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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리뷰] 옵티컬 아이즈 XL - Wreckage
    rhythmer | 2011-07-01 | 37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Artist: 옵티컬 아이즈 XL   
    Album: Wreckage
    Released: 2011-06-28
    Rating: Not Rated
    Rating (2020): 
    Reviewer: 남성훈









    랩을 꾸미는 조건인 라임, 스킬, 플로우, 보이스톤 등은 랩의 수준을 결정짓지만, 어느 정도 수준이 갖춰졌을 때 그 랩을 완전히 다른 세계로 가져다 놓는 것은 드라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국힙합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은 바로 드라마다. 총을 몇 방 맞고 살아났다거나, 마약을 팔다가 교도소에서 랩을 배웠다는 이야기를 기대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음악을 접하고 시작하는 과정 자체와 활동 반경 모두 장르팬들과 대중에게도 그다지 극적이지 않다. 가리온의 [Garion2]가 완성도를 뛰어넘는 감격을 선사한 것은 오랜 공백기 동안 가리온에게 무책임하게 품고 있던 기대를 충족시키며, 그 시간이 일종의 드라마로 탈바꿈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옵티컬아이즈 XL(Optical Eyez)의 [Wreckage]는 비정규 앨범을 통칭하는 부틀렉(Bootleg)마크를 달고 있다. 사실 아티스트가 스스로 제작에 관여했다면 정규, 비정규의 경계가 도대체 어디까지인가 불분명하다. 하지만 [Wreckage]를 감상하기 전 필요한 것은 왜 이 앨범이 부틀렉인가를 아는 것이다.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불에 그슬린 테이프를 쥐고 있는 화상 입은 손이 담긴 커버가 다 말해준다.) 그는 2010년 큰 화재사고를 당했다. 집과 함께 불탄 수많은 비트와 자료들은 그의 정규 작을 위한 것이었고, 회복 후 지인들에게 데모나 모니터링용으로 보낸 것들을 수소문해 모아서 재구성한 것이라고 한다. 자, 이제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그리고 극적인 드라마가 만들어 낸 우연한 산물이든 또 다른 치밀한 재구성이든 상관없이 [Wreckage]는 대단한 순간을 꽤 많이 보여준다.

    당연히 각 트랙의 작업시기는 혼재된 듯하다. 물론, 그건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준비하던 정규 작을 위해 만들어 놓았다던 “Intro”는 평이하다 못해 민망한 라인이 넘치는 전형적인 출사표다. 하지만 이것이 멋진 장치로 기능한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는다. “Intro”의 마지막에 나오는 사고 당시 뉴스는 현실과 음악의 경계를 허물며 우리를 화재사고 그 순간으로 데려간다. 이어지는 “문을 박차고”는 그가 화마에서 문을 박차고 탈출하는 순간을 바라보는 듯 불편하다. 직접적으로 사고를 언급하지 않지만, 듣는 이의 감정을 뒤흔드는 ‘꽉 움켜쥐어, 다물어지지 않아도 누구보다 단단한 나의 주먹’, ‘발등에 불 떨어지기 전엔 알지 못한 건’ 같은 라인들은 대단하다는 말로는 쉽게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곡은 또다시 이어지는 트랙을 위한 장치로 기능한다. “문을 박차고” 나와 다시 출사표를 던지는 그가 “AVALANCHE”에서 가장 먼저 뱉는 말은 능글맞게도 ‘화려한 컴백!’이다. 잘 정돈된 라임을 힘있게 치면서 유머 섞인 자기과시를 펼치는 이 곡이 사고 전 2009년에 만들어 놓은 것임을 생각하면 더욱 유쾌하다. 구차한 설명이나 설교 없이 자신의 드라마를 펼쳐내는 재구성의 승리다. 어쩌면 [Wreckage]의 첫 세 트랙은 한국힙합에서 가장 극적인 경험일지도 모르겠다.

    비트는 소스의 한계 때문인지, 전체적으로 허술한 마감을 거친 느낌이 드는데, 덕분에 감상의 무게중심은 자연스레 랩으로 옮겨간다. 심각한 듯 정색하며 랩을 하지만, 끊임없이 냉소와 재치 중간쯤의 단어선택으로 유머를 끼워 넣는 특유의 랩을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흐름을 능숙하게 끊었다 치면서 바운스를 만드는 플로우도 준수하다. 비프리(B-Free)부터 가리온까지 게스트 진의 랩도 뛰어나다. 비트메이커로서 역할을 부각하려는 것인지, 앨범의 중간마다 삽입된 인스(Instrumental) 트랙과 4분이 넘는 “Outro (Soul Word)”는 랩에 치우쳤던 감상을 효과적으로 분산시킨다. 적절한 구성이다. 도입부 이후, 앨범은 후반부에 또 한 번의 하이라이트를 가진다. “Interlude #2 Unofficial rec”, “Interlude #3 Let me..”, “웃긴놈” 세 트랙이 만드는 공기가 그것인데, 이번엔 부틀렉 고유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비공식적인 레코딩으로, 그리고 가사를 입히지 않은 상태의 트랙으로 꾸며진 두 트랙은 불완전함에서 오는 여백의 재미를 준다. 이어지는 “웃긴놈”도 별다른 재가공 없는 부틀렉 특유의 느낌을 다른 트랙들보다 강하게 주는데, 아티스트의 씁쓸한 이면을 그려내는 내용과 잘 어우러지며 역설적인 재미를 준다.

    앨범의 마지막에 도달해서야 옵티컬아이즈는 “20100128 TTFT”를 통해 직접적으로 화재사건을 다루지만, 사실 이 곡에서도 노골적이지는 않다. 그래서 [Wreckage]를 만들어 낸 드라마는 다행히도 얄팍하게 단순 컨셉트로 취급당하지 않았다. 가끔 우리는 이렇게 색다른 감상의 묘미를 제공하는 놀라운 비정규 작품을 만난다. 음악 내외적으로 그것을 끌어올리는 것은 아티스트의 몫이고, 발견하는 것은 듣는 이의 몫이다. [Wreckage]는 소수에 의해서만 그 극적인 재미가 발견되기엔 아까운 앨범이다. 부틀렉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작은 논란이 있겠지만, 어디까지 포함하던지 [Wreckage]는 한국힙합 부틀렉 앨범 중 가장 태생에 충실하면서 독자적인 가치를 지닌 앨범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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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홍승민 (2011-07-02 13:55:09, 218.53.122.*)
      2. 인터뷰를 읽으니 지르고 싶잖아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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