, 나는 이사 (Do Your Thing)’, ‘오늘도 팔로형과 형의 차를 타. 또 급하게 우린 어디론가 공연하러 가/ 행당역에 자리잡은 우리 작은 사무실 (넘어가)'
두 번째 단계에서는 자연스레 현실 속에 위치한 자신이 부조리한 현실에 힘겹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욕심내지 않는 평범한 삶을 꿈꾸며 가능한 선에서 온 힘을 다하지만, 보이지 않는 벽에 연이어 부딪히는 모습은 영락없이 이른바 ‘삼포 세대’의 잔상과 겹친다. 비-프리가 표현해내는 좌절, 슬픔, 두려움, 외로움과 같은 정서가 사회 안에서 치열하게 생활하는 이가 겪는 ‘허무함’이 원인인 것, 그리고 그것이 단순히 음악가의 넋두리를 넘어 사회의 어떤 세대를 대변하는 설득력과 공감을 얻는 것은 앞서 말한 표현의 첫 단계를 무리 없이 거쳐왔기 때문이다. 단 한 번도 직접 사회 시스템을 공격하지 않지만, 현실과 인과관계로 엮인 개인의 진한 정서를 표현해냄으로써 사회의 부조리함을 드러내는 일종의 사회학 보고서로 작용하는 데 무리가 없다.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면서 먹고 싶은 거 먹고 사고 싶은 거 사면서 내가 사랑하는 그녀를 내 품에 안고서 가족들을 돌보며 조용히 살고 싶었어 (Talk to Me)’, ‘이러다가 결혼 못할까 두려워 난 (Highs and Lows 2)’, ‘가만히 숨만 쉬어도 돈이 어디선가 빠져가, 오늘도 담배로 대충 때우는 내 아침밥 / 2년 대학 나와서 취직하기도 힘들고, 하루 종일 일해봤자 얼마 되지 않는 돈 (AwwSh*T)’, ‘서울이란 도시에서 살아가는 건 살아남기 위해 죽어가는 것 (Coffee Break)’, ‘매일 고생해도 월세 내기가 너무 빡세 / 나이가 들면 이런 삶을 후회하진 않을까? (Good Time)’, ‘나의 부모님이 원했던 건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과 비슷하진 않을까? 안전한 직장, 행복한 가족과 따듯한 집, 편히 이동할 수 있는 차, 만약 네가 그런 삶을 살 수 없다면 (New Year’s Eve)’
세 번째 단계는 바로 비-프리가 앨범에서 표현해내고자 한 주제인 ‘희망’의 표현이다. 그것은 앨범 전체에서 ‘위로’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같은 맥락에서 결론과 같은 트랙인 “Anything”의 도입부 “힘들지? 원래 다 그런 거야. 나는 안 힘들 것 같아?”가 대상을 향한 교조적인 자세로 느껴지지 않고 진실한 위로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앞서 말한 화자의 위치와 상황이 큰 무리 없이 듣는 이에게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첫 트랙인 “Talk to Me”에서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는 내용을 그려내다가, 후반부 “Anything”에서 사회 속 숨겨진 청춘에 위로를 건네는 등, 그 대상을 점점 확장해 나가는 것 역시 흥미로운 점이다. 앨범의 주제를 보여주려는 치밀한 계산이나 강박감 없이, 비-프리 고유의 표현법이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통해 ‘진심’이라는 모호하고 표현하기 어려운 정서를 앨범의 코드로 만들어 낸 것이 [희망]의 가치를 결정지은 것이다.
앨범의 감상 포인트가 강하고 명확하게 존재한다는 것이 [희망]을 들어봐야 할 이유가 되겠지만, 이와는 별개로 아쉬운 지점이 존재하는 것 역시 부정하긴 힘들다. 랩을 돋보이게 하는 공간감을 만든다고 생각하기엔 여러 부분에서 풍성함이 부족한 사운드, 그리고 “Talk to Me”, “Loco2”, “What’s Love”, “Anything”, “New Year’s Eve” 등의 트랙이 가진 매력적인 어쿠스틱 느낌의 프로덕션이 몇 곡에 의해 앨범 전체의 색으로 자리 잡지 못한 점은 아쉽다. 더해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영어혼용 랩은 캐릭터 고유의 무드를 만드는 효과가 있을진 모르지만, 한국어 랩이 선사한 놀라운 감흥을 얼마나 영어 랩이 보여주고 있는가 생각하면, 그 효용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같은 이유로 영어로 쓰인 “Leaving”이 과연 [희망]이 제공한 감상의 여운을 잡아 끌며 마무리하는 마지막 트랙의 기능을 적절하게 수행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아쉬운 구석이 있다.
그럼에도 이런 몇몇 아쉬움이 사소하게 느껴질 정도로 비-프리는 랩/힙합 장르 팬을 만족하게 하기에 충분하면서 사회의 다양한 이면을 잡아낸 작품을 만들어냈다. 특히, 애잔한 청춘의 일상을 장르적으로 풀어낸 작품을 항상 갈구하는 음악 애호가들에게도 언제든 발견되고 환영받을 진한 감상의 경험을 제공하는 앨범을 완성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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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정준 (2012-12-04 18:13:27, 122.34.149.***)
- 비프리의 장점은 역시 가사와 랩이 간단하고 쉽고 전달이 잘된다는거...
그럼에도 가볍지 않다는거...
진정성, 공감대 이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은 좋은 앨범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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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dghs (2012-12-02 20:02:30, 118.219.19.*)
- 이제야 사서 들었는데 정말 가사가 주옥같더군요. 비프리 랩도 정말 좋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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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ukka (2012-10-23 14:47:42, 110.70.23.**)
- 아 진짜 비프리는 영어랩만 좀만 줄이면 더 멋질텐데 항상 그게 아쉽.. 어쨌든 이번 앨범 잘 듣고있습니다. 가사가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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