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리뷰] 허클베리피 - gOld
- rhythmer | 2014-04-25 | 23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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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허클베리피(Huckleberry P)
Album: gOld
Released: 2014-03-28
Rating:
Reviewer: 남성훈
프리스타일 랩(Freestyle Rap)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여전히 허클베리피(Huckleberry P)를 그것에 묶어두려 하거나, 즉흥 랩퍼 이미지를 앨범에서 극복하는 것이 그의 당면과제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이제 그에게 억울하거나, 무시할 이야기일 것이다. 따스한 느낌의 소울피쉬(Soul Fish) 표 프로덕션에 아기자기한 이야기로 사회의 치부를 살짝 건드리는 피노다인(Pinodyne), '빈티지(Vintage)', '레트로(Retro)' 코드가 읽히는 프로덕션 위에 동료 수다쟁이와 함께 유머와 조롱을 기반으로 힙합키드의 낭만을 펼친 [Get Backers], 그리고 홍대 힙합의 후계자를 작정하고 자처하는 솔로 아티스트의 모습까지, 허클베리 피는 몇 활동반경을 앨범 단위의 결과물로 구축했음은 물론, 각 영역의 감흥을 훼손시키지 않는 선에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신작이자 첫 정규 솔로 작인 [gOld]는 그의 활동 영역 중 비교적 가장 성과가 적었던 솔로 앨범의 연장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솔로 데뷔작 [Man In Black]은 안정적 앨범 진행과는 별개로 현장감과 산만함 사이에서 정돈되지 못했던 랩 때문에 추구하는 방향성에 완전히 몰입하기는 힘들었던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미국 유명 랩퍼를 연상시키는 플로우 설계를 한국어라임과 함께 유연하게 재현하던 유행과는 다르게, 명확한 라임으로 전달력을 지켜가며 속도감을 부여한 초기 한국힙합의 랩 작법에 나름의 세련미를 부여하려 했던 스타일이 별다른 성취를 이루지 못했던 점은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gOld]의 감흥이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이러니하면서 한편으로는 굉장히 통쾌하다. 허클베리 피는 전작에서 애매하게 구현되었던 ‘현장감’과 흥을 돋우는 것 이상의 효과와는 거리가 멀었던 특유의 랩 스타일의 방향을 틀지 않고 본작에서 그야말로 극단까지 끌어올린다. 단순히 미진했던 완성도를 극적으로 높였다는 수준을 넘어 듣는 이의 감정선을 무시하듯 몰아치는 ‘기-승-승-(전)’ 식 앨범 구성은 황홀한 공감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이런 식의 감상이 가능한 핵심적 이유는 앨범의 모든 곡이 결국, 명성이 자자한 그의 솔로 무대에 온전히 수렴하고 있기 때문이다. 앨범을 여는 자전적 이야기인 “그 때.”, “Page 64”, “SYEAH!(What’s My Name?)”조차 무대에 오르기 위한 과정 외에는 과감히 떨어내는 직관적 진행을 보여준다. 이후, “Rap Badr Hari”, “분신”, “THE KID” 세 트랙을 통해 프로덕션과 가사 모두 무대 위 퍼포먼스의 현장감 전달에 온 힘을 집중하는데, 초반 6곡 약 20분의 쉼 없는 과잉이 내는 효과는 상당하다. 샘플링 작법의 매력적인 붐뱁(Boom Bap)프로덕션과 즉흥적 현장감을 내세운 프로덕션의 적절한 조합은 이러한 효과를 돕는다. 무엇보다 이 구간의 간과할 수 없는 성취는 그가 솔로 작을 통해서, 또 코어한 힙합 앨범을 추구하는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대부분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장황한 설명이나 태도 선언을 위한 힘 조절 없이 깔끔하게 공연장의 열기를 과잉의 미학으로 담은 것은, ‘과연 지역적 의미의 장르 씬(Scene)이 존재는 하는가?’, ‘세대를 나눌 만큼 지속해서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 일정한 흐름이 있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간접적이지만, 명쾌한 그만의 답변이다. 무대를 만들고, 무대를 위한 작품을 만들고, 다시 무대에 서며 관객을 특정 지역으로 끌어들이는 가장 기본적인 지역 기반의 자생적 장르 씬의 조건을 설명이 아닌 청자를 현장에 옮겨 보여주듯 그려냈다. 언더그라운드에서 장르 앨범을 발표하고 무대에 섰던 경력이 메인스트림에서 힙합과 장르적으로 거리가 먼 랩 음악을 하기 위한 이력서가 되어 버린 현실에서 본인의 랩/힙합 공연 브랜드를 쥐고 명성을 쌓고 있는 허클베리 피는 굉장히 독특한 구성미로 홍대 힙합 판의 계승자임을 강조하는 데 성공한다.
정확히 중반 이후는 이번 앨범에 으레 가질법했던 기대가 그대로 반영된 충분히 예상 가능한 트랙들로 꾸며져 있지만, 직전까지의 몰아치는 진행의 여운 덕분에 생명력을 얻는다. “불효막심”에서 우월함을 뽐내고, “P.T.F (Press The F5) (Remix)”, “Do !T (Cool Kids pt.2)“을 통해 재치 있게 힙합 아티스트로서 자세를 견지하고, “GoLD”, “그 것.”을 통해 낭만을 그려내는 구성은 그 자체로도 완성미가 있지만, 전반부의 ‘무대에 목숨 건 랩퍼’를 향한 당위성을 자연스레 부여받아 그 기능이 명확해졌다. 구차하지 않은 방식으로 말이다. 그중 가장 주목할 트랙은 이그니토(Ignito), MC 메타(MC Meta)가 함께한 “무언가(無言歌)”다. 미니멀한 드럼 비트에 두 참여 랩퍼가 절제된 듯 분노를 꺼내 보이는 4분간은 마치 의식을 치르듯 압도적이다.
다만, 이 곡을 포함하여 앨범의 참여 랩퍼 대부분에게 곡의 하이라이트를 내주고 있다는 것은 그의 가벼운 듯 쏟아내는 랩 스타일이 곡 전체를 지배하지 못했을 때 보이는 약점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많은 양을 속도감 있게 뱉어내는 허클베리 피의 랩이 쌓여 생기는 피곤함을 그럴듯하게 덜어내고 가는 기능도 상당해 앨범 감상에 있어서는 딱히 단점으로 읽히지 않는다. 다양한 색으로 경력을 꾸준히 쌓아가고 있는 허클베리 피는 과감하면서 군더더기 없이 차별화된 구성미에 탄탄한 개별 곡의 프로덕션과 랩의 완성도를 더해 장르적 쾌감을 충분히 녹여낸 앨범을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각기 다른 접근법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화학적 결합을 통해 굉장히 평이할 수 있었던 앨범의 콘셉트를 공감각적 경험으로 재구성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은 높이 치켜세울만하다. 그리고 이 앨범이 그의 경력 꼭대기에 올라가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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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mile (2014-05-10 01:48:42, 211.119.125.**)
- 소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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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dis (2014-04-29 14:38:16, 175.223.12.**)
- 오랜만에 등골이 서늘하니 소름 돋는 작품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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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LE (2014-04-28 11:09:11, 61.101.34.**)
- 프리스타일로 유명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가사의 센스는 있지만
랩이 전혀 안 그루브한듯 저는 음악을 떠나 랩퍼로써 랩만 보자면
정말 아니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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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정준 (2014-04-26 15:00:37, 1.232.238.***)
- 헉피의 프리스타일이야 뭐 항상 놀랍구요,
발표하는 앨범 및 결과물들도 항상 좋은 이야깃거리가 많고,
그 이야기들을 풀어가는 능력도 뛰어난 것 같아요.
제 기준에서는 정말 잘하는 MC 입니다. 헉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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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dgh (2014-04-26 03:28:27, 222.233.162.**)
- 요즘 정말 자주 돌려듣는 앨범입니다. 기대를 많이 했는데 그 기대치 이상이더군요.
허클베리피란 랩퍼를 보면 좋은 의미로 참 욕심이 많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프리스타일 랩퍼로의 꼭대기에 서 있으면서도 피노다인으로 프리스타일 랩퍼의 단점을 가볍게 무시해버렸고, 솔로작을 통해 힙합 본연의 모습까지 확고하게 보여주었으니까요. 거기다 겟 백커즈, 하이라이트 컴필 등의 팀 단위 결과물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죠. 지금까지의 행보도 만족이고 앞으로도 꾸준히 기대할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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