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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리뷰] 히피쿤다 - Tundra
    rhythmer | 2025-09-25 | 12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Artist: 히피쿤다(Hippie Kunda)
    Album: Tundra
    Released: 2025-08-31
    Rating:
    Reviewer: 황두하









    [Tundra]의 첫 곡 “파수꾼”에서 히피쿤다(Hippie Kunda)는 자신을 ‘이 황무지를 지키는 당당히 지키는 몇 안 되는 파수꾼’으로 상정한다. 이는 현 한국힙합 씬의 상황과 겹쳐지면서 거창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앨범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다. 씬, 가정, 사회 등 크고 작은 집단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추구해 나가며 겪은 부침들을 가감 없이 풀어낸다.

    특히, “Pluto”와 “너랑 하는 게 내 소원”에서는 여성에 대한 편견과 은근하게 이뤄지는 성적 대상화를 고발하고, 이에 격렬히 저항한다. 더불어 “Tindrum”, “Hunger”, “Guillotine”, “Torment” 등에서는 각기 다른 표현으로 거친 삶을 헤쳐 나가는 모습을 그려내 듣는 재미를 더했다. “Tindrum”은 뉴질랜드 의회에서 한 의원이 하카를 했던 영상을 샘플링하고, 하카 구절을 후렴으로 차용해 주류의 부당함에 맞서는 이미지를 적절히 덧씌운다.

    이야기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것은 랩이다. 히피쿤다는 라임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속도를 조절하며 리듬감을 자아내며 시종일관 랩에 집중하게 만든다. 단어마다 꾹 눌러 뱉는 발음과 탄탄한 발성 덕분에 자연스레 줄거리를 따라갈 수 있다.

    오드플립(ODDFLIP)이 전곡을 책임진 프로덕션은 히피쿤다의 랩을 적절히 뒷받침한다. 그중에서도 차가운 전자음과 두터운 베이스라인이 위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Agatha”, 중독적인 베이스와 드럼,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피아노 연주가 어우러진 “너랑 하는 게 내 소원”, 베이스와 일렉 기타 스트로크로 펑키한 리듬을 만드는 “Guillotine”은 사운드가 인상적인 곡들이다. 곡 간의 분위기가 매우 다른데, 주제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이질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Western Boots”는 아쉽다. 지난한 길을 걸어가는 상황을 웨스턴 부츠를 신고 설원을 달리는 모습에 빗대어 표현한 곡으로, 앨범 전체를 요약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컨트리 스타일을 차용한 프로덕션은 성기고, 김경호의 보컬은 특정한 형태를 모사하는 것처럼 느껴져 부담스럽다. 마디마다 높낮이 없이 쏟아내다 마디의 끝에서 음가를 올리는 랩도 리듬감을 느끼기가 어려워 당황스럽다.

    게스트의 활용에는 장단이 있다. 쿤디판다(Khundi Panda)와 이케이(EK)의 벌스는 완성도와 별개로 이야기의 사족 같다. 반면, “Tindrum”에 참여한 루시갱(Luci Gang)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여성 래퍼로서 동질감이 느껴져 곡에 이질감 없이 묻어난다.

    기나긴 여정의 결론은 나고 자란 동네로 회귀하는 “돌아가야 해 창동에”다. 벗어나려 했지만, 결국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준 곳이라는 것을 깨닫고 애증 가득한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는 따스한 감성의 비트와 롬더풀(ROMderful) 부드러운 보컬과 어우러져 묘한 감흥을 자아낸다. 하지만 “Torment”까지 고난을 헤치고 나아가다가 다른 과정 없이 귀환하는 결말이 다소 급작스럽다.

    [Tundra]는 듀오 99’ 네스티 키즈(99’ Nasty Kids)로 활동해온 히피쿤다가 처음으로 발표한 솔로 정규 앨범이다. 그는 ‘삶에 던져진 여성 래퍼’라는 특수한 상황을 개인의 입장에서 구체적인 어휘로 풀어내 자신만의 서사를 완성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을 갖춘 랩과 견실한 완성도의 프로덕션은 그의 독기에 힘을 싣는다. 아쉬운 지점도 있지만, 그의 다음을 기대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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