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Mellowhype
Album: Numbers
Released: 2012-10-09
Rating:
Reviewer: 강일권








오늘날 오드 퓨쳐(Odd Future)가 누리는 영광(?) 뒤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타일러(Tyler, The Creator)의 재능과 똘끼, 그리고 알앤비 음악의 새 지평을 연 프랭크 오션(Frank Ocean)의 범상치 않은 음악과 행보가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에 얼 스웻셔츠(Earl Sweatshirt) 같은 차기 스타감까지 가세하고 있으니 이들 크루의 부귀영화가 한바탕의 봄 꿈처럼 쉽게 사라지진 않을 듯하다. 비록, 이들에 비해 묻혀있긴 했지만, 오드 퓨쳐 내에는 주목해야 할 이들이 더 있다. 꾸준히 준수한 결과물을 통해 존재감을 부각해온 핫지 비츠(Hodgy Beats/랩)와 레프트 브레인(Left Brain/랩, 프로듀싱)의 듀오 유닛 멜로우하이프(Mellowhype)가 그들이다.

멜로우하이프의 음악 스타일은 듀오의 이름에 어느 정도 드러나있다(‘Mellow’, ‘Hype’). 레프트 브레인이 책임진 본작의 프로덕션은 전반적으로 ‘환각 상태’를 청각화한 듯한, 그윽하고 몽환적이면서도 어딘가 살짝 뒤틀려있는 멜로디와 사운드를 유지한다. 특히, 이는 두 개의 트랙이 합체하여 좋은 한 곡으로 거듭난 "65/Breakfast"와 프랭크 오션(Frank Ocean)이 피처링한 “Astro” 등 초반 두 트랙과 “Monster”를 기점으로 이어지는 후반부 트랙들에서 두드러지는데, 핫지 비츠의 랩핑이 각 프로덕션의 분위기와 궤를 같이 하면서 더욱 시너지를 일으킨다. “P2”에서 얼터너티브 록 그룹 인큐버스(Incubus)의 마이크 아인지거(Mike Einziger)의 황홀한 기타 리프와 결합도 훌륭하다.

핫지 비츠의 랩핑과 가사도 눈 여겨 볼만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는 곡의 스타일과 분위기에 맞춰서 톤과 플로우를 적절히 조절해가는데, 비록, 타일러나 얼 스웻셔츠만큼의 깊은 인상을 남기진 않지만, 빼어난 실력을 과시한다. 가사는 전작 [BlackenedWhite]나 기존 오드 퓨쳐의 결과물보다 광기가 줄었지만, 범상치 않은 기운은 여전하다. 기성 세대(때때로 일부 선배 랩퍼들)에 대한 호전적 태도를 유지한 채(‘That’s why the youth is fucked up now, adults killed them’ –“Brain” 중) 핫지 비츠는 한결 성숙해진 시선을 바탕으로 거침없고 센스 있는 비유를 통해 오드퓨쳐와 자신에 대한 찬양, 마리화나, 사회의 불합리한 부분을 겨냥한 (젊은 세대로서) 불만과 비판, 개인사 등을 능숙하게 오간다. 

다만, [Numbers]가 타일러 – 프랭크 오션으로 이어진 오드 퓨쳐 진영의 걸작 행진을 이어가기엔 단점 역시 뚜렷하다. 첫 싱글 “La Bonita"는 오드 퓨쳐 진영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다소 충격적일 정도의 단조로운 여자 타령 가사에 넵튠즈(Neptunes)의 사운드를 표방했으나 그에 못 미치는 비트가 결합한 모양새고, “La Bonita"를 중심으로 앞뒤에 배치된 (미니멀한 사운드를 추구한) 초반부 트랙들은 그 시도가 부족한 완성도에 함몰되어 버렸다.

어쨌든 [Numbers]는 일련의 장점들 덕에 오드 퓨쳐 내에서 타일러, 프랭크 오션, 얼 스웻셔츠 말고도 핫지 비츠와 레프트 브레인이라는 재능 있는 듀오를 발견하는 재미를 느끼기엔 충분한 앨범이다. 그리고 이번 앨범을 미루어 짐작하건대 정신적으로 더욱 성숙해지거나, 광기가 더욱 깊어지거나, 어느 쪽이 되든 이들의 다음 결과물은 좀 더 흥미로운 컨텐츠를 담고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