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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외 리뷰] Daye Jack - No Data
    rhythmer | 2017-04-25 | 7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Artist: Daye Jack
    Album: No Data
    Released: 2017-03-24
    Rating:
    Reviewer: 강일권









    힙합 역사 속에서 범죄, 마약, 섹스를 주요 소재로 삼지 않는 앨범은 매우 드물다. 그리고 해당 범주를 벗어난 내용의 힙합은 이른바 건전한 랩으로 분류되고 무시당하기 십상이었다. 이는 힙합이란 장르가 탄생하고 성장해온 배경과도 관계 있으며, 여전히 이 같은 경향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날엔 그 주제를 다루는 방식과 수준을 비롯하여 전반적인 음악의 완성도에 따라 랩/힙합에 씐 프레임을 넘어서 호소할만한 작품들도 간간이 나오고 있다. 나이지리아 태생의 아티스트, 다예 잭(Daye Jack)[No Data]가 그런 앨범 중 하나다.

     

    본작을 관통하는 주제는 자아 수용이다. 주체는 십 대와 갓 이십 대에 접어든 층이며, 다예 역시 여기에 속한다. 그는 어른들, 좀 더 적확하게는 아날로그 세대의 세계 속에 던져진 본인 또래의 디지털 세대가 느낄 혼란을 주소재로 삼았다. 말과 행동, 심지어 패션 스타일까지 간섭하는 저들의 세계에 좀처럼 어우러지지 못하는, 혹은 어우러지길 거부하는 이들의 고민을 향유하고 공감하는 맘을 전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지금의 자신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곧 (긍정적 의미에서의) 흑인성을 흔쾌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물론, 다예의 논조가 정치적으로 깊이 들어가있는 것은 아니며, 분위기도 매우 밝은 편이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조롱과 멸시 섞인 호칭 속에서 자라야 하는 어린 흑인들에 관한 현실 비판은 날카롭고 적잖은 울림을 준다. 그런 의미에서 “Bully Bully” 같은 곡은 그들에게 바치는 찬가와도 같다. 더불어 다예는 섹시한 이성 친구와 사귈 수 있는 방법, 돈을 많이 버는 방법 등, 이제 막 성인이 된 시기에 갖게 되는 원초적인 질문들을 중간마다 던지며, 앨범의 무드를 보다 가볍게 가져간다. 공학도 출신답게 '인공지능(A.I.)'을 인터루드(Interlude) 컨셉트로 내세운 점도 흥미롭다.

     

    그런데 무엇보다 본작의 강점은 다예의 퍼포먼스와 프로덕션이 어우러진 음악 그 자체다. 그는 가사적으론 2000년대를 논하지만, 프로덕션적으론 ‘80년대와 ‘90년대를 적극적으로 껴안았다. 그 결과, 힙합에 기반을 두고 알앤비, 펑크(Funk), 디스코, 8비트, 일렉트로닉, 신스 팝 등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그렇다고 해서 본작의 음악이 레트로 리바이벌이란 얘긴 아니다. 당대 유행한 장르를 소스 삼아 오늘날 사운드로 완성했다고 보는 편이 맞겠다. 과거의 향수를 불러오면서도 굉장히 미래지향적이다. 흡사 퍼렐(Pharrell), 프랭크 오션(Frank Ocean), 다프트 펑크(Daft Punk), 루디멘탈(Rudimental) 등의 음악에서 레트로한 감성과 멜로디 및 어레인지의 엑기스만 뽑아서 섞어놓은 것 같은 음악은 레퍼런스의 범주를 벗어나 개성 있고 제대로 꽂히는 감흥을 잔뜩 자아낸다.

     

    [No Data]의 수록곡들은 신나고 멜로딕하며, 상당한 몰입도를 자랑한다. 그만큼 특별히 흠잡을 곳 없이 탄탄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Deep End (Jayvon Remix)” - “Finish Line” – “Data Love Interlude” – “Lady Villain” – “Bully Bully”로 이어지는 구간은 매우 짜릿하다. 다예 잭의 싱어송라이팅 능력이 가장 빛을 발한 지점이기도 하다. 한편, 제목처럼 로우한 붐뱁 힙합을 들려주는 “Raw”도 흥미롭다. 랩퍼로서 강인한 모습을 과시하는 유일한 브래거도치오(braggadocio: 자기 과시, 특히, 일종의허풍을 가미한 과시) 가사도 그렇지만, 붐뱁의 외피만 빌렸을 뿐, 전반을 감싸는 사운드는 다른 곡들과의 조화를 고려한 덕에 이질감 없이 이어지고, 효과적으로 분위기를 환기한다.

     

    [No Data]는 적당히 신선하고 적당히 펑키하며, 적당히 대중적이다. 그런데 이 적당히가 모여서 아주 탄탄한 완성도로 귀결되었다. 한때 힙합 씬에서 무시받던 류와는 전혀 다른 수준의 팝 랩 앨범이기도 하고, 실험적이지만, 적극적으로 대중과 소통하고자 하는 블랙 뮤직 앨범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느 쪽이든 분명한 건 올해 상반기에 가장 주목해야 할 앨범 중 한 장이라는 점이다. 최근 다예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좀 더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래서 현재 그러한 곡들을 작업 중이라고 한다. 차기작에 대한 기대치를 더욱 치솟게 하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본작을 들었다면, 이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게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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