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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드머 토픽] 2024 국내 랩/힙합 앨범 베스트 5
    rhythmer | 2024-12-26 | 33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리드머 필진이 선정한 '2024 국내 랩/힙합 앨범 베스트 5'를 공개합니다. 아무쪼록 저희의 리스트가 한해를 정리하는 좋은 가이드가 되길 바랍니다.

     

    *2023년 12월 1일부터 2024년 11월 30일까지 발매된 앨범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가리온 - 가리온3

     

    던밀스 - 인생을 바꿀 앨범

     

    비프리 - Free The Mane 2 "Free The Mane VS 최승로"

     

    쿤디판다 - MODM 2 : The Bento Knight

     

    팔로알토 - Lovers turn to Haters

     

     

     

    5. 플리키 뱅 - AKUMA

    Released: 2024-10-01

     

    [AKUMA]의 미덕은 '일관성'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내며 잠시도 쉬지 않는다. "귀신(鬼神)", "The Castle Orchestra", "Demons Party"처럼 템포를 늦추거나 톤을 낮추는 곡도 있지만, 에너지는 일정하다. 이는 플리키 뱅(Fleeky Bang)의 타격감 강한 랩 덕분이다. 마치 되는 대로 뱉어내는 것 같은 허스키한 톤은 앨범 전체에 날 것의 느낌을 더하고, 빠르게 내달리는 와중에도 흔들리지 않는 플로우와 적절한 재치를 가미한 라임 구성은 듣는 재미를 더한다. "불 (火)", "Grim Reaper (Death)", "My Ninjas 2" 같은 곡은 플리키의 장점을 극대화한 곡들이다. 특히, 창모와 함께한 "불 (火)"은 2024년 한국에서 발표된 힙합 곡 중 가장 강렬한 '올해의 뱅어'라고 할만 하다.

     

    플리키는 '악마'라는 컨셉을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며 비장함 사이에 헛웃음을 자아내는 유머를 끼워넣어 동료 래퍼들의 비슷한 자기과시성 가사와 차별화를 이뤄냈다. 창모를 비롯해 식케이(Sik-K), 김하온(HAON), 릴러말즈(Leellamarz) 등도 강렬한 벌스로 제 역할을 해냈다. 무엇보다 지난 앨범들처럼 중간중간 서정적인 곡이 등장해 분위기를 해치는 우를 범하지 않은 것이 주효했다. 플리키는 작년 8월부터 지금까지 세 장의 정규 앨범을 빠른 주기로 발표하며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그 사이 큰 폭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즐겁다. [AKUMA]가 그 결과다.

     


     

    4. 콰이 - DISTORTED

    Released: 2024-08-22

     

    뒤틀렸다는 뜻의 앨범 타이틀과 커버에 드리운 묵직한 존재감의 십자가가 대비를 이룬다. 넓게는 사회, 좁게는 힙합 씬을 향한 콰이 특유의 삐뚤어진 시선,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을 만드는 심지 깊은 주관을 함께 보여주는 것 같다. 세상의 부조리를 인식해 가며 성장할 때 느끼는 절망감이 담긴 "CROSS(INTRO)"를 지나, "UNBALANCE"부터 힙합을 매개로 그것을 냉소하며 극복하는 트랙들의 감흥은 그 어떤 서사보다 짜릿하다. 정점은 이른바 '흙수저', '금수저'가 만드는 불균형을 마주하며 경차 이름과 자존심이라는 이중 의미로 풀어내는 "PRIDE"다.

     

    시종일관 건조하고 날카로운 사운드가 지배하는 뛰어난 비트 프로덕션, 이와 파열하는 듯한 콰이의 타격감과 속도감이 주효한 랩은 힙합 앨범을 듣는 즐거움도 충분히 전달한다. 개성 강한 피쳐링 아티스트의 참여가 앨범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간 것도 인상적이다. 콰이가 3년 만에 발표한 앨범인 [DISTORTED]는 그의 재능과 실력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앨범인 동시에, 2024년 손에 꼽을 완성미로 마감한 한국 힙합 앨범이다.

     


     

    3. 큐엠 - 개미

    Released: 2024-04-24

     

    [개미]는 "번데기"를 기점으로 크게 두 파트로 나뉜다. "금"부터 "나이롱"까지 이어지는 초반부는 상대적으로 빠른 템포와 강한 에너지로 몰아붙이는 구간이다. 톤을 올려 작정한 듯이 격하게 쏟아내는 큐엠(QM)의 랩은 커리어를 통틀어 기술적으로 가장 화려하다. 그중에서도 첫 두 곡 "금"과 "입에총"에서 폭발하는 래핑은 단숨에 귀를 잡아끈다. 덕분에 앨범을 끝까지 몰입해서 감상할 수 있었다. 카코포니(cacophony)의 음산한 보컬만으로 진행되는 "번데기"를 지나면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가라앉는다. 곡에 따라 톤을 바꾸는 큐엠의 래핑은 기술적 수준을 끝까지 유지한다. 그래서 듣는 재미가 사그라지지 않는다.

     

    큐엠은 차고넘치게 돈을 번 이후에도 끝없이 갈망하게 되는 욕심을 토로한다. 어투가 굉장히 직설적이고, 일상의 예시를 구체적인 묘사로 풀어낸 덕분에 그의 상황에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몰입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나이롱"에서는 두 번째 정규 앨범 [HANNAH](2018)를 인용해 뒤틀린 욕망을 그대로 전시한다. 지난 앨범의 맥락이 더해지면서 그의 커리어를 따라왔던 이들이라면 "나이롱"의 고백에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여지가 생긴다.

     

    큐엠의 갈등은 앨범 안에서 해소되지 않는다. 그래서 앨범을 반복해서 들을수록 답답함이 쌓이고, 예시로 나오는 날 것의 이야기들 탓에 때로는 불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을 상쇄하는 것은 [개미]에 담긴 음악의 힘이다. 시원시원하게 진행되는 강렬한 초반부와 큐엠의 탁월한 랩, 그리고 [HANNAH]와 [돈숨]을 잇는 치밀한 구성적 설계가 만나 끝까지 단숨에 듣게 만든다. 커리어 초반부터 작가주의적인 면모를 고수한 큐엠의 고집이 빛을 발한 작품이다.

     


     

    2. 이케이 - ESCAPE

    Released: 2024-03-24

     

    [Escape]는 비장하게 시작한다. 신시사이저, 기타, 드럼 연주가 차곡히 쌓이며 처연한 무드를 만들고, 격양된 목소리의 랩이 얹힌 "Yellow Print"가 앨범을 연다. 점점 속도를 높이면서도 감정선을 섬세하게 그리는 플로우가 어우러져 황홀하게 느껴질 만큼 압도적이다. 근래 한국 힙합 앨범 중 가장 인상적인 인트로다. 더불어 처음부터 끝까지 기술적으로 잘 짜인 랩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첫 트랙 "Yellow Print"에서의 감탄스러운 감정 연출과 마지막 트랙 "What's Up"에서의 감각적으로 박자를 타는 장면은 이케이(EK) 경력 중 가장 빛나는 랩이기도 하다. 피처링 래퍼들의 랩도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해 곡의 분위기를 잘 환기한다.

     

    감상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건 가사의 깊이다. 다사다난하고 치열한 20대를 막 지나오며 얻게 된 세상을 향한 날카로운 시선과 전투적인 태도를 견지한 가사는 각박한 상황에서 고군분투하는 애달픈 청춘의 이면을 함께 담고 있는 듯 진한 여운을 남긴다. 이케이가 척박한 현실과 싸우며 탈출하려는 시도는 결국 무의미해진 것처럼 보인다. '별빛거리'로 불리는 신림은 앨범에서 몇 번 언급되며 그가 탈출해야 할 어딘가의 메타포로 쓰이는 듯하지만, 마지막 "What's Up"에 이르러 '여기 별빛거리 20대의 추억'으로 탈바꿈된다. 타협이나 굴복과는 다른 힘들었던 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성장의 과정으로 느껴진다. 

     

    [Escape]는 치열하고 앞으로도 치열할 시간을 낭만으로 품어내는 이케이 방식의 청춘 찬가다. 절망이나 희망, 저항이나 순응도 아닌 '삶은 계속된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1. 비프리 & 허키 시바세키 - Free Hukky Shibaseki & the God Sun Symphony Group: Odyssey.1

    Released: 2024-06-28

     

    비프리(B-Free)는 최근 몇 년간 멤피스 랩(Memphis Rap), 호러코어, 트랩 등의 장르에서 영향받은 강렬한 프로덕션과 의도적으로 단순화한 가사로 새로운 음악적 스타일을 구축해 왔다. 반면 허키 시바세키(Hukky Shibaseki)는 짧게 커팅한 소스와 보컬 샘플링을 바탕으로 한 감각적인 붐뱁 프로덕션을 구축했다. 단출한 프로덕션은 비프리의 랩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한다. 툭툭 내뱉는 듯 리듬을 밀고 당기며 천부적인 그루브를 보여주는 랩이 일정 경지에 올랐다. 특히 "INDO", "마법의 손", "희대의 얘기꾼 (Hukky Shibaseki Remix)" 같은 곡에선 비프리 랩 스타일의 진수를 경험할 수 있다.

     

    비프리는 서른 후반이 된, 세간의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성공하지 못한' 래퍼의 일상을 전시한다. '생활밀착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표현이 적나라하다. 동시에 일반적인 관점을 거부하는 외골수적인 태도를 고수한다. 이 지점에서 현실과 개인의 태도가 부딪히며 비프리의 캐릭터가 더 잘 드러나고 전에 없던 페이소스가 느껴진다. 

     

    [Free Hukky Shibaseki & the God Sun Symphony Group : Odyssey.1]의 비프리는 복합적이다. 까칠하고 공격적이면서도 나약하고 생활에 치이는 일상적인 모습이 뒤섞여있다. 음악적으로 [Korean Dream]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날 것 같은 랩과 공격적인 태도는 [Free The Beast] 이후부터 최근까지 보여준 비프리의 연장선에 있다. 허키는 비프리의 매력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판을 깔았고, 그 위로 비프리는 여태까지의 커리어를 잘 응축시켜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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