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외 리뷰] Tyler, The Creator - Chromakopia
- rhythmer | 2024-12-30 | 68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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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Tyler, The Creator
Album: Chromakopia
Released: 2024-10-28
Rating:
Reviewer: 황두하
[Chromakopia]는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가 발표했던 그 어떤 앨범과도 다르다. 우선, 암묵적으로 지켜왔던 2년의 앨범 발매 주기와 두 곡을 잇는 10번 트랙의 규칙을 어겼다. 무엇보다 페르소나와 가상의 이야기를 앞세웠던 전과 달리 직접적으로 본인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는 화려한 래퍼로 사는 삶과 30대 중반이 되어 느끼는 ‘일반적’인 삶에 대한 압박 속에서 방황한다. 타일러식 자기과시가 펼쳐지는 “Rah Tah Tah” 뒤로 편집증을 유발하는 유명인의 일상을 토로하는 “Noid”가 이어지고, 자유로운 연애를 꿈꾸는 “Darling, I” 후로 원치 않은 임신으로 갈등하는 연인의 이야기를 다룬 “Hey Jane”이 나오는 식이다. “Hey Jane”은 손주를 바라는 어머니의 음성으로 시작해 세월의 흐름을 한탄하는 “Tomorrow”로 이어지며 ‘가정’이라는 열쇠말로 그의 고민을 드러낸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 탓에 상대적으로 덜 조명 받았지만, 타일러는 스토리텔링에 굉장히 능한 래퍼다. 커리어 초반 호러코어스러운 곡들에서도 이러한 면모를 드러냈었다. 이번에는 보통의 사례를 능수능란하게 풀어내며 자신의 이야기에 살을 붙인다. 앞서 언급했던 “Hey Jane”과 벌스마다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다양한 현대인의 모습을 묘사한 “Take Your Mask Off”가 그렇다. 이를 통해 타일러 개인의 고민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것으로 자연스레 확장된다.
특히, “Like Him”은 타일러의 가장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곡이다. 인생에서 부재했던 아버지에 대한 집착과 원망, 이로 인해 가지게 된 삶에 대한 두려움 등을 토로한다. 아버지의 부재가 자신의 탓이라고 말하며 울먹이는 어머니의 음성까지 들으면, 모자에 대해 감정적으로 더 깊숙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압박을 벗어던지고 자신만의 삶을 살겠다는 “I Hope You Find Your Way Home”에 이르면, 묘한 해방감과 희망감이 느껴진다. 그간 타일러의 음악에서 느낄 수 없었던 깊은 페이소스를 불러일으키는 지점이다.
타일러는 상이한 장르와 사운드를 해체하여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조합하는 데에 능한 프로듀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일례로 “Noid”에서는 잠비아 밴드 엔고지 패밀리(Ngozi Family)의 1977년 발매 곡 “Nizakupanga Ngozi”를 샘플링해 아프리카 음악과 록, 힙합을 아우르는 독특한 사운드스케이프를 펼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사운드가 한 발 뒤로 물러선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프로덕션보다는 이야기와 감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훨씬 더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Thought I Was Dead”, “Like Him”, “Ballon”이 연이어 이어짐에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을 때 멈칫하게 되는 부분 없이 부드럽게 흘러간다.
가장 인상적인 곡은 “Sticky”다. 휘파람으로 시작해 강렬한 리듬 파트와 보이스 소스가 어지럽게 난장을 펼치며 순식간에 빨려들게 한다. 글로릴라(GloRilla), 타일러, 섹시 레드(Sexyy Red), 릴 웨인(Lil Wayne) 순으로 이어지며 각자의 개정을 살린 벌스도 균형이 굉장히 좋다. 올해의 뱅어라고 해도 손색없다. 앨범의 정중앙에 위치한 덕분에 분위기를 확실하게 환기하는 역할도 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타일러는 가면을 썼다. 그러나 이번 가면은 바로 자신의 얼굴이다. 헤어스타일 또한 르완다인들의 정통 헤어스타일인 ‘Amasunzu’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처럼 그는 자신의 뿌리로 돌아가 꾸미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한다. “Take Your Mask Off”와 “I Hope You Find Your Way Home”은 타일러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곡들이다.
타일러는 커리어 내내 조금씩 가면을 벗으며 위악적인 10대에서 자신의 속내를 가감 없이 털어놓는 어른으로 성장해 왔다. 음악적으로도 다소 정제되지 않았던 초창기를 지나 고유의 스타일을 갈고 닦으며 완성형에 다다랐다. 그 결과, [Chromakopia]라는 또 다른 걸작이 탄생했다. 타일러의 말처럼 ‘33살이 됐다고 징징대는 앨범’이 이토록 근사할 줄은 몰랐다. 2024년이 아니라, 2020년대 최고의 힙합 앨범 중 하나다.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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