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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외 리뷰] T.I. - King
    rhythmer | 2009-10-22 | 1명이 이 글을 추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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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ist: T.I.
    Album: King
    Released : 2006-03-28
    Rating : +
    Reviewer : 강일권






    2004년 ‘남부힙합천하’의 힙합 씬에 한 젊은 래퍼가 “내가 바로 ‘남부의 왕(King of the South)’이다”라는 한 마디로 파문을 일으킨 사건이 있었다. 데뷔한 지 이제 갓 3년여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하늘 같은 선배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남부의 왕’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이 당돌한 뮤지션이 누구인고 하니 바로 아틀란타(Atlanta)출신의 티아이(T.I.)라는 래퍼다-어린 시절 별명이었던 Tip을 팬들이 그 특유의 늘어지는 말투에서 연상하여 ‘Chip’이라는 이름으로 혼동을 많이 하자 별명에서 ‘P’를 빼고 지금의 이름을 만들었다고 한다-. 티아이의 이같은 발언은 많은 이들을 황당하게 했지만, 그 뒤에는 다 성공적인 이력이 뒷받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고의 센스를 자랑하는 프로듀싱팀 넵튠스(The Neptunes)가 프로듀싱한 싱글 “I’m Serious”를 앞세웠던 동명 타이틀의 앨범을 전 세계적으로 백 만장 이상 팔아치우며 데뷔한 그는 2003년 발표했던 [Trap Muzik]에 이어 이듬해 세 번째 앨범인 [Urban Legend]로 이른바 ‘대박’을 터트렸다. 비록, ‘King of the South’ 발언으로 인해 같은 남부출신의 인기래퍼 릴플립(Lil’ Flip)에게 한방 먹으며 체면을 구기기는 했지만, 미국에서만 130만 장이 팔린 [Urban Legend]로 그래미시상식은 물론, BET 어워드와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그리고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등의 유명 음악 시상식에서 주요 부문 후보에 오르며 자신의 음악인생에 화려한 불꽃을 피웠다. 티아이는 이 여세를 몰아 같은 해, 아틀란틱 레코드(Atlantic Records) 산하에 자신의 레이블인 그랜드 허슬(Grand Hustle)과 영화제작사인 그랜드 허슬 필름(Grand Hutle Film)까지 설립하기에 이르는데 영화 ‘허슬 앤 플로우(Hustle & Flow)’의 사운드트랙과 더불어 자신과 함께 활동해오던 에이케이(A.K.), 씨-로드(C-Rod), 빅 컨트리(Big Kuntry), 맥 보니(Mac Boney) 등을 규합하여 결성한 그룹 P$C(Pimp Squad Click )의 앨범을 이 레이블을 통해 발표하며 성공을 이어 간다. 늘어지는 듯하면서도 단단함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자신만의 랩스킬과 플래티넘 앨범의 보유, 그리고 능숙한 사업 수완과 잘생긴 외모를 앞세운 여성팬의 동원력까지……. 아무리 그래도 이 젊은 래퍼의 발언을 인정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쯤 되면 단순한 허풍만으로 넘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참으로 바빴던 지난해를 보낸 그는 올해에도 네 번째 앨범 [KING]으로 남부힙합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타이틀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자기 발언 굳히기에 들어가려는 듯한데, 우선은 그의 새로운 음악들을 들어보는 것이 좋겠다. 티아이가 진짜 남부의 왕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란은 그 다음이다.

    이번 앨범 [KING]은 단순하면서도 재치있는 라임을 바탕으로 자기를 과시하는 티아이의 랩이 여전히 주를 이루는 가운데, 어느 한 곡 특별히 버릴 수 없을 정도로 탄탄한 더리싸우스(Dirty South) 음악들로 가득 차있다. 전작 [Urban Legend]에서 자신이 싸우스의 왕임을 강조하는 “Tha King”으로 앨범을 열었던 것에 이어 이번에는 왕이 돌아왔음을 선포하는 “King Back”이라는 곡으로 앨범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 혈기왕성한 젊은 왕(?)의 뒤를 확실하게 받쳐주는 이가 있으니 스트릿 트랙은 물론이요, 소울풀한 곡과 웅장한 곡, 게다가 클러빙 트랙까지도 떡 주무르듯 하는 힙합 씬 절정의 고수, 바로 저스트블레이즈(Just Blaze)다. 그는 이번에도 웅장한 분위기를 연출할 때 곧잘 사용하는 호른(Horn) 샘플을 이용한 비트로 티아이의 과장되면서도 여유로운 래핑에 큰 힘을 실어주고 있다. 특히, 호른 샘플의 피치를 다양하게 조절하고 강한 킥(Kick)을 버무린 훅(Hook)에서의 긴장감 넘치는 연출은 감동 그 자체! 블레이즈와 티아이의 뛰어난 궁합은 “I’m Talking To You”라는 곡에서도 다시 한 번 드러난다. 그야말로 역동적인 비트와 티아이의 힘찬 래핑이 한껏 어우러지는 이 곡은 몸 안에 잠자고 있던 신경세포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깨워 듣는 이를 극도의 흥분 상태로 몰고 갈지도 모르니 평소 심장이 약했던 사람들은 주의를 요망하는 바다.

    저스트블레이즈 외에도 본 작에는 여전히 슈퍼 프로듀서들이 티아이와 보조를 맞추며 1등급 품질의 음악들을 선사하고 있다. 강력한 전자음을 주조해 내는 독보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스위즈빗츠(Swizz Beatz)의 “Get It”은 “I’m Talking To You” 못지않은 제대로 된 스트릿 하드 뱅어라고 할 수 있으며, 매니프레쉬(Mannie Fresh) 특유의 멜로딕하고 깔끔한 비트가 돋보이는 “Top Back”, 그리고 지적인 래퍼의 대명사 커먼(Common)의 참여가 신선함을 던지는 가운데 간결한 건반의 터치와 훅에서의 신시사이저와 클랩(Clap)의 어우러짐이 세련미를 뽐내는 넵튠스(The Neptunes)의 “Goodlife”이 그 대표적인 곡들이다.

    한편, 남부힙합 특유의 웅장하면서도 멜로딕한 비트와 티아이의 Sing-Song 래핑의 조화가 일품인 앨범의 첫 싱글 “What You Know”을 비롯한 중독적인 후렴구와 깔끔한 신시사이저가 귀를 간질이는 “Why You Wanna(A Tribe Called Quest의 98년 히트곡 “Find a Way”의 인상적인 가사였던 ‘why you wanna go and do that, love, huh?’를 인용한 후렴구를 놓치지 마시라.)”, 연기와 노래 모두에서 한창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제이미 폭스(Jamie Foxx)가 참여한 “Live In The Sky”, 그리고 마치 중국 무협영화의 배경음악을 연상케 하는 미묘한 멜로디 라인이 가슴 깊이 파고드는 “Bankhead(티아이가 이끄는 그룹 P$C가 함께하고 있다.)” 등도 이번 앨범의 보석 같은 트랙들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난 정신없는 쿵짝거림과 피곤할 정도로 강하게 몰아치는 전자음 가득한 대부분의 남부힙합 앨범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더구나 근 몇 년간 고만고만한 클러빙트랙들이 흑인음악 계를 전면 포위하고 있었던 까닭에 힙합음악 애청자로서 회의감마저 들 지경이었다. 물론, 개중에는 개성 있고 멋진 곡들도 더러 있었지만, 어찌됐든 최근에는 남부힙합의 ‘남’자만 들어도 듣기 욕구가 뚝 떨어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 와중에 티아이의 [KING]은 실로 오랜만에 나를 더리싸우스 스타일의 매력에 푹 젖게 만들었다. 몇몇 평범한 트랙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분명 이번 앨범은 남부힙합의 걸작이라 할 만하다. 오늘날의 힙합 씬에서 남부힙합이 대세를 쥐고 있음을 고려하면, 이 말은 곧 최근 발표됐던 메인스트림 힙합 앨범들 중에서도 손으로 꼽을 만한 앨범이라는 소리다.

    그럼 여기서 다시 '왕'에 대한 논란으로 돌아와 보자. 과연 티아이는 진정한 남부힙합의 왕으로 우뚝 설 수 있을까? 추측해 보건대 티아이를 남부힙합의 왕이라 칭하기에는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의 스카페이스(Scarface)와 UGK 같은 큰 형님들이 건재하신데 어찌 감히……. 티아이 본인도 자신은 아직 왕이 되기에는 이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어필을 위해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아님 정말로 자신감이 충만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얼마 전 앨범 발표에 앞서 가진 한 인터뷰에서 역시 ‘King Of the South’라는 타이틀에 대한 시들지 않는 열정(?)을 드러냈다(“This album is a solidification of why I call myself the ‘King of the South’/ 이번 앨범은 왜 내가, 나 스스로를 '남부의 왕'이라고 칭하는가를 확실히 보여주는 앨범이다”). 비록 지금은 자칭 ‘King Of the South’일지 모른다. 하지만, 오로지 클럽에서 사람들의 엉덩이를 들썩이게 하는 데에만 급급해하지 않고 다양한 연출로 남부힙합의 매력을 한가득 담아낸 본 작을 통해 티아이는 확실히 남부힙합 왕좌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앞으로 본 작 정도의 질을 꾸준히 유지하며 활동해 나간다면 이 젊은 래퍼가 남부힙합의 제왕으로 군림할 날도 그리 멀지만은 않을 것이다. 다만, ‘왕’에 대한 집착을 아직은 접어둔다면 말이다.



    기사작성 / RHYTHMER.NET 강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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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Notorious (2011-08-14 12:21:02, 115.20.134.***)
      2. 사우스스스
      1. Eminem (2009-10-23 00:04:04, 58.120.231.**) 삭제하기
      2. 이 주옥같은 앨범에 별 다섯개를 안주시다니!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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