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리뷰] 제네 더 질라 - 지금 다음 지금
- rhythmer | 2025-10-09 | 7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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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제네 더 질라(Zene The Zilla)
Album: 지금 다음 지금
Released: 2025-09-16
Rating:
Reviewer: 황두하
[94-24](2024)는 제네 더 질라(Zene The Zilla)의 경력에 전환점이 된 앨범이다. 특유의 유쾌한 캐릭터와 자기 과시로 점철되었던 전과 달리, 트레이드 마크였던 녹색 머리를 검게 물들이고 진중한 태도로 삶을 돌아보는 모습은 환골탈태에 가까웠다. 또한 기존의 스타일을 유지한 채로 실력이 월등히 발전된 랩은 변신에 설득력을 더했다.
EP [지금 다음 지금]은 전작의 기조를 이어간다. [94-24]에서는 과거를 되짚었다면, 이번에 집중하는 것은 ‘지금’이다. 쉽지 않은 삶 속에서 현재는 절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고, 말보다는 행동으로 부지런히 실천한다. “떠”, “Talk Less”, “금세” 등은 앨범의 주제를 대표하는 곡들이다.
제네 더 질라는 말을 하는 듯한 어투로 랩을 한다, 플로우가 이질감 없이 편안하게 진행되는 와중에 기술적 쾌감이 자연스레 전달된다. 일례로 “Talk Less”에서는 어쿠스틱 기타와 허밍 보이스로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비트 위로 힘을 빼고 랩을 툭툭 내던진다. 덕분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교조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가장 인상적인 곡은 “산 넘어 산”과 “언제였을까”다. 전자는 재즈풍의 피아노 라인과 808 드럼이 어우러진 세련된 비트, 고난이 이어지는 삶을 말맛이 살아있는 어휘로 표현한 가사, 낮게 읊조리며 그루브를 만드는 랩으로 백미를 장식하는 빌 스택스(Bill Stax)의 벌스가 어우러져 마지막까지 집중하게 만든다. 후자에서는 되돌리지 못하는 삶 속의 순간들을 열거해 시간의 소중함을 상기시키며 묘한 여운을 남긴다.
다만, “초코나무숲”은 아쉽다. 지금의 제네 더 질라를 이루는 것들을 다소 두서없이 내뱉는데, 표현이 직관적이지 않아서 바로 와닿지는 않는다. 인트로인 “지금 다음 지금” 이후로 이어지는 곡인 탓에 앨범에 몰입하는 데에 방해가 된다. 단어 사이에 여백을 두어 엇박자를 노린 듯한 랩도 설익은 느낌이다. 그래서 세 번째 곡인 “떠”부터 본격적으로 앨범이 시작하는 것 같다.
앞서 언급한 빌 스택스 외에 다른 게스트의 참여는 감상을 저해한다. “수취인불명”의 화나는 밋밋한 플로우 탓에 리듬감을 느끼기 어렵고, “금세”의 염따는 비트와 따로 노는 듯한 벌스로 이물감을 느끼게 한다.
제네 더 질라는 색깔이 확실한 래퍼다. 여기에 [94-24]를 통해 진중함을 덧입혔고, 덕분에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지금 다음 지금]에는 제네 더 질라의 ‘지금’이 담겨있다. “초코나무숲”의 패착과 게스트들의 안일한 벌스처럼 아쉬운 점도 물론 있다. 그럼에도 제네 더 질라의 새로운 매력을 느끼기엔 충분하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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